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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4. 2022

영화의 착실함

<초록밤> 윤서진 2021

 아버지(이태훈)과 어머니(김민경), 아들(강길우)이 함께 하는 집, 집주인은 이곳을 팔 것이라 예고하고 그들은 거처를 옮겨야 한다. 한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가 살던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세 가족은 할아버지의 집을 정리하기 위해 떠나고,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아주머니를 만난다.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쫓겨난’ 사람들이 ‘쫓아내는’ 사람이 된 상황을 <초록밤>은 다루고 있다. 다만 <초록밤>은 그 상황을 자세히 전달하지 않는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이 영화의 이야기가 저런 것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세 가족 중 두 남자는 말이 적고, 어머니는 그런 두 사람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대사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화면을 꽉 채우는 크기의 오프닝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초록밤>은 여백으로 가득하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야기 상의 여백이 있고, 풀숏에서의 고정된 롱테이크가 주는 화면의 빈 공간들이 있다. 물론 비어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화면은 아니지만 말이다. 길게 촬영된 넓은 화면은 화면 속 공간들 중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 관객이 선택하게끔 한다. 움직이는 배우의 모습을 따라갈 수도, 화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집중할 수도, 초록빛이 두드러지는 이미지를 감상할 수도 있다. 생명력이나 활력 등을 의미하는 녹색은 영화 속에서 반대에 가까운 느낌으로 작동한다. 상황이 주는 강렬한 감정과 자기 앞가림은 그럭저럭 하지만 그저 무기력할 뿐인 두 남자 앞에 쏟아지는 녹색은 붉은색과 파란색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강렬함과 우울감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때문에 <초록밤>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관객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관객을 믿는 영화다. 감독이 생각한 무언가를 관객이 이미지에서 발견해주기를 바라고 믿는다. ‘쫓겨난’ 사람들이 ‘쫓아내는’ 사람이 된 상황의 폭력성, 무기력한 남자들과 살아온 어머니의 진절머리남, 죽음을 보며 죽음을 생각하거나 죽음 앞에서 세속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는 순간 같은 것 말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초록밤>의 착실함은 그다음을 기대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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