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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2. 2022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후기

<듀얼: 나를 죽여라> 라일리 스턴스 2021

<호신술의 모든 것>으로 한 차례 부천을 찾았던 라일리 스턴스의 신작. 전작은 유해한 남성성에 관한 흥미로운 블랙코미디였다면, <듀얼>은 현대인의 고독감을 말하려는 것만 같다. 죽음이 예정된 시한부가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을 대체할 '더블'을 만들 수 있지만, 죽지 않게 되어 자신과 더블이 공존하게 되자 목숨을 건 결투를 벌여 둘 중 하나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법이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다. 주인공 세라(카렌 길런)이 처한 상황이 그런 것이다. 세라는 결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투훈련관 트렌트(아론 폴)에게 훈련을 받는다.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영화의 건조한 톤은 그것과 잘 맞지 않는다. 영화는 세라를 둘러싼 세상의 건조함(가령 이 세계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화면의 디자인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을 강조하지만, 정작 세라가 놓여있는 어떤 상황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 세라가 애인 및 엄마와 겪는 교류의 단절은 이야기되지만 그리 깊지 않고, 그가 더블을 만들게 되며 얻은 빚이라던가 결투가 결정된 이후 막대한 돈을 쓰게 되는 것 등의 이야기는 언급만 될 뿐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세라가 놓인 문제상황 자체를 세팅하는 것에 실패한다. 애인은 영상통화로 중요한 이야기를 통지하며, 엄마의 애정표현은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세라의 악몽은 세라의 상황을 전달하는 장치가 되지 못한다. 트렌트와의 훈련과정은 너무나도 압축되어 있어 지루하고, 세라가 더블과 다시 만나는 후반부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아이러니로 가득한 상황을 제시하지만 영화가 가는 길은 너무나도 평탄하다. 마치 아무런 풍경도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지루하게 달려가는 것만 같은 영화였다.

<천년환생: 월하의 공동묘지 2> 남기남 1996

영화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상철은 출세를 위해 회장과 모의해 연인 소영을 죽이고 회장의 딸과 결혼한다. 소영은 원한이 가득한 귀신이 되어 그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다. <천년환생>은 좋은 이야기, 좋은 각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익숙한 이야기를 정직한 플롯 구성을 통해 풀어나간다. 다만 모든 장면이 조악하다. 귀신의 분장은 학예회의 것처럼 느껴지고, 시각효과는 80년대의 영화들보다 못하다. 하지만 남기남 감독은 그것을 하나의 스타일로 뻔뻔하게 밀고 나간다. 이 영화가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동차가 전복되거나 폭발하는 장면이나 건물이 붕괴되는 장면은 다른 영화나 자료화면의 이미지가 (필름을 훔쳐다 쓴 것이 아니라) TV화면에 나오는 것을 찍어 자신의 것인 양 써먹는다. 회장의 손녀가 촛대나 십자가로 이상한 퇴마를 선보일 때 흘러나오는 라틴어 성악이라던가, 죽은 회장에 빙의된 상철과 소영의 이소룡 기합과 라이트세이버가 뒤섞인 클라이맥스 액션을 보고 있자면 이것은 조악함 자체가 스타일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스타일에 동의할 수 있는 관객만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영화를 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은 조롱이나 냉소가 아니라 그 뻔뻔함에 대한 존중이다.

<진주의 진주> 김록경 2022

영화감독 진주는 영화를 찍으려던 카페가 철거되자 다른 로케이션을 찾아 진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발견한 '삼각지다방'은 자신이 생각하던 최적의 로케이션이지만, 이곳 또한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진주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반대하던 극단 연출가 박 연출을 비롯한 이들의 행동에 진주는 동참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연상호의 <염력>을 보며 느꼈던 묘한 불쾌감을 다시 느꼈다. 다만 <염력>의 악당은 명백한 악이었다면, 이 영화에 악역이 없다. 다방 사장의 말처럼 문화예술인들은 다방이 존속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서울사람 진주의 입장에서 그곳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것은 오지랖에 가깝다. 영화는 진주의 오지랖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데 실패한다. 문화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다룸에 있어 그 공간을 오가던 문화예술인들의 감정은 있지만, 공간을 둘러싼 제도, 정책, 자본 등의 이슈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다. 지역 미디어센터가 등장하지만 그곳의 역할은 온전히 소개되지 못하고, 문화재단은 익숙한 공무원 악역의 위치에 있을 뿐이며, 건설노동자들은 갑자기 (부정적 의미가 내포된 단어로서의) 철거용역이 된다. 다만 영화는 공간을 둘러싼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영화의 엔딩은 그것만으로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임과 동시에 무책임한 도피다. 그 이상의 시야가 영화에 제시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극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가 제시할 수 있는 엔딩이라는 생각도 든다.

<외계인 아티스트> 호야 세이요 2021

빤스만 입은 대머리 아재가 갑자기 폭☆8 하는 순간에 그냥 정줄 놓고 잠들었습니다...

<지옥의 화원> 세키 카즈아키 2021

OL(오피스 레이디)가 고등학교 일진들처럼 패싸움을 벌인다면? 이러한 상상 하에서 출발한 <지옥의 화원>은 의외로 원작이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원형으로 삼는 작품은 소년만화, 그중에서도 [크로우즈 제로], [상남2인조] 등의 일본 양키(양아치) 만화들이다. 이 만화들은 극 중 두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지침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의 흥미로운 상상력은 OL이 맞짱과 패싸움을 일삼으며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는 일종의 성별반전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OL이 여성이기에 그 안으로 온전히 포섭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중의 작용을 한다. 영화의 웃음포인트는 대부분 그러한 부분에서 발생한다. 양키나 야쿠자처럼 거친 말을 내뱉다가도 재활용품이나 복사용지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방식이다. 더불어 작품의 중간보스격인 이들이 남자배우들이 여장하고 나온다는 점 등을 떠올려보면, 이 영화는 스스로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며 자폭하고 있다. 영화의 엔딩은 그것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무시하긴 어렵다. 주연인 나가노 메이의 액션연기가 아쉽긴 하지만, 류승완의 초기작(<짝패>나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떠올리게 하는 액션, 자신의 상황을 소년만화적으로 해석하는 메타적인 유머 등은 분명한 장점이다. 다행히도 부천영화제는 그것을 즐기기 충분한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코리아 판타스틱 단편 1>

<존재의 집>, <각질>, <좀!>, <이방인>을 봤고 딱히 할 말이 없다. 앞의 두 편은 어딘가 익숙했고, 뒤의 두 편은...

<악은 악으로> 월트 데이비스 1972

극렬한 기독교 신자인 세라는 쾌락적 섹스에 반대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 밤을 보내는 남자들을 살해한다. 우연히 세라를 만난 레즈비언 페니는 그의 계획에 동조하게 된다. 세버린 필름에서 복원 및 블루레이 출시를 진행한 '소프트코어 포르노'인 이 영화의 만듦새는 어처구니 없다. <악은 악으로>는 쾌락적 섹스의 반대하는 자칭 수녀가 남자들을 학살하는 슬래셔도, 그러한 이야기를 빙자한 포르노도 되지 못한다. 되려 성기를 향한 클로즈업은 웃음을 낳는다. 이렇게 지루하게 섹스씬을 찍을 수 있나 싶은 방식으로 촬영된 섹스씬 이후 등장하는 코미디 세트는 이 영화가 가진 유일한 무기다. 그 어처구니 없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 구하기> 코너 맥마혼 2021

작년의 부천에 <베니 러브 유>가 있었다면 올해는 이 작품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날아온 이 영화는 타이카 와이티티의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가 그랬던 것처럼, 호러 장르의 가장 오래된 크리처인 뱀파이어의 장르적 컨벤션을 가지고 논다. 부천영화제에 종종 등장하는 홈메이드 호러-코미디의 조악함을 고스란히 품고 있으면서도 의외의 스케일을 보여주기도 하는 이 영화는 뱀파이어 장르의 탈을 쓴 가족 드라마다. 동시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마약 문제에 관한 은유이기도 하다. 뱀파이어가 된 데코가 처음 피를 들이킨 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지역 특정적인 영화라는 개념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것의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임과 동시에, 모두를 즐겁게 할 제너럴한 코드를 지닌 영화다.

<곡비> 롭 자바즈 2021

'앨빈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이 퍼지고, 감염자들은 폭력성이 극대화되어 살인, 식인, 강간, 폭행을 저지른다. 그렇게 타이베이시가 난장판이 되고, 얼떨결에 생이별하게 된 젊은 커플이 다시 만나기 위해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인다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곡비>는 하드코어하다. 부천영화제의 최근 상영작 중에서도 가장 빡센 수위를 자랑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들과 함께 대만의 정치적 이슈를 끌어들이는 이 영화는 얼핏 <세르비안 필름>과 같은, 하드코어한 장르의 사회비판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곡비>는 전자의 측면에서 <배드 럭 뱅잉>과 같은 작품에 미치지 못하고, 사회비판적 대만 장르영화의 측면에선 같은 좀비 장르인 <겟 더 헬 아웃>에 미치지 못한다. 남은 것은 살육의 수위 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극도로 강조된 인간의 폭력성이다.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 가정한 상태로 전개되는 살육은, 살육을 위한 살육으로서만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장르영화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곡비>의 중요한 미덕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는 명확한 불쾌함을 제공한다. 다만 그 정도가 모두에게 다를 뿐이다. 당장 당신 옆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본 사람이라면, <곡비>가 보여주는 상황은 끔찍하리만큼 피부에 와닿는 것일 것이다. 영화의 어떤 관음적인 태도들에 동의할 수 없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불쾌감의 정체만큼은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데이곤> 스튜어트 고든 2001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브라이언 유즈나가 각본과 제작을 맡은 영화. 다만 같은 제목의 단편보단 중편 분량의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물론 여기에도 '데이곤'이라는 신이 등장하지만 말이다. 영화는 1920년대 미국에서 2000년대 초 스페인 인근으로 배경을 옮겼다. 그것 말고는 원작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옮기는 것에 충실하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 미지의 거대한 무언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라는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중심을 차지하는, 자신이 모르는 타자 자체에 관한 공포. 스튜어트 고든과 브라이언 유즈나 콤비는 <좀비오> 등에서 이미 몇 차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적이 있다. 물론 <좀비오>의 비교적 소소한 스케일과 다르게 마을 하나를 통채로 다뤄야 하는 <데이곤>은 예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00년대 초의 어설픈 CG로 그려진 데이곤(이라지만 크틀루에 가까워 보이는)의 이미지는 특수분장으로 만들어진 '어인'들의 모습에 비해 인상적이지 못하다. 다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데이곤>은 특유의 꺼림찍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게임 [블러드본]의 '어촌'을 가본 사람이라면, 그곳의 분위기를 이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 흉추> 박세영 2022

이전에 썼던 리뷰로 대체. https://brunch.co.kr/@dsp9596/1002

<린치/오즈> 알렉산더 O. 필립 2022

그간 <에이리언>, <싸이코>, 존 포드 등의 영화를 분석한 비디오 에세이를 선보였던 알렉산더 O. 필립의 신작은 데이빗 린치의 영화와 <오즈의 마법사> 사이의 연관성을 다룬다. 특이한 점은 감독의 관점에서 린치와 <오즈의 마법사> 사이의 연관을 탐구한다기보단, 다른 영화감독과 비평가를 초청해 같은 주제에 관한 여러 관점을 소개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필립의 초대에 응한 이는 비평가 에이미 니콜슨, 영화감독 로드니 에스쳐, 존 워터스, 카린 쿠사마, 벤슨&무어헤드, 데이빗 로어리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만(가령 존 워터스의 챕터에서는 그와 린치 사이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가 절반을 차지한다), 공통적인 이야기는 두 가지로 좁혀진다. 하나는 수십년 동안 미국의 아이들이 보아온 <오즈의 마법사>가 담아내는 미국과 린치의 미국 사이의 연관성이고,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두 영화가 그 경계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이레이저 헤드>에서 <트윈 픽스: 더 리턴>에 이르는 린치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오즈의 마법사>에 연관된 텍스트가 인용되는 장면들을 잔뜩 보여주며 연관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린치/오즈>에 참여한 감독들은 린치 영화의 적극적인 해설자가 되길 자청하기보단 린치를 경유해 자신이 <오즈의 마법사>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데이빗 로어리는 <오즈의 마법사>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자신이 영향 받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늘어 놓고, 영화는 애니메이션들과 로어리의 영화를 병치시킨다. 알렉산더 O. 필립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린치/오즈> 또한 린치의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것은 그의 꾸준한 한계에 가깝다. 다만 그의 작업은 대상이 된 작품/작가의 영화 세계 속을 탐험하는 데 도움을 줄 길잡이 정도로는 기능한다. 필립의 영화는 스스로 노란 벽돌길이 되길 자처한다. 우린 그 길을 밟으며 흥미로운 풍경을 마주하면 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트윈 픽스>가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매드 갓> 필 티페트 2021

<스타워즈> 시리즈와 <로보캅> 등에 참여한 전설적인 스톱모션 애니메이터 필 티페트가 30년 동안 매달린 영화. 대사나 자막이 거의 없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지옥 같은 지하세계로 내려온 주인공 어쌔신이 임무를 수행하려다 어떤 인간에게 붙잡힌다는 이야기다. 어쌔신을 따라 등장하는 영화 속 세계의 이미지는 끔찍하다. 어떤 면에서는 세계대전 당시의 폐허를 연상케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워즈> 속 제국군 기지의 풍경이 연상되기도 한다. 괴상한 외모의 크리처가 가득하고, 영혼없이 움직이다 사라지는 존재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필 티페트가 만들어낸 이 세상은 소멸 위기에 놓인 폐허다. 더 이상 망가질 곳이 없어 '사라짐'만이 가능한 공간, 영화는 그 세계를 탐험한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제대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로 등장하는 세 사람의 지위(외과의사, 간호사, 최후의 인간)를 떠올려보면, <매드 갓>은 단순히 지옥의 풍경을 묘사한 풍경화를 너머 필 티페트 자신의 작업에 관한 메타적인 이야기가 된다. 스톱모션은 더이상 주류가 아니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전처럼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영화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세계라면, 그것을 소멸시키는 게 자신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미친 신'의 이야기다. 영화 속 로봇 묘지에는 필 티페트의 대표적인 창조물인 <로보캅>의 ED-209가 버려져 있다. 짧게 스쳐지나가는 그것의 모습은 <매드 갓>이 무엇에 미친 세상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이스터에그다.

<목숨 건 스트리밍> 조셉 윈터, 바네사 윈터 2022

부부가 공동연출 및 주연을 맡은 영화. 90년대 말 <블레어 윗치>부터 <R.E.C>, <클로버필드>와 <파라노말 액티비티>까지 이어진 전성기 이후 파운드 푸티지 호러는 내리막을 걸었다. 모큐멘터리와 파운드 푸티지의 성격을 혼동한 <랑종> 같은 영화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 특유의 거친 이미지는 <더 비지트>와 같은 홈비디오의 차용으로, <언프렌디드>나 <호스트>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옮겨갔다. 동시에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실시간 스트리밍 플랫폼이 인기를 끌며, <곤지암>처럼 스트리머가 주인공인 호러 또한 등장했다. <목숨 건 스트리밍>은 그 중 하나다. 스트리머가 주인공인 호러는 실시간을 가정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파운드 푸티지와 다르다. 이 영화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한때 퓨디파이와 구독자 수를 겨뤘던 퇴물 스트리머 숀이 재기를 위해 유령의 집을 찾는다는 영화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다만 이 영화는 숀이 "이 영상은 일 년 뒤 발견된 것이다"라는 자막이 프린팅된 티셔츠를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파운드 푸티지와 자신이 다른 장르라는 점을 명확히 한 채 출발한다. 다양한 캠이 흉가 곳곳과 숀의 신체에 부착되고, 그만큼 다양한 구도의 숏이 등장한다는 것부터 이 영화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장점을 한껏 끌어온다. 스트리머에게 붙은 스폰서, 구독자들의 도네이션이나 투표 등을 통해 특정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 스트리머의 모습 등은, 이미 벌어진 일을 뒤늦게 발견한다는 컨셉의 파운드 푸티지와는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물론 이 영화는 스스로 자신의 성격을 폭로하기도 한다.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디제시스 외부에서 삽입된 음악 같은 것이 그러다하다. 그러한 아쉬움을 뒤로한다면, <목숨 건 스트리밍>은 파운드 푸티지 이후에 등장한 유사 파운드 푸티지 장르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젠틀> 라즐로 추야, 안나 에스테르 네메스 2022

보디빌더 에디나는 트레이너이자 애인인 아담과 살아간다. 한때 정상급 보디빌더였던 아담은 에디나의 성공이 자신의 과거를 되살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몸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약을 살 돈이 없게 되자, 에디나는 성매매로 돈을 벌고자 한다. 실제로 네 차례 세계 챔피언을 차지한 보디빌더 Eszter Csonka가 에디나를 연기했다. 그 때문일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카메라는 무대에 선 에디나의 몸을 샅샅이 훑는다. 섬세하게 조각된 것만 같은 근육들을 보고 있자면 어떤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이후의 이야기는 보디빌더 월드컵에 나가고자 하는 에디나의 이야기다. 그 과정을 보는 것은 에디나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유지 및 관리하는가를 보여준다.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약물을 주입하고, 그 약물의 부작용을 막아줄 약물들을 구입하고, 끊임없는 운동과 식단관리가 추가된다. 극 중 에디나처럼 Eszter Csonka 또한 건강상의 이유가 발생해 은퇴했다고 한다. 에디나의 삶과 겹쳐 보이는 Eszter Csonka의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팻셰이밍/슬럿셰이밍을 겪는 여성들의 삶과도 겹쳐 보임과 동시에, 그와 반대되기도 하는 보디빌더라는 독특한 세계의 단면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익숙한 전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수 있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영화 밖과 맞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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