<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샘 레이미 2022
*스포일러 포함
아마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을 것이다. 126분은 ‘멀티버스’ 컨셉을 듣고 MCU 팬들이 떠올린 무수한 카메오 루머가 현실화되기엔 부족한 러닝타임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세 명의 스파이더맨과 다섯 빌런이 등장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러닝타임은 148분이었고, 10명의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한 <이터널스>는 155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샘 레이미는 그러한 MCU 팬들의 걱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영화를 내놓았다. 카메오는 적정한 숫자만이 등장했고, 이야기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완다(엘리자베스 올슨), 그리고 두 사람의 대립에 끼어버린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스)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완다비전>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 속 완다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다른 MCU 영화들이 그래왔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기에, 이를 근거로 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별 의미 없다고 생각된다. (차라리 MCU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러닝타임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이 영화가 부차적인 팬서비스, 가령 루머에 등장했던 울버린, 데드풀, 톰 크루즈의 아이언맨, 고스트라이더 같은 카메오라던가, 다양한 멀티버스를 소개하며 기존에 개봉했던 마블 코믹스 원작 세계관을 탐험한다던가 하는 것을 꽤나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작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팬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덧붙이는 것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이 지점에서 큰 실패를 하기도 한다. 팬서비스에 함몰된 영화는 자기 자신의 동력 자체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국내외의 스쿠퍼(scooper, 루머를 퍼 나르는 사람들)들이 어떤 캐릭터가 카메오로 출연할지에 관해서만 집중한 것은, MCU가 근 몇 년간 진행한 <어벤저스: 엔드게임>, <블랙위도우>, <로키>, <호크아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등의 프로젝트가 어떤 식으로 소비되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그런 것과 거리를 두려 한다. 쓸데없이 이야기를 꼬는 것 대신 단선적인 이야기를 선보이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듯한 각본을 발판 삼아, 샘 레이미는 <이블 데드>부터 <드래그 미 투 헬>에 이르는 자신의 필모그래피 내내 선보여온 요소들을 MCU 세계관 속에서 하나하나 구현한다. 누군가는 빈약하다고 할 수 있는 각본이겠지만 말이다. <이블 데드 3: 암흑의 군단>과 <스파이더맨>을 비롯해 몇 편의 작품으로 샘 레이미와 합을 맞춰본 대니 엘프먼의 음악과 함께, 전작들과는 다른 모습의 마법을 선보이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영화 초반부터 가르간토스의 거대한 안구를 “뾱” 소리와 함께 뽑아버린다던가, 일루미나티의 본거지를 급습한 완다가 미스터 판타스틱(존 크래신스키)을 수타면처럼 만들어버리고 블랙볼트(앤슨 마운트)의 머리를 터트리며 캡틴 카터(헤일리 앳웰)를 두 동강 내는 모습이라던가, 아이언맨의 빔과 토르의 번개와 색만 다른 듯했던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이 괴상한 크리처의 형태로 구현된다던가 하는 등의 모습들은 샘 레이미 팬들의 환호를 받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좀비 스트레인지’의 등장과 활약은 그 무엇보다 <이블 데드>의 기억을 떠올리게끔 한다.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의 음표 마법 대결은 이번 영화의 백미다. <인셉션>의 카피에 가까운 미러 디멘션을 끝없이 재활용하는 것보다 뭔가 다른 것, 감독의 취향과 개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을 선보이는 영화가 더 흥미로운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샘 레이미가 연 멀티버스는 다른 마블 세계관이 아니라 자신의 필모그래피였을지도 모르겠다.
MCU 팬들이 이번 영화에 기대한 것은 제목의 ‘멀티버스’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케빈 파이기는 멀티버스가 ‘인피니티 사가’ 이후 MCU의 중요한 키워드라고 말했다. 쿠키영상에 등장한 클레아(샤를리즈 테론)가 스트레인지와 차베즈의 멀티버스 여행으로 서로 다른 우주가 충돌하는 ‘인커전’이 벌어진다 경고하는 것에서 후속작의 이야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이번 영화를 즐기는 것에 얼마나 중요할까? MCU를 비롯해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표방하는 영화들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설정하는 것에 모든 힘을 쏟은 나머지 영화 자체의 힘을 잃어버린다. <모비우스>가 그랬고, 수차례 실패한 유니버셜의 “다크 유니버스”가 그랬고, DCEU의 <저스티스 리그>가 그랬다. 마침 이 영화의 개봉일에 마지막화가 공개된 드라마 <문나이트>가 MCU와의 연동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며 호평받은 것을 떠올려보자. MCU의 모든 작품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팬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본 후에도 그것을 알고 있다. 혹은 쿠키영상에서 잠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MCU 페이즈1의 쿠키영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부담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MCU 영화는, 아주 뛰어난 영화는 되지 못할지라도, 감독의 영화가 될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최근의 MCU는 MCU라는 색이 영화의 모든 요소를 압도해왔다. MCU 영화를 보고 감독을 떠올리는 것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존 왓츠의, 데스틴 크리튼의, 케이드 쇼트랜드의, 애나 보든과 라이언 플렉, 라이언 쿠글러의, 루소 형제의 영화적 개성과 취향을 MCU 영화를 보고 알 수 있는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토르: 라그나로크> 같은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MCU는 케빈 파이기의 작품이라 부르는 게 차라리 적절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샘 레이미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반갑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적어도 샘 레이미가 어떤 감독인지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