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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0. 2022

또 한 편의 희생양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라이언 쿠글러 2022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 모두는 채드윅 보스먼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MCU 안에서 같은 캐릭터가 다른 배우로 대체되거나 복수의 배우가 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배우의 죽음으로 인해 캐릭터의 명맥이 끊기는 경우는 할리우드 전체에서도 많지 않다. 게다가 사망한 배우의 미공개 촬영분을 사용한다거나(<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초상권 계약을 통해 CG로 배우의 얼굴을 갈아 끼우는(<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혹은 둘 다 활용하는(<분노의 질주: 더 세븐>) 같은 사례 또한 종종 마주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마블은 제작 중인 작품 <썬더볼트>의 주인공인 썬더볼트 로스 장군 역의 윌리엄 하트가 사망하자, 해리슨 포드를 같은 배역에 새로이 캐스팅하기도 했다. 물론 MCU 전체로 놓고 볼 때 중심이 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채드윅 보스먼이 연기한 티찰라가 가지는 위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를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로 위치 지으려는 시도다. MCU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왓 이프…?>가 영화 속 배우들의 얼굴을 따온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였음에도, 아이언맨이나 블랙위도우 등 마블과 계약이 종료된 몇몇 배우들을 성우로 기용하지 못한 것을 떠올려보자. 배우의 얼굴이라는 이미지는 (캐릭터의 중요도에 따라) 대체될 수 없는 것이지만, 배우의 얼굴을 한 캐릭터 자체는 살아남을 수 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영화는 티찰라가 의문의 병으로 사망하고,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는 그를 구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진다. 티찰라 사망 1년 후, 전편의 마지막에서 그가 공언했던 것처럼 와칸다는 세계 곳곳에 구호센터를 세우는 등 활동을 이어가지만, 비브라늄을 노리는 세계 강대국들의 비밀작전이 와칸다를 노린다. 그러던 중 미국이 비브라늄 탐지기를 통해 해저에 묻힌 비브라늄을 발견하고, 이에 분노한 수중도시 탈로칸의 왕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와칸다를 의심하며 티찰라를 대신해 왕위에 오른 라몬다(안젤라 바셋)와 슈리를 찾아온다. 슈리는 오코예(다나이 구리라)와 함께 탐지기를 발명한 천재소녀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손)를 찾아 미국으로 향한다. <와칸다 포에버>의 이야기는 정치적이고 복잡하다. 전작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쟁사를 끌어왔다면, 이번 작품은 네이머와 탈로칸인의 이야기를 통해 아프리카뿐 아니라 남미대륙에서 벌어졌던 식민주의 침략의 역사까지 끌어온다. 다소 복잡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지만, <와칸다 포에버>의 컨셉을 짧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원을 노린 식민주의자들의 침략으로 인해 서로 반목하게 된, 하지만 식민주의자들이 갖지 못한 강력한 기술을 지닌 두 부족국가의 이야기.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의 이야기를 끌어온 전작의 이야기는 사실 굉장히 안전한 이야기였다. <엑스맨>은 이와 같은 플롯이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훌륭하게 작동할 수 있음을 선구적으로 보여주었었다. 무엇보다 BLM 운동의 시대에서 디즈니와 같은 리버럴한 집단이 꺼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패였다. 반면 <와칸다 포에버>가 시도하는 이야기는, 그것이 설령 전작과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유효한 역사적 문제라 할지라도, ‘안전한 패’일 수 없다. 팬데믹 기간 동안 자원의 유통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걸 겪은 이후에도 방역이라는 최우선의 자원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분배되었는지를 즉각 떠올려보자. <블랙 팬서>는 비브라늄이 단순히 최강의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재료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브라늄은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의류나 식량은 물론 문화적 생산물까지 은유하는 소재다. 역시 비브라늄을 사용하는 탈로칸인은 와칸다의 거울상처럼 그려진다. 두 국가에게 비브라늄은 각자의 역사적 생산물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대상이다.

 티찰라의 장례식 장면 이후, 영화의 본격적인 첫 장면은 UN에서 연설하는 라몬다 여왕의 모습이다. 그는 와칸다 구호센터를 습격한 프랑스 특수부대를 생포해 UN 회의실에 무릎 꿇게 한다. 티찰라의 죽음으로 불안정한 와칸다를 노리는 강대국들이 영화 초반의 적인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는 탈로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다소 길을 잃는다. 이 영화는 냉철한 정치극이 되지 못한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컨벤션과 MCU라는 세계 위에서, 와칸다-탈로칸-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미묘한 구도들을 묘사하는 것은 실패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여전히 왕정국가로 묘사되는 와칸다와 탈로칸이 ‘멋있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으로 소개되긴 하지만 어떤 정치적 주체로서는 온전히 묘사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입헌군주제 국가들처럼 왕이 상징적 위치에 있는 것과 달리, 왕이 직접 통치하는 국가를 현대 민주주의 국가보다 아래에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영화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와칸다 포에버>는 블록버스터 슈퍼히어로 영화이며, 와칸다인과 탈로칸인, 블랙 팬서로 각성한 슈리와 MCU의 첫 뮤턴트인 네이머의 격돌을 보여주어야 할 모종의 의무가 있다. 하지만 <와칸다 포에버>는 그것을 보여주는 가장 겁쟁이 같은 길을 택한다. 영화는 CIA 국장인 발렌티나(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를 통해 그것이 옳지 못한 시선임을 보여주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161분의 러닝타임 동안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을 이야기 밖에 위치시킨다. 동시에 슈리와 네이머에겐 어떠한 정치적 전략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버-테크놀로지’ 국가의 통치자로서 강력한 기술과 체력과 재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왕정국가’ 혹은 ‘부족국가’로서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어떤 곳의 한낱 수장으로 격하된다. <와칸다 포에버>에 묘사된 와칸다 수도의 인구는 <어벤저스: 엔드 게임> 속 최후의 싸움에 참여한 이들의 수 보다 적어 보인다. 아니, <토르> 시리즈가 묘사해온 아스가르드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행성들도 와칸다처럼 텅 비어 보이지 않았다. 와칸다나 탈로칸이 그 역사와 능력에 비해 어딘가 텅 비어 보이게 묘사되는 것은 단순히 엑스트라 배우 인력의 부족이나 CG의 미흡함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슈리, 네이머, 라몬다 등을 어떤 캐릭터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해내지 못한 상상력의 결여 때문이다. <블랙 팬서>가 티찰라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일종의 토템으로 세워 와칸다라는 가상의 국가를 국가처럼 보이게끔 성립시켰다면, <와칸다 포에버>는 와칸다를 하나의 국가-세계로 묘사하는 데 실패한다. 

 이 실패는 단순히 채드윅 보스먼의 부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티찰라가 여전히 영화의 주인공이었더라도 영화의 중심 플롯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당연하게 예상할 수 있다. 티찰라의 죽음이라는 위기는 ‘타노스 이후’라는 다른 위기 상황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탈로칸의 등장이라는 빅 이벤트는 채드윅 보스먼의 죽음이라는 이슈와 상관없이 진행 중에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채드윅 보스먼/티찰라의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와칸다 포에버>가 수행했어야 하는 것은, 티찰라가 놓여 있었어야 할 자리를 슈리/라몬다/오코예/리리 윌리엄스 등의 캐릭터로 나누어 기워내는 것보단, “와칸다=블랙팬서=티찰라”라는 등식을 깨부수는 것이었어야 했다. MCU의 안전제일주의는 그것을 막아선다. MCU는 이미 지극히 정치적인 이슈였던 “시빌 워”를 어처구니없는 집안싸움으로 탈바꿈시킨 바 있다. DCEU <블랙아담>의 리뷰(https://blog.naver.com/dsp9596/222909541422)에서 나는 DCEU가 캐릭터를 위해 세계 전체를 유동적으로 조정한다고 쓴 바 있다. MCU는 정확히 그 반대의 것을, 세계관의 존립을 위해 캐릭터의 온전한 각성을 제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은하계로, 양자우주로, 멀티버스로 세계관이 확장되는 동안 또 한 편의 영화가 희생양이 되었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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