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8. 2022

모순 속에서 질식하지 않는 법

<아마겟돈 타임> 제임스 그레이 2022

*스포일러 포함


 제임스 그레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일견 평범해 보인다. 영화는 유대인 이민자 3세대 소년 폴(뱅크스 레페타)이 부모 에스더(앤 해서웨이)와 어빙(제레미 스트롱), 할아버지 아론(안소니 홉킨스), 공립학교 동급생 죠니(제일린 웹) 등과 함께한 1980년 뉴욕 퀸즈의 한 시기를 다룬다. 익숙한 성장담 혹은 자전영화일 것 같은 이 영화의 세팅은 폴 위에 켜켜이 쌓인 모순들로 인해 그가 질식 직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몰고 간다. 그 모순은 이런 것들이다. 차별을 피해 미국에 건너온 유대인이지만 흑인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가족, 레이건이 당선되자 “우파 머저리들”이라 말하지만 트럼프 가(家)가 후원하는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아론,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가정폭력을 일삼는 어빙, 자녀의 교육보다 자신의 교육위원회 활동을 우선시하는 에스더, 무수한 민족의 성(姓)이 난무하는 공립학교의 출석부, 백인화된 디스코와 슈거힐갱으로 시작된 힙합, 비틀즈와 무하마드 알리의 사진을 칸딘스키의 그림엽서와 함께 붙여 둔 NASA를 동경하는 폴. 80년도의 뉴욕은 모순의 용광로와 같다. 

 ‘아마겟돈’은 성경 속 종말을 일컫는 단어이지만, 80년대 레이건이 핵전쟁 공포를 부추기기 위해 상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신냉전, 신자유주의의 확대, 핵전쟁의 공포가 난무하는 종말 직전의 시대. 폴의 가족은 유대인의 성 대신 ‘그라프(Graff)’라는 독일계 성씨를 폴이 이어받은 것이 생존에 유리함을 강조한다. 폴이 전학 간 사립학교를 찾은 매리앤 트럼프(제시카 차스테인)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엘리트”를 강조한다. 부모 없이 병중의 할머니와 살아가는 죠니는 보호가정에 집어넣어질 위기에 처하자 폴의 아지트에서 밤을 지새운다. 불평등은 부의 문제에서 인종으로, 계급으로 무한히 확장된다. <아마겟돈 타임>이라는 제목이 지칭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우경화로의 적극적 전환과 더불어 전개되는 생존의 문제다. 레이건이라는 이름의 돌풍이 가져온 것은 핵전쟁의 공포이지만, 그것은 개인화된 생존의 공포를 가린 덮개에 불과하다.

 <아마겟돈 타임>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연히도 생존에 필요한 미약한 조건들이 주변에 존재하던 소년의 이야기다. 동시에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장난꾸러기 꼬마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모순의 무게를 마침내 체감하는 이야기다. 폴의 가족과 친척이 모인 식사 장면을 떠올려보자. 전직 펜타곤 직원인 친척은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컵을 프라하의 중고상점에서 발견했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이 이야기를 듣다 사레들려 음식을 뱉는 어빙을 보고 폴은 박장대소한다. 무수한 정면숏들로 구성된 식사장면은 어지러이 교차되는 시선 속에서 한 이민자 가족 위에 쌓인 역사적 모순을 풀어낸다. 폴이 선택한 유일한 탈출의 방식이 죠니와 함께 학교 컴퓨터를 훔쳐 플로리다로 떠나는 계획이었다는 점은 이 지점에서 흥미롭다. 실패가 보장된 이 계획은 다가올 종말을 피하고자 몸부림치는 재난 영화 속 사재기 상황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오로지 폴에게만 보장된 생존을 기반으로 한 비참한 계획이었다. 폴은 자신과 가족이 백인이며 빈곤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았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성장이 아니다. 자신 위로 쏟아져 내리는 모순의 덩어리에 깔렸음에도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운 좋게 체득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돌아온 델 토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