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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9. 2022

2022-09-19

1. 아벨 페라라의 <제로스 앤 원스>는 팬데믹이 배경이다. 극에서 팬데믹은 주요한 소재는 아니다. 단지 대부분의 인물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열감지 카메라 같은 것이 등장하고, "우리 모두 음성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같은 말이 나올 뿐이다.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인 쌍둥이 동생 저스틴을 막기 위해 로마를 찾은 CIA 요원 제이제이의 이야기 속에서 바이러스 감염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아벨 페라라는 언제나 장르영화를 만들었고, 언제나 장르가 지닌 질감을 영화의 표면에 쉼없이 덧바르는 일을 해왔다. <드릴러 킬러>와 <바디 에이리언>의 끈적함이나 <킹 뉴욕>의 차가움, <어딕션>의 무채색 등을 떠올려보자. <제로스 앤 원스>는 팬데믹 시기의 질감을 보여준다. 저화질의 화상회의 화면, 열감지 카메라의 화면은 영화 전체의 질감으로 확장된다. '외로운 늑대'에 가까운 저스틴과 그를 막기 위해 움직이는 제이제이의 상황은 그 자체로 락다운의 고독감과 맞먹는 정동을 발산한다. 두 사람은 마주하고 싶지만 마주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대면은 취조당하는 저스틴의 모습이 담긴 화면을 통해서야 이루어진다. 러시아 정보국이 관여된 테러라는 둥의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그러한 방식으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한 시기의 질감을 고스란히 떠안음으로써 정치적이다. "0들과 1들"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서 에단 호크가 직접 친절히 설명해주듯이, 이분법적인 분할을 부정하는 대신 둘이 필연적으로 공존하는 세계에 관한 것이다. 팬데믹이 극단화한 세계의 대립과 공존이 이 영화에 맴돈다.


2. 글 쓰는 체력이 부족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물리적인 체력이 부족해진 것도 있겠지만. 요즘은 직접 쓰는 것보단 어떤 영화와 어떤 필자가 만났을 때 어떤 흥미로움이 발생할지, 어떤 기획 속에서 영화와 영화 혹은 영화와 사람이 만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같은 것에 더 관심이 간다. 어쨌든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인건지... 여하튼 이제 막 준비하기 시작한 어떤 일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마음...


3. 윤종빈의 <수리남>은 그가 <공작>에서 보여준 간결함이 모조리 사라진 졸작이었다. <성적표의 김민영> 속 상황들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영화에서 계속 튕겨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마주>는 신수원의 전작들과 달리 만족스러웠다. 지극히 익숙하지만 당연한 울림을 제공하는 그런... 저메키스의 <피노키오>는 실망스러웠다. <하늘을 걷는 남자>와 <얼라이드>가 그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걸까.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 프로젝트는 누굴 데려와도 근본적으로 구릴 수밖에 없다. '실사'라는 명목 하게 셀 애니메이션의 표현은 모조리 소거되고, 다양성을 염두에 둔 캐릭터는 대체로 인간이 아닌 캐릭터에게 할당될 뿐이다. 영자원에서 진행한 50년대 괴수영화 기획전에서 <타란튤라>와 <고지라 대 킹콩> 밖에 보지 못한게 끝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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