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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5. 2022

기억하기의 방법

<애프터 양> 코고나다 2021

*스포일러 포함


 기억은 조립품이다. 이는 기억이 롱테이크나 1인칭 시점숏이 아니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러 영상물에서 기억은 저런 방식으로 표현된다. <블랙미러> 시즌1의 “당신의 모든 순간”은 그레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사람이 보는 모든 것을 1인칭으로 기록하고 그것이 기억이 된다. 비디오게임 <싸이버펑크 2077> 속 유사한 기술인 브레인 댄스는 특정 시점의 시공간이 끊기지 않고 지속되는 기록을 기억으로 다룬다. 하지만 기록은 정말로 롱테이크이거나 1인칭, 혹은 둘의 결합으로 구성되는가? <애프터 양>은 그에 대한 흥미로운 대답 중 하나다.

 영화 속 세계는 민간인이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와 복제인간과 같은 기술들이 상용화되어 있다. 제이크(콜린 파렐)와 카이라(조디 터너 스미스)는 중국계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를 입양한 뒤, 딸의 문화적 뿌리를 교육해줄 테크노 사피엔스(해당 세계관의 안드로이드) 양(저스틴 H. 민)을 구입한다. 어느 날 양이 작동을 멈추는 것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양을 친오빠처럼 대하던 미카는 양을 고쳐달라 말하고, 제이크는 양을 고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양은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신 그는 양의 중심부에 놓인 기억장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들여다본다. 양의 기억엔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지는 않다. 충격적인 비밀이나 반전 같은 것은 없다. 양의 기억은 기계인 그의 눈이 곧 카메라라는 상황에 따라 1인칭 시점숏들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설정은 모든 순간이 기록되는 것이 아닌, 양의 인공지능이 자의적으로 판단한 어떤 순간들만 기록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제이크가 판독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양의 기억은 몇 초 단위의 짧은 이미지가 무수히 기록된 성좌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요나스 메카스의 홈비디오 작업들을 보는 것처럼 몽타주되어 제시된다. 그 순간들은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다. 양이 미카와 보낸 시간, 나무, 제이크의 차 도구, 집의 풍경, 도시의 풍경, 또 다른 풍경 등이 교차되며 등장한다. 

 양은 중고품이다. 제이크의 집에 도착하기 전 두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영화 중후반부에 드러난다. 세 집의 기억은 시간순을 따라 알파, 베타, 감마라는 라벨링으로 저장되어 있다. 제이크는 세 기억을 모두 둘러본다. 베타 기억 속 양의 모습은 어딘가 우울해 보인다. 두 번째 집의 주인은 양을 5일 만에 반품했다. 알파 기억 속 양은 한 사람의 삶 대부분을 함께한다. 에이다(헤일리 루 리처드슨)라는 여성이 아들을 갖고, 그를 키우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시간이 양의 기억 속에 압축되어 있다. 양이 두 번째 집과 달리 제이크의 집에서 오랜 시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미카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임과 동시에 에이다의 복제인간을 만났기 때문임이 밝혀진다. 이는 제이크가 양의 기억에서 처음 에이다의 복제인간을 발견했을 때는 밝혀지지 않는다. 제이크가 충분히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짧은 기록물일 뿐인 이미지들이 몽타주되어 덩어리로 제시될 때 “양의 기억”이 성립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던 제이크가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는 플래시백이다. 이 장면은 익숙한 플래시백, 과거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1.85 : 1 화면비로 등장하던 양의 기억과 구분되는 제이크의 기억은 영화의 메인 화면비인 2.35 : 1 비율로 등장한다. 또한 제이크의 기억은 계속 덧씌워지고 덧붙여진다. 안드로이드인 양의 기억이 기계장치를 통해 저장되는 기록물이기 때문에 1인칭이고 선명하다면, 인간인 제이크의 기억은 3인칭이며 충분히 선명하지 못하다. 제이크가 양의 기억을 보던 중 자신과 양이 차에 관해 대화하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이 장면은 통상적인 2인 대화장면과도 다르게 촬영되었고, 그렇다고 롱테이크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제이크가 자신의 기억을 소환해내는 동안 반복해서 무시되는 180도 가상선, 살짝 변경되며 덧붙여지는 대사 등은 인간의 기억이 선명하고 온전한 기록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키아라가 양과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단순히 촬영과 편집의 차이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양과 얽힌 기억을 기억이 생성된 장소에서 떠올린다. 제이크는 양과 차를 나눠 마시던 테이블에서, 키아라는 양이 나비 수집품을 보관하던 장소에서 기억을 떠올린다. 이때 기억 사이사이 삽입되는 현재의 두 사람의 모습은 기억 속 양의 위치와 같다. 프루스트의 무의지적 기억 개념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두 회상 장면은, 양의 존재를 두 사람에게 상기시켜주는 장면임과 동시에 기억의 작동방식을 보여준다.

 글의 첫 문장을 반복하자면, 기억은 조립품이다. 기억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롱테이크도, 시점을 점유함으로써 만들어지는 1인칭 시점숏도 아니다. 많은 곳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두 방식은 기억이 아닌 기록의 재현에 가깝다. 기억은 양의 것처럼 무수한 기록들의 몽타주이다. 기억은 제이크와 키아라의 것처럼 계속하여 상기되며 덧붙여지는 이미지들의 조합이다. 양은 결국 다시 작동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의 제목 “양에게 작별 인사를”이 알려주듯이 <애프터 양>은 한 편의 고별사다. 누군가, 아니 어떤 존재와 작별하기 위해서 기억들은 무의식 바깥으로 소환되어야 한다. 때문에 <애프터 양>은 작별의 과정을, 무의식이 머금고 있던 기억들을 영사함으로써 가능해진 작별의 방식이 곧 기억하기의 방법임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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