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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5. 2022

농축된 니콜라스 케이지의 커리어

<참을 수 없는 무게의 미친능력> 톰 고미칸 2022

 밀란 쿤데라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패러디한 제목을 내세운 영화. 니콜라스 케이지는 니콜라스 케이지로 출연한다. 물론 그를 둘러싼 인물, 가령 딸 애디(릴리 모 쉰)를 비롯해 매니저 핑크(닐 패트릭 해리스), CIA 요원 비비안(티파니 해디쉬), 그리고 케이지를 초대한 거부 하비(페드로 파스칼) 등은 실제와 다르다. 카메오 출연한 데이빗 고든 그린 등 몇몇 출연자만이 이 영화 속 할리우드를 구성하고 있다. 영화는 노동자로서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지 않던 왕년의 스타 니콜라스 케이지가 어느덧 퇴물 배우가 된 상황에서, 자신의 빚을 갚을 수 있는 큰 금액을 제안하며 생일파티에 초대하는 하비의 제안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케이지는 자신을 추앙하고 영화 취향도 비슷한 하비와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겉으로는 올리브 농장을 운영하는 부자이지만, 뒤로는 가문 대대로 이어지는 범죄조직의 얼굴을 맡고 있는 하비의 뒤를 쫓던 CIA가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협력을 요구하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메타-할리우드를 표방한 코미디 영화의 틀을 따른다. <존 말코비치 되기>와 <어댑테이션>(여기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이지만, 본인으로 출연하진 않는다) 연작, 주드 애피토우 사단의 <디스 이즈 디 엔드>나 최근 시작이 개봉한 <스크림> 시리즈 같은 작품들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이번 영화에서 케이지와 하비는 함께 영화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이 의기투합에는 케이지가 CIA의 사주를 받아 하비를 감시하려는 숨은 목적이 끼어 있지만, 하비의 취향과 열정에 반한 케이지는 이 상황 자체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꿈꾸던 영화는 배우의 연기가 중심이 되는 “어덜트 드라마”였지만, 점차 납치나 액션 등이 끼어들며 무언가 다른 영화로 변모한다. 이는 단지 두 인물이 상상하며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일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속한 이 영화에 대한 자기서술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필모그래피를 장식한 여러 영화들이 등장한다. 하비의 수집품인 <더 록>의 액체폭탄이나 <맨디>의 전기톱 같은 것들은 물론, <콘 에어>, <페이스 오프>, <크루즈 패밀리> 등 여러 편의 주연작이 언급된다. 몇몇 영화는 영화 속 장면으로 재현되기도 하고, 니콜라스 케이지 특유의 메소드 연기가 영화의 주요 소재로 채택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케이지에게만 보이는 분신 ‘니키’(젊은 케이지의 모습을 하고 있음)의 풀네임은 니콜라스 킴 코폴라(니콜라스 케이지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같은 가문의 인물이지만, 가문의 후광 없이 성공하고자 위해 이름을 바꾸었다)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필모그래피를 농축시키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초기엔 연기 중심의 드라마였으며, 90년대 액션 스타로 거듭난 이래 블록버스터, B급 액션영화, 장르영화를 오가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영화의 흐름, 특히 케이지와 하비의 대화 속에서 형성되는 영화 속 영화의 흐름은, 빚을 갚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영화에 출연하고 있었다는 그의 현재에서 출발점으로 삼은 뒤 다시 그의 필모그래피를 처음부터 훑어보는 것과 같다. 

 이는 썩 흥미로운 시도이면서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한 배우나 감독에 관한 메타적 관점의 영화는 적지 않게 제작되어 왔다. 스필버그의 신작조차 자신에 대한 전기영화니까. 때문에 <참을 수 없는 무게의 미친능력>은 명확한 한계에 부딪힌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필모그래피는 물론 배우 자체로써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다만 그것을 하나의 캐릭터로 만든 뒤 본인에게 직접 연기하도록 함으로써 얻는 효과와 별개로, 그 캐릭터가 활보할 수 있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할리우드 스타가 연기하는 가상의 인물과 본인으로 출연하는 카메오들이 뒤섞인 영화 속 세계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니콜라스 케이지임과 동시에 ‘닉 케이지’라는 다른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이 긴장감을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케이지의 필모그래피를 훑어가며 그 과정을 코미디 소동극으로 풀어내고자 했지만, 케이지의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다소 슴슴하게 영화가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와 ‘닉 케이지’ 사이의 긴장감은 다소 어정쩡하게만 등장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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