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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2. 2022

2022-12-12

https://www.bfi.org.uk/sight-and-sound/greatest-films-all-time

1. 올해의 마지막 카페크리틱 녹음은 2022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역대 최고의 영화 100' 결과에 관한 것이었다. 샹탈 아케르망의 <잔느 딜망>이 1위를 차지한 것을 포함해 큰 변화가 있었던 리스트였다. 녹음 직전까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 많았지만, 막상 녹음이 시작되고 나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지만,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두고자 한다.

2. 가장 흥미로운 것은 2012년 리스트에서 빠진 24편의 영화와, 2022년 리스트에 새로이 추가된 23편의 영화다. 빠진 영화는 모두 백인 남성 감독의 작품이며, 2022년 새롭게 리스트에 진출한 감독은 셀린 시아마, 배리 젠킨스, 봉준호, 조던 필, 마야 데렌, 스파이크 리, 베라 치탈로바, 바바라 로든, 제인 캠피온, 줄리 대쉬, 미야자키 하야오, 우스만 셈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다. 리스트에 새로 진입한 감독 중 '백인 남성'은 없다. 2010년대에서야 새로이 발굴된 서구권 여성 감독, 북미와 아프리카의 흑인 감독, 동아시아의 감독, 그리고 리스트의 유이한 애니메이션 두 편을 연출한 미야자키 하야오 등이다. 그 밖에 왕가위, 샹탈 아케르망, 아녜스 바르다 등 아시아나 여성 연출자의 영화가 새로이 진입했다. 이 결과는, 특히 <잔느 딜망>의 1위와 2019년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30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번 투표에 참여한 비평가, 저널리스트, 연구자는 총 1,639명으로, Kevin B. Lee의 말을 빌리자면 1952년부터 2012년까지의 투표에 참여한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는 블로그를 통해 "올해는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인지 영미권 밖으로 투표자 풀을 넓힌 것 같습니다."라 적기도 했다. 다양성이 반영되었다 할 수 있는 이번 리스트는 그 말의 증거와도 같다. 그럼에도 어떤 배제를 발견할 수는 있다. 이를테면 100편의 리스트에는 두 편의 아프리카 영화(<투키 부키>, <흑인 소녀>)를 포함하고 있지만, 단 한편의 중남미 영화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부뉴엘이 멕시코에서 만든 영화도, 쿠바의 제3세계 영화도, 이 리스트에는 빠져 있다. 지난 10년 간 어떤 작품이 새로이 발굴되었으며 영화제와 시네마테크를 통해 유통되었는가를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저개발의 기억>과 같은 작품이 복원된 것이 최근 1~2년 사이의 일이다. 2032년의 리스트에는 중남미의 영화들이 포함될 것인가?


3.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새로이 추가된 2010년대의 작품이다. <겟 아웃>, <기생충>, <문라이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추가되었다. 이 영화들은 오스카와 칸에서 수상했거나, 거대 배급사의 유통망을 타고 전세계에 와이드릴리즈된 작품이다. 물론 리스트를 보는 사람은 이들보다 더욱 훌륭한 2010년대의 영화, '위대한 영화'라는 제목에 걸맞은 다른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페드로 코스타, 홍상수, 미겔 고미쉬의 2010년대는 어떠했는가? 2010년대 들어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한 크리스티안 펫졸트, 켈리 라이카트, 하마구치 류스케 등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투표에 참여권을 얻지 못한 사람의 푸념에 가깝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영화제와 수상, 대형배급사 등을 거치지 못한 리스트 바깥의 작품들은 이번 투표에 참여한 이들에게 적절히 당도하지 못했다고. 더 많은 이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것은, 최근에 더 많이 소비된/소개된 영화가 리스트에 올라왔음을 의도치 않게 보여준다. 이는 할리우드나 프랑스의 다양한 감독들이 리스트에 올라온 것과 달리,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등의 감독은 여러 편을 올린 반면 나루세 미키오, 이마무라 쇼헤이, 마스무라 야스조 등은 한 편도 올리지 못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침내 리스트에 등장(이는 지브리와 넷플릭스의 계약으로 인한 효과일까?)한 상황과도 유사하다. 오즈, 구로사와, 미조구치에 비해 나루세, 이마무라, 마스무라가 다른 곳에 적절히 소개되지 못한 상황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다. 물론 참여한 평론가들의 리스트가 공개되어야 조금 더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더불어 D. W. 그리피스의 <불관용>이 리스트에서 빠지면서 1910년대 이전 영화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https://www.bfi.org.uk/sight-and-sound/directors-100-greatest-films-all-time

4. 평론가 리스트 외에도, 480명의 감독이 참여한 감독 리스트도 흥미롭다.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1위를 차지한 이 리스트는 (전부는 아니지만) 각 감독의 리스트가 함께 공개되어 있다. 국내에선 홍상수와 봉준호가 참여하였다. 몇 가지 흥미로운 개별 리스트를 꼽아보자면, 하워드 혹스의 영화만 네 편(<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 <리오 브라보>, <베이비 길들이기>, <스카페이스>)을 꼽은 존 카펜터라던가, 오즈 야스지로만 세 편(<꽁치의 맛>, <초여름>, <동경이야기>)을 꼽은 코고나다의 경우가 눈에 띠었다. 혹스의 영화가 비평가 리스트에서는 빠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덧붙여 코고나다는 10편 중 8편을 아시아 감독의 작품(오즈, 이창동, 지아장커, 에드워드 양, 왕가위)으로 채웠다. 정말 의외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시아 영화를 한 편도 꼽지 않았으며 무르나우, 휴스턴, 루비치, 혹스, 레이, 히치콕, 랑, 알트만, 자크 베케르의 영화들로 리스트를 채웠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최근 <배드 럭 뱅잉>을 선보인 라두 주데의 리스트다. 그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사라예보를 기억하세요>  장 뤽 고다르

<이라크 영년> 압바스 파델

<불쌍한 어린 상속녀> 앤디 워홀

<지상의 크리스마스> 바바라 루빈

<어느 잊을 수 없는 여름> 루시아 핀틸리에

<365일 프로젝트> 요나스 메카스

<오, 인간!> 안젤라 리치 루치, 예르반트 지아니키안

<소멸하는 별빛> 켄 제이콥스

<빈혈증의 영화> 마르셀 뒤샹

<프라운랜드> 로날드 브론스타인


 압바스 파델의 다큐멘터리와 앤디 워홀, 뒤샹과 브론스타인, 고다르, 제이콥스, 메카스 등이 뒤섞여 있는 이 리스트는 그 임팩트만으로도 흥미롭다. 


5. 사이트 앤 사운드의 요청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내가 꼽아본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영화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답변이 될 수 있을 법한 작품들을 생각하고 꼽았다. 물론 매우 정석적인(?) 리스트라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셜록 2세> 버스터 키튼 1924

<카메라를 든 사나이> 지가 베르토프 1929

<역마차> 존 포드 1939

<만춘> 오즈 야즈지로 1949

<플레이타임> 자크 타티 1967

<클로즈 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0

<질산염 키스> 바바라 해머 1992

<영화의 역사(들)> 장 뤽 고다르 1998

<멀홀랜드 드라이브> 데이빗 린치 2001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홍상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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