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콜린 트레보로우 2022
*스포일러 포함
기후위기는 오랜 시간 할리우드의 트렌드 중 하나였다. 아니, 기후위기라기보단 환경재앙이라는 단어가 더욱 적절할 것 같다. 환경재앙은 꽤나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투모로우>를 비롯한 재난영화들은 물론, <돈 룩 업> 같은 풍자물이나 이런저런 인재로 발생한 괴수들이 등장하는 영화들까지가 환경재난영화라 부를 법한 범주에 속한다. <쥬라기 공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위적으로 복원된 공룡들로 채워진 동물원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라는 로그라인은 “핵실험으로 이구아나가 거대괴수로 변신해 도시를 공격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은 비록 인위적으로 복원된 공룡일지라도 그것이 살아있으며 모종의 생태계를 이루는 한 자연이라고 여기고 있다. 복원 과정에서 부족한 DNA 정보를 현생 동물의 DNA로 채워 넣었지만, 그렇다고 <쥬라기 공원> 속 공룡들이 특정한 목적의 인위적 조작이 포함된 동물은 아니었다. 때문에 <쥬라기 공원>의 인재는 인위적인 재해임과 동시에 인간의 손길 너머에 있는 자연으로 인한 재해다.
<쥬라기 월드>는 첫 영화부터 그것을 부정한다. 특수한 목적을 지닌 채 제작된 “인도미누스 렉스”부터, 아예 무기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과 본작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공룡들은 자연 혹은 야생이라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된다. 뇌에 심어진 칩이 전기신호를 보내면 그것을 따라 행동하는 개체는 이미 <쥬라기 공원> 속 공포의 대상과는 다른 존재다. 만약 <폴른 킹덤>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슬라 누블라 섬을 벗어나 전 세계로 이동한 공룡들이 자연재해와 같은 것이었다면, <도미니언> 속 세계는 영화의 묘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어야 한다. <도미니언>은 이상한 방법을 택한다. 이 영화는 전편에서 공룡이 인간 세계를 향해 풀려난 지 4년가량 흐른 시점의 이야기다. 4년의 시간 동안 공룡은 적대의 대상이 되지도, 화합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영화는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공룡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들,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난 대기업 바이오신이 공룡을 단독으로 활용할 권리를 얻었다는 소식이 섞인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시작한다. 이 세계관 속에서 공룡은 야생으로 존재하는 한편 바이오신이 독점한 개체이고, 동시에 암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도미니언>의 이야기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쥬라기 공원>의 엘리(로라 던), 엘런(샘 닐), 이안(제프 골드브럼)이 뜬금없게도 바이오신의 헨리 우 박사(B.D. 웡)가 잘못 개발한 고대 메뚜기를 막고자 하는 것이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복제인간인 메이지(이사벨라 서먼)를 보호하던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와 오웬(크리스 프랫)이 바이오신에 납치된 메이지와 새끼 벨로시랩터를 구하러 간다는 이야기다. 프랜차이즈의 구 멤버와 신 멤버들이 만나는 이유는 이들이 우연하게도 바이오신을 방문해야 할 각자의 이유가 생겼다는 것뿐이다. 전자의 이야기가 전형적인 환경재난영화의 틀을 따라간다면, 후자의 이야기는 공룡을 소재로 삼은 첩보 액션에 가깝다. 양측을 오가던 영화는 두 팀이 만나는 장면의 효과를, 관객들의 환호를 기대했던 것만 같다. 이를테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속 ‘그 장면’ 같은 것 말이다. 물론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상황은 인위적 통제는 불가능하다는 <쥬라기 공원>의 테마를 계승하지도, 변형하지도, 뒤집지도 못한다. 서로 다른 두 장르가 교차되어 진행되며 <도미니언>은 동력을 잃었고, 고대 메뚜기와 복제인간 이야기의 틈새엔 공룡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졌다.
공룡을 완전한 자연으로, 그러니까 정글 어드벤처 영화에 뱀과 표범이 나오는 것처럼 다루려던 것일까? 하지만 영화 속 바이오신은 통제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필버그의 영화처럼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을 다루려는 것일까?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복제인간의 DNA를 통해 고대 메뚜기를 통제하는 것으로 향한다. 참, 바이오신의 통제를 받는 공룡들은 결국 통제에서 벗어난다. 순혈 공룡이 혼종 공룡을 죽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공룡의 활약은 끝이 난다. 영화의 마지막은 뜬금없게도 공존을 이야기한다. 사바나를 거니는 코끼리와 트리케라톱스, 들판에서 새들과 함께 활강하는 익룡, 고래와 만난 모사사우루스 등이 자연 다큐멘터리 풍의 화면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은 여러모로 어처구니없다. 공룡이 인간과 동물을 습격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려보자. 앞의 두 영화에서 인젠이라는 기업이 만들어낸 공룡은 그 자체로 교란종이다. 이번 영화 속 공룡은 그 공룡들과 바이오신이 만들어낸 혼종들이 뒤섞여 있다. <쥬라기 공원>이 인재를 <아나콘다>와 같은 동물 호러, 동물 테마의 재난영화로 풀어냈다면, <쥬라기 월드>가 인재 그 자체일 뿐인 재난상황을 담아냈다면, <도미니언>은 둘 중 무엇도 아니다. 이 영화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공룡과 조작이 가해진 공룡과 거대 메뚜기와 인간은 이 영화 속에서 애처롭게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공존이라기보단 A와 B가 한 화면 안에 있으니 공존하고 있다는 우기기에 가깝다. “Don’t move”라는 1편 속 엘런의 대사를 그와 오웬이 동시에 내뱉게 하기 위해 모든 인물을 한 프레임 안에 쑤셔 박은 것과 이 영화 전체의 구조는 동일하다. 기후위기, 자연, 동물, 공존 같은 단어들을 늘어놓는다고 의미와 주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것들을 너저분한 편집과 함께 흩뿌려두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