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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05. 2022

'포식자'가 아닌 '사냥감'의 이야기

<프레이> 댄 트라첸버그 2022

 <프레데터> 프랜차이즈의 다섯 번째 영화인 <프레이>는 1700년대 미국 북부 평야지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총을 든 군인도, 갱단도, 난폭한 전과자들도 아니다. 프레이의 주인공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코만치족이고, 그중에서도 여성인 나루(엠버 미드썬더)다. 나루는 오빠 타베(다코타 비버스)와 같은 사냥꾼이 되고 싶지만 아직 ‘큰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 엄마를 닮아 약 제조에 재능을 보이지만, 곰이나 사자 같은 큰 사냥에는 빈번히 실패했다.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외계인 프레데터(데인 딜리에그로)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나루는 부족의 생존과 자신의 ‘큰 사냥’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만의 전략으로 그에 맞선다. <클로버필드 10번지>로 데뷔한 이래 <더 보이즈>나 <블랙미러> 등 TV시리즈 작업을 이어왔던 댄 트라첸버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프레이>는 감독의 전작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작품이다. 폐쇄된 지하실에서 영화의 90% 이상을 진행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는 서부극 혹은 서부개척시대 배경의 영화들이 담아온 드넓은 자연의 풍광을 무대로 삼고 있다. 넓은 평원과 빽빽한 숲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프레데터2>를 제외한 프랜차이즈의 모든 작품(당연히 AVP는 제외)이 정글을 배경으로 삼은 것과 유사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2010년대에 제작된 두 편의 프레데터 영화가 새로운 설정을 도입하려다 실패한 것과는 다르게, <프레이>는 원작의 단순한 설정을 따라간다. 정체불명의 포식자가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을 먹이감으로 삼고 있으며, 주인공은 생존을 위해 싸운다는 것. 반면 제목을 포식자(프레데터)의 반의어인 프레이(먹이)로 삼은 것은 영화의 주인공이 어디까지나 나루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하드 바디’를 전면에 내세웠던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것이다.

 ‘포식자’와 ‘먹이’의 대비는 주인공이 코만치족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영화의 엔드크레딧은 “이 영화를 코만치족에게 바친다”고 적고 있다. 다시 말해, <프레이>는 서구 제국주의라는 포식자의 먹이가 된 원주민이 생존과 명예를 걸고 대항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유럽에서 온 백인 개척자들을 등장시키면서 이러한 구도를 확실히 보여준다. 더불어 주인공을 코만치족의 젊은 여성으로 설정했다는 점 또한 기존 서부극의, 오리지널 <프레데터> 속 ‘하드 바디’의 반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시대적 배경이 기존 작품들보다 300년 앞선 시점이다보니, 프레데터의 디자인 또한 다르다. 금속으로 된 헬멧과 슈트를 입고 플라즈마를 쏘던 기존 프레데터들과 다르게, <프레이>의 프레데터는 해골 같은 디자인의 헬멧을 쓰고 있다. 물론 인간들보다 진보된 형태의 기술을 사용하지만, 디자인적 측면에서 원시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러한 설정들은 단순히 포식자에 대항하는 먹이의 이야기를 넘어, 환경을 뛰어넘어 자신을 증명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의 이야기로 서사를 발전시킨다. 코만치족 역의 배우들을 실제 아메리카 원주민계 배우들로 캐스팅한 것은 물론, 훌루(hulu)에서는 코만치어 더빙을 제공한다는 것 또한 <프레이>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포인트다. <프레이>가 감독의 전작 <클로버필드 10번지>나 오리지널 <프레데터>만큼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근육질 군인이 잔혹한 프레데터에 맞선다는 ‘하드 바디’ 시대의 산물을 2020년대에 되살리는 것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수많은 80년대 영화의 속편/리메이크/스핀오프 중에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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