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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30. 2022

우주를 너머 서로를 바라보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스 2022

*스포일러 포함


 ‘멀티버스’라는 설정은 매력적이다. 최근에는 주로 MCU나 DC애로우버스 등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IP의 유연한 사용을 위해 차용하고 있는 이 설정은 나와 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존재하는 다른 우주가 존재하며, 어떤 계기로 서로 연결되거나 만남을 갖게 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애로우버스의 “무한 우주의 위기”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익숙한 개념이다. <닥터 후>나 <릭 앤 모티> 같은 SF 작품은 물론 수많은 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멀티버스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다. <스위스 아미 맨>으로 이름을 알린 콤비 감독 다니엘스의 신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또한 이 설정을 끌어온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가족관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에블린(양자경)이 우연한 계기로 멀티버스의 위기를 막는 것에 동참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다. 영화는 에블린이 스파이더맨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그린 애로우와 플래시처럼 멀티버스를 붕괴시키려는 슈퍼빌런을 막아서는 이야기로 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MCU 같은 것과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매트릭스>를 근간으로 삼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와호장룡>, <화양연화>, <라따뚜이>, <킬 빌> 같은 수많은 영화들을 인용하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의 근간은 스펙터클하거나 시네필적인 레퍼런스들보단 차라리 <조이 럭 클럽> 같은 여성 중심의 이민자 서사, 혹은 <페어웰>이나 <미나리>처럼 이민자 가정의 가족관계를 다룬 영화들과 닮아 있다. 미국으로 떠난 아시아계 이민자 1세대와 이후 세대 사이의 갈등을 다룬, 혹은 가족관계(특히 모녀관계)에 집중한 그런 영화들 말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빌런은 에블린의 딸 조이(스테파니 수)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부 투바키라는 이름을 쓰는 멀티버스의 조이다. ‘알파버스’라는 멀티버스에서 서로 다른 우주를 연결하는 방법을 알아낸 에블린은 조이를 통해 실험을 거듭하고, 그 과정에서 조이의 정신은 산산조각 나 모든 멀티버스의 자신을 동시에 감각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갖게 된 그는 베이글 위에 모든 것을 올려놓는 실험을 감행하고, 그 결과 베이글은 일종의 블랙홀이 된다. 모든 멀티버스의 자신을 소멸시킬 수 있는 그러한 블랙홀 말이다. 알파버스에 존재하는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에블린 앞에 나타나며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하지만 조부 투바키의 목표는 모든 멀티버스의 소멸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자기 자신의 소멸이며, 그것을 방해하려는 멀티버스의 모든 에블린과 모든 웨이먼드를 막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근간은 가족의 문제다. 빡빡한 세무조사관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의 세무조사와 아버지 공공(제임스 홍)의 방문 등으로 정신이 없는, 그리고 지금 뿐 아니라 언제나 바쁘게 살았던 에블린은 조이나 웨이먼드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한다.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설정은 오로지 이 세 가족이 다시금 대화하게끔 만드는 것에 복무한다. CG의 힘을 빌린 거대한 마법이나 SF의 세계는 이 영화에 없다. 혹은 불필요하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멀티버스 속 에블린의 모습은, 각기 다른 일상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난한 세탁소 주인부터 스타 영화배우, 실수투성이 셰프, 소시지 손가락을 가진 변종인간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닌 그의 에블린의 모습들은 영화의 제목처럼 ‘동시에’ 일어난다. 이 영화 속 멀티버스는 수많은 선택 속에서 분기가 나뉜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며, 각각의 가능성은 각각의 우주로 존재한다. 때문에 에블린의 여정은 서로 다른 우주 속에서 서로를 향하는 시선의 교차에 관한 것이다. 멀티버스 너머의 가족을 바라보는 것, 수많은 우주를 거쳐 상대를 향해 손을 뻗는 것, 그 모든 것이 모든 우주에서 일어나는 것.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가족 드라마임과 동시에 친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블린처럼 오랜 기간 숨 가쁘게 살아온, 혹은 원하던 삶을 살아내지 못했던 이는 다른 이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가? 혹은 친절과 다정함이라는 공동체의 유지에 중요한 가치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무엇보다, 누구보다 친절하기 어려운 상대인 가족에게 어떻게 친절할 수 있을까? 가족은 동질적인 이들의 집합이라 여겨지지만 실은 서로 다른 이들의 랜덤한 교집합에 가깝다. 세대, 젠더, 성적지향, 지역 등의 사회적 차이들은 당연하게도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족 내에서도 발생한다. 어떤 차이들은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넘어서는 순간 침범이 되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없는 것처럼 상대를 대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익숙한 답변을 내릴 수밖에 없다. “수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하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실천할 수 없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지겹도록 들어온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좋은 이야기의 조건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이 영화는 그것의 좋은 예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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