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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05. 2022

성장서사의 딜레마

<토르: 러브 앤 썬더> 타이카 와이티티 2022

*스포일러 포함


 MCU의 영화 중 유일하게 네 번째 솔로 타이틀 영화를 갖게 된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새로운 여정은 오랜 기간 지속된 시리즈물의 단점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토르의 은퇴식도, 새로운 캐릭터로 승계되는 세대교체도 아니다. MCU의 트리니티라 할 수 있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각각의 방식으로 은퇴(<어벤져스: 엔드게임>) 및 세대교체(<팔콘과 윈터솔저>, 공개 예정인 <아이언하트> 드라마)를 진행하는 와중에 발표된 마이티 토르/제인 포스터(나탈리 포트먼)의 (재)합류 소식은, 최근 여러 프랜차이즈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원작 코믹스에서 여러 캐릭터를 통해 전개된 바 있는 젠더-스와프를 떠올리게 했다. 다만 공개된 본편의 이야기는 원작 코믹스 속 캐릭터의 결말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쿠키영상은 또 다른 토르의 솔로 타이틀 영화를 예고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토르는 다시 한번 퇴행한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이야기가 ‘인피티니 사가’ 전체에 걸쳐 진행된 일종의 성장기였음을 상기해보자. 토르는 매 영화마다 이어진 가족과 친구의 죽음 속에서 조금씩 성장했지만, 새로운 영화를 출발시키기 위해 다시금 뒤로 되돌아간다. 물론 천 년을 살아온 신에게 ‘인피니티 사가’는 매우 짧은 시간이겠지만, 이 짧은 시간에 모든 고난과 성장을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와 같은 변호는 핑계에 불과하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타노스와의 전투 이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함께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는 토르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부모님도, 동생도, 친구도 세상을 떠나고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토르는 어떤 공허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아스가르드의 왕 발키리(테사 톰슨)가 격무에 시달리는 동안 ‘신’인 토르는 태평하게 명상을 즐기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코르그(타이카 와이티티)의 입을 빌려 전해지는 토르의 공허함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초반부를 통해 전개된 것의 반복이다. 가족이 죽고 누나는 죽여야 했으며 친구들마저 죽은 상황. 때문에 <토르: 러브 앤 썬더>라는 새로운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토르와 제인 사이의 관계 정리뿐이다.

 문제는 그것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팬들의 염원에 힘입어 마침에 영상화된 마이티 토르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제인 포스터와 묠니르의 힘으로 강력한 신이 된 마이티 토르를 오가는 나탈리 포트먼의 연기는 이번 영화 속 가장 큰 볼거리다. 다만 그것이 영화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마이티 토르의 이야기가 아닌 토르의 이야기다. 마이티 토르가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할지라도, 그의 이야기는 토르의 성장을 다시 한번 이끄는 역할 이상을 수행하지 못한다. 더불어 신에게 버림받은 뒤 전설 속 무기 네크로소드를 얻어 “신 도살자”가 된 고르(크리스찬 베일)의 이야기와 토르-제인 사이의 이야기는 완전히 결합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 도살자”의 이야기는 토르-제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도구임과 동시에, 토르의 또 한번의 성장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였던 마이티 토르/제인 포스터의 이야기가 도구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가깝다. 제인 포스터가 고르에게 살해당한 다른 신들처럼 황금빛 가루가 되어 사라지던 것을 떠올려보자. 제인 포스터는 마이티 토르라는 이름의 신이 되어 죽는다.

 하지만 이는 해당 캐릭터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고르가 “신 도살자”로 거듭나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 오프닝 시퀀스는 거대한 맥거핀이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고르와 제인, 두 캐릭터와 엮이는 토르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엮여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내는 형태의 플롯이 되는 것에 실패한다. 이미 성장을 끝마친 캐릭터를 다시금 성장시키기 위해 택한 퇴행은 이미 보여준 이야기를 도구만 바꾸어 다시 진행하는 것에 다름없다. <토르: 러브 앤 썬더>가 전작의 캐릭터들을 어떻게 재활용하는지 떠올려보자. 토르 일행에게 얼떨결에 무기를 제공해주는 한량 그랜드마스터는 제우스(러셀 크로우)로 대체되었다. 동등한 능력을 지닌 동료로서 로키의 역할은 마이티 토르가 물려받는다. 시프(제이미 알렉산더)를 비롯한 아스가르드 전사 친구들의 역할은 발키리와 코르그가 이어간다. 모든 신을 죽이겠다는 고르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 속 캐릭터 활용법은 전작의 헬라와 다르지 않다. 제인 포스터를 익숙한 트로피 여자친구 캐릭터에서 벗어나게 한 것을 제외하면, 이번 영화는 전작의 이야기들을 전작보다 못한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토르가 다시 퇴행하지 않은 부분이라면, 헤임달의 아들 액슬을 대할 때의 모습뿐이랄까?

 결국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처럼 새로운 시리즈를 위한 주춧돌이 되지도, 성대한 은퇴식이 되지도 못했다. 타이카 와이티티 스타일의 재치와 이제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MCU 풍 스페이스 오페라의 이미지, 다양한 신화에서 차용한 신적 존재들의 등장 등은 119분 동안 관객을 즐겁게 해 주지만, 기존의 MCU 영화들처럼 주인공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토르: 라그나로크>가 MCU의 관성적인 만듦새에 적당한 변주를 가한 즐거운 테마파크였다면,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롤러코스터를 탄 뒤에 탑승한 모노레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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