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17. 2022

팬서비스도 되지 못한 IP 쇼케이스

<버즈 라이트이어> 앤거스 맥클레인 2022

 "1995년, 앤디는 장난감을 받았다. 그 장난감은 영화에 기반해 있었다. 이게 그 영화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이러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즉, 이 영화는 <토이 스토리> 세계관에 존재하는 영화 속 영화와 같다. 이미 <토이 스토리> 속에 존재한다는 설정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우주전사 버즈>가 존재했음을 떠올려본다면 어딘가 호들갑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설정 위에서 출발하는 <버즈 라이트이어>는 익숙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틀을 따른다. 우연히 외딴 행성이 불시착한 버즈(크리스 에반스)와 알리샤 사령관(우조 아두바) 일행은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특수 연료인 하이퍼 크리스털을 만들려 한다. 첫 번째 시험비행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4분 간의 비행 후 돌아온 버즈 앞의 세상은 특수상대성이론이 설명해주는 것처럼 4년가량이 흐른 뒤다. 버즈는 반려로봇 삭스(피터 손)에게 크리스털 배합 연구를 맡기고 계속 실험을 반복한다. 마지막 실험이 끝나고 돌아온 버즈, 그에겐 며칠 동안 반복된 실험비행이었으나 알리샤는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사령관은 실험 중단을 명령한다. 이에 반발해 마지막 실험비행을 떠난 버즈, 하지만 그가 떠난 사이에 저그의 로봇 군단이 행성을 침공했다. 버즈는 알리샤의 손녀 이지(케케 팔머)와 그의 동료들의 힘을 빌려 저그를 무찔러야 한다.

 숨 가쁘게 적은 것처럼, <버즈 라이트이어>의 이야기 전개는 정말 빠르다. <인터스텔라>와 같은 작품들로 광속 여행이 시간지연을 발생시킨다는 설정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제목이 버즈의 이름인만큼, 영화는 버즈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때문에 알리샤와 이지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는 조력자 내지는 버즈의 심리적 각성을 위한 존재에 머무른다. 물론 그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독단적인 우주 영웅이 홀로 임무를 완수하려다 실수를 저지르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다시 홀로 임무를 수행한다는 이야기 속에서, 버즈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만회할 수 있는 실수를 보여주기 위해 혹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지루한 점은, 버즈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세계처럼 느껴지지도, 어떤 흥미로운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버즈의 이야기처럼 다가오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을 비롯한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오마주와 패러디는 이 영화의 성격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야기의 한계를 정해 놓는 것만 같다. “무한한 우주, 저 너머로!”라는 버즈의 캐치프레이즈는 그 한계 속에서 공허해진다. 기존에 수없이 존재해온 익숙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 버즈 라이트이어라는 캐릭터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앤디가 보았던 그 영화를 2022년에 만들어내는 대신, 2022년의 앤디가 만들어낸 버즈 라이트이어의 이야기라는 설정으로 가상의 속편을 만든다거나, 영화감독이나 애니메이터가 된 앤디가 버즈 라이트이어의 영화화를 진행한다는 이야기 같은 것을 만드는 게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오마주가 난무하는 와중에 <토이 스토리>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은, 영화 서두의 자막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간 <토이 스토리> 시리즈 속에서 버즈가 선보여온 액션, 가령 1편 속 “멋지게 추락하기”나 2편 오프닝에서 등장한 버즈 장난감 CF 영상 속 저그와의 결투 같은 것을 녹여낼 수는 없었을까? 명백히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팬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라고 하기엔, <버즈 라이트이어>는 독창성도 팬서비스도 부족하다. 가상 IMAX 카메라(3D 애니메이션은 가상 카메라로 촬영이 이루어짐)로 촬영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에 부합하는, 놀라운 기술력의 이미지가 이어지지만 그뿐이다. 볼거리는 풍성하지만 그것뿐인 IP 쇼케이스는 이미 수차례 봐왔던 것 아닌가? <루카>나 <메이의 새빨간 비밀> 같은 재기 넘치는 영화들 대신 상대적으로 “대작”인 이 영화만이 극장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공요인을 무시하고 맹신한 결과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