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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24. 2022

DCEU라는 이상한 세계

<블랙 아담> 자움 콜렛 세라 2022

 할리우드가 생산해낸 여러 ‘시네마틱 유니버스’ 중에서 DCEU의 위치는 독특하다. 개별 캐릭터의 솔로 영화에 앞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저스티스 리그>,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만들어 수많은 캐릭터를 빠르게 스크린에 등장시켰다.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 이후 일종의 각개전투 전략을 택한 DCEU는 이 흐름을 더욱 밀고 나간다. <더 배트맨>이나 <조커> 같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모두가 같은 세계관에 속해 있음을 어렴풋이 상기시키는 것 이상으로 세계관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세계관은 MCU처럼 복선과 예고로 넘실거리는 영화 대신 영화 한 편으로 완결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꾸려가기 시작했고, <아쿠아맨>과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 같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문제는 이 모든 영화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설정은 있지만, 이들 영화가 묘사하는 세계는 동일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드라마 <피스메이커>, 그리고 이번 <블랙 아담>까지 수차례 등장한 조직 ‘테스크포스X’는 모든 영화에서 전혀 다른 조직처럼 느껴진다. 조직의 규모도, 행동방식도, 활동반경도 각 영화의 사정에 맞춰 변경된다.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가 조직의 수장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MCU는 작품의 규모에 따라 극 중 사건의 규모를 조절하였다. 모든 작품을 <어벤져스>와 같은 규모로 다룰 수도 없을뿐더러,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한 이후 공개된 <미즈 마블>이나 <변호사 쉬헐크> 같은 작품의 예산은 규모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MCU뿐 아니라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작품을 대거 거느리는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택하는 방식이다. 다만 DCEU는 그 방식을 택하지 않았, 아니 택하지 못했다. “느슨하게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단서는 그 세계관을 나타내는 몇 가지 이미지만 작품 속에 들어가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작품 마다 판이한 테스크포스X의 묘사는 여기서 기인한다.

 <블랙 아담> 자체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칸다크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는, 그곳이 인터갱이라는 용병조직에 점령되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샤잠처럼 마법사의회의 도움을 받은 블랙 아담(드웨인 존슨)이라는 고대인이 칸다크의 영웅이 되었으며, 5000년 간 잠들어 있다가 인터갱에 맞서려는 아드리아나(사라 샤이)에 의해 깨어난다. 한편 블랙 아담을 빌런으로 간주하던 테스크포스X는 호크맨(알디스 호지, 닥터 페이트(피어스 브로스넌), 사이클론(퀸테사 스윈들), 아톰 스매셔(노아 센티네오)으로 구성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를 칸다크에 파견한다. 블랙 아담과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사이의 충돌 속에서, 고대에 칸다크를 점령했던 폭군의 후손 이스마엘(마르완 켄자리)은 악마의 힘을 얻으려 한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독특하다. DCEU에서 슈퍼히어로, 저스티스 리그와 같은 팀, 메타휴먼 같은 개념들이 등장한 것은 <저스티스 리그>의 시점부터다. 물론 여러 영화에서 오랜 세월 활동해온 배트맨과 같은 설정들을 심어두긴 했지만 말이다. 영화 바깥과 연도를 공유하는 MCU는 처음으로 공개적인 활동을 펼친 히어로를 ‘아이언맨’으로 둔 채 세계관을 가동시켰기 때문에 세계관 자체에 관한 설정 놀음을 비교적 편안하게 풀어갔다. 하지만 DCEU가 맞이한 난관은 <맨 오브 스틸>을 통해 시작된 세계가 실은 <왓치맨>이나 <더 보이즈>처럼 슈퍼히어로들이 언제나 있었으며 상품화된 세계임을 각 영화마다 새로이 설명하는 것이다. 

 무대를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중동 혹은 북아프리카 지역을 연상시키는 가상 국가로 옮긴 <블랙 아담>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DCEU가 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MCU가 <블랙 팬서>를 내놓은 것처럼 말이다. <샤잠!>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수한 슈퍼히어로 포스터, 피규어, 코믹스가 영화 속에 등장하고, ‘챔피언’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슈퍼히어로가 존재하고 있음 또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DCEU는 이 전략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배트맨, <피스메이커>의 마지막에 등장한 저스티스 리그, <샤잠!>의 엔딩에 등장한 슈퍼맨 등은, 이들이 실제로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는 보여주지 않은 채 그들의 이미지만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DCEU의 작품들은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활약보다는 그들의 이미지만으로 구성된 세계이며, DCEU의 새로운 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관 위에 얹혀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정립하여야 한다.

 <블랙 아담>은 <샤잠!>의 후속작이다. 마법사(자이먼 훈수)가 동일하게 등장하기도 하고, “샤잠!”이라는 주문을 통해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두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판이하게 다르다. 단순히 미국과 칸다크라는 지역적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테스크포스X, 저스티스 리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같은 조직들은 각 캐릭터를 소개하는 서사의 필요에 따라 등장할 뿐인 소모품임과 동시에, DCEU의 작품들을 묶어주는 이미지다. 어찌 보면 <더 보이즈>가 묘사하는 슈퍼히어로 매니지먼트인 ‘보우트’가 작품 내에서 수행하는 것(영화와 상품, 즉 슈퍼히어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DCEU의 영화들은 매번 처음부터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블랙 아담>은 그러한 측면에서 흥미롭다. 세계관의 균질함을 보여주어야 할 프랜차이즈 영화이지만, (<피스메이커>와 더불어) 그러한 역할을 자처하여 배반한다. 드웨인 ‘더 락’ 존슨이 꾸준히 보여준 액션의 슈퍼히어로 버전이라 치부할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해야 할 세계관을 분열시킨다. DCEU 작품들의 반복되는 자폭(?)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DCEU는 의도치 않게 동시대의 가장 거대한 문화상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드러내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곳에서 빌려온 듯한 코스튬 및 CGI 디자인, DCEU 내에서 수차례 반복된 초인들의 육중(해 보이려는)한 액션, 미국을 벗어났음에도 한없이 미국적인 이야기, 그리고 세계관을 가까스로 지탱하는 이미지. DCEU가 이후에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새로운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새롭게 서술되는 이상한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그 다음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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