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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25. 2022

불후의 엔터테인먼트

<탑건: 메버릭> 조셉 코신스키 2021

 <탑건: 메버릭>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오프닝 크레딧이다. 출연진, 제작자, 스탭, 감독 순으로 이름이 등장하는 평범한 오프닝 크레딧의 꼴을 하고 있지만, 처음 등장하는 이름은 루스터 역의 마일즈 텔러다. 톰 크루즈의 이름은 제작자 크레딧에서만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탑건: 메버릭>의 주연배우로서 톰 크루즈의 이름은 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하지 않는다. 실로 엄청난 자부심이자, 자의식과잉에 가까운 방식이다. 영화의 제목에 캐릭터 명인 “메버릭”이 등장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크레딧을 설명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던, 톰 크루즈의 이름이 배제된 오프닝 크레딧은 역설적으로 톰 크루즈의 거대한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톰 크루즈가 없다면 이 영화는 성립할 수 없다.

 잠시 톰 크루즈가 어떤 배우인지 되짚어보자. 1983년 <위험한 청춘>으로 첫 주연을 맡은 이후 액션, 멜로, 판타지, SF,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했다. 스필버그, 코폴라, 큐브릭, PTA 같은 거장과도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왔다. 본격적으로 액션 스타의 명성을 얻은 것은 1996년 <미션 임파서블>부터다. 그 이후 대부분의 스턴트를 직접 소화하는 것은 물론, 위험한 스턴트에 중독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아찔한 스턴트들을 소화해왔다. <탑건: 메버릭>의 출연조건은 직접 전투기를 모는 것이었고, 실제로 톰 크루즈를 포함한 파일럿 역할의 배우들은 F-18 전투기에 직접 탑승하여 영화를 촬영했다. 

 흥미로운 것은 “액션스타” 톰 크루즈의 위치다. 일반적으로 액션스타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면, 중화기를 가볍게 들고 난사하는 실버스타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워제너거,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동작을 보유한 이소룡, 척 노리스, 장 클로드 반담 같은 배우들, 혹은 특정한 액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는 제이슨 스타뎀 같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톰 크루즈의 액션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총격? 근접격투? 시그니처 동작? 톰 크루즈의 액션이라 할 때 떠오르는 것은 (매번 등장하는 달리기를 제외하자면) 탈 것을 몰거나, 어딘가에서 뛰어내리거나, 건물이나 절벽을 등반하는 모습이다. 그나마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모습은 바이크를 운전하는 모습 정도다. 톰 크루즈의 액션은 극한의 스턴트 그 자체이며 다른 것으로 규정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버스터 키튼에서 성룡으로 이어지는 슬랩스틱 스턴트의 계보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톰 크루즈의 스턴트는, 물론 종종 코미디를 동반하긴 하지만, 코미디 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때문에 “액션스타” 톰 크루즈는 일종의 고유명이다. 그는 여러 방면에서 대체되지 못한다.

 8편으로 종료가 예정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그렇지만, <탑건: 메버릭> 또한 톰 크루즈의 존재가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영화다. 영화 속 전투기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아이언맨>의 클로즈업을 연상케 하는 비행장면들에서의 클로즈업, 음속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전투기들, 그 전투기에 탑승해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 등은 대부분이 실제로 촬영된 이미지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사전정보 없이 그것을 CG로 그려진 이미지와 분간할 수 없다. 아니, 지금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처한 상황에서 그것을 구분하려는 것 자체가 넌센스에 가깝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탑건: 메버릭>의 이미지가 실제 하늘에서 촬영된 것임을 믿는다. 그것은 오로지 톰 크루즈의 공이다. 톰 크루즈가 이번 영화 바깥에서 쌓아 올린 이미지, 톰 크루즈라는 고유명에 관한 관객들의 집단기억이 만들어낸 어떤 신뢰가 이 영화를 성립시킨다. 이러한 형태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할리우드 배우/감독/제작자가 더 있을지 모르겠다. 

 냉전 시기 제작된 전작의 적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가상의 국가였다. 이번 영화에서 그러한 설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순히 우라늄 공장을 운영하려 하는 가장의 국가 혹은 조직이 등장할 뿐이다. 즉, 이번 영화는 명확한 적을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80년대 ‘하드 바디’ 액션영화가 체현하던 경찰국가로서의 미국 이미지, 00년대 아랍권 테러조직을 적으로 설정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던 시도들과 다르다. 이번 영화의 적은 차라리 “적을 위한 적”이었던 <어벤져스>의 치타우리 종족과 다름없다. 여전히 미군의 홍보영화 성격을 띠고 있지만, 정치적 맥락을 최소화하며 오로지 액션에, 그리고 루스터와 아이스맨(발 킬머) 등 전작과 연결되는 캐릭터에 집중하여 안정적인 속편이 되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탑건: 메버릭>은 톰 크루즈의 커리어 자체에 관한 영화가 된다. 아니 그의 커리어를 통해 비로소 성립하는 영화가 된다. <미션 임파서블>이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는 시리즈물의 한계를 갖고 있다면, <탑건: 메버릭>은 오로지 톰 크루즈라는 일종의 기념비를 위해 복무한다. 영화 초반 무인 전투기 개발을 위해 메버릭이 개발하던 극초음속기 ‘다크스타’ 개발에 반대하던 케인 제독(에드 해리스)은 “끝은 정해져 있네, 매버릭. 자네 같은 파일럿들은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고, 메버릭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닙니다.”라 응수한다. 이 대사를 두고 액션스타의 육체를 더는 필요치 않은 작금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관한 코멘트로 읽는 것은 당연한 연상이다. 물론 메버릭의 입을 빌려 말하는 톰 크루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저 코멘트는 소위 “리얼 액션”이 CG 액션보다 우월하다는 어떤 고정관념에 관한 메타비평으로 기능하지만, 저 코멘트에 어울리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톰 크루즈 자신이 거의 유일하다. 

 때문에 저 말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관한 메타비평이라기보단, 톰 크루즈 자신에 관한 자평이라 보는 게 맞겠다. <탑건: 메버릭>을 통해 톰 크루즈는 리얼 스턴트의 화신으로 거듭났다. 아니, 그러한 존재로서 자신의 이름을 영화에 기입하지 않고서도 관객의 뇌리 속에 이름을 새겨 넣는 놀라운 일을 달성해낸다. 모든 배우는 유일무이하지만, 톰 크루즈의 커리어는 그것을 넘어선다. 오프닝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하지 않고서도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는 영화인이 또 있을까? 이 영화의 흥행에 팬데믹 기간 동안 촬영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현장에서 벌어진 여러 이슈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그간 그의 커리어가 성실함의 반증일 뿐이었다면 <탑건: 메버릭>은 “액션스타” 내지는 “할리우드 스타”라는 이름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정점이다. 이 영화가 불후의 걸작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탑건: 메버릭>은 걸작이 되진 못한다. 하지만 불후의 엔터테인먼트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액션스타의 계보 속에서 가장 거대한 변종인 톰 크루즈는, 결국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형태의 영화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p.s. 지인과 댓글의 지적을 받아 확인해보니, 오프닝 크레딧에 "배우" 톰 크루즈의 이름이 나오긴 한다. 다만 다른 배우/스탭/제작자/감독의 이름이 "탑건"을 소개하는 자막과 영화 제목 이후에 나온다면, 톰 크루즈의 이름은 배급사/제작사 명과 탑건 소개 자막 사이에 홀로 동떨어져 등장한다. 때문에 본문이 지적하고 있는 오프닝 크레딧에서 톰 크루즈가 자신을 위치시키는 방식의 효과가, 본문에서 설명하는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판단해 본문을 수정하는 대신 이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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