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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2. 2023

기시감뿐인 장난감

<메간> 제라드 존스톤 2022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케이디(바이올렛 맥그로우)는 장난감 회사의 개발자인 이모 젬마(앨리슨 윌리암스)와 함께 살게 된다. 당장 신제품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던 젬마는 케이디에게 쓸 시간이 없다. 그는 시제품으로 개발 중이던 메간(M3GAN, Model 3 Generation ANdroid)에게 케이디를 맡긴다. 메간은 케이디를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지켜달라는 젬마의 말을 듣고 자가학습을 시작하고, 그것을 보게 된 젬마의 보스는 메간의 런칭을 추진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변에서 이상한 죽음들이 발생하고, 젬마는 메간이 그 원인이라 의심하게 된다. 블룸하우스가 제작하고 <말리그넌트>를 함께 썼던 제임스 완과 아켈라 쿠퍼가 각본을 쓴 <메간>의 설정은 꽤나 익숙하다. 2019년 리메이크된 <사탄의 인형> 속 처키도 AI로 재탄생한 처키의 이야기였으며, <메간>과 동일하게 장난감 CF 영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의도와는 달리 인간을 해치는 AI 캐릭터”와 같은 설정 또한 무수히 보아온 것이기에 <메간> 속 메간의 캐릭터는 어딘가 기시감을 불러온다.

 <메간>이 AI 캐릭터가 등장한 무수한 영화들과 다른 지점이라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당장 <터미네이터 2>도 가족 이야기였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메간>은 미국의 가족제도, 조금 더 정확히는 아동보호제도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얼떨결에 케이디의 보호자가 된 젬마가 양육권 서류를 작성하는 것을 보여주며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사회복지사 리디아(에이미 어셔우드)다. 장난감 회사에 다니는 장난감 개발자이지만 수집용 빈티지 장난감 밖에 없는 젬마의 집에서 케이디는 당장 가지고 놀 것이 없다. 다소 갑작스럽게 등장해 그러한 상황을 지적하는 리디아의 모습은 사실 사회복지사보단 훼방꾼처럼 관객에게 다가온다. 젬마와 케이디가 어련히 잘 살겠지, 이제 막 함께 살게 된 두 사람이 관계 맺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아, 이런 생각들을 들게 하는 존재다. 리디아의 존재로 표상되는 아동보호제도는 젬마가 메간의 개발을 서두르게 된 이유 중에 하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케이디의 친조부모에게 그를 보내는 대신 자신이 보호하길 원하는 젬마는 당장 값싼 신제품을 내놓으라는 회사의 압박과 당장 아이와의 관계를 만들어보라는 제도의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메간은 그 해결책으로 처음 영화에 도입된다.

 영화 속 젬마는 붙임성이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진 않는다. 옆집의 대형견이 자꾸만 자신의 정원을 침범하는 것을 불쾌해하지만 개구멍이 뚫린 울타리를 고치지는 않는다. “장난감은 없느냐”는 리디아의 질문 앞에 케이디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 약속하는 대신 자신의 수집품을 거칠게 뜯어 건네는 젬마의 모습은 그의 성격을 곧이곧대로 묘사하고 있다. 이 지점은 꽤나 흥미로운데, 이를테면 <플로리다 프로젝트>처럼 빈곤 속에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심지어 아이가 있는 집에서 매춘하는 엄마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영화에 끌어오는 대신, 우리 주변에서 번아웃을 겪는 청년세대를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엄마의 위치에 놓아보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메간이라는 익숙한 캐릭터는 그러한 (제도의) 압박을 견디고 부모됨을 획득하지 못한 젬마를 처벌하고자 도입된 캐릭터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블룸하우스의 다른 영화, 특히 <해피 데스데이>가 떠오른다. 외양상 타임루프에 빠진 대학생의 다소 코믹한 고군분투처럼 다가오지만, “헤픈” 여대생인 주인공이 아버지와 진정한 화해를 나누고 가족을 회복하며 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족으로 돌아올 때까지 주인공을 죽게끔 만드는 영화였다. <메간>의 전체적인 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삶의 제1목표를 오로지 가족으로 두게끔 하는 이야기, 여기엔 별 다른 전복도 가족에 대한 재해석도 없다. 기술과 제도는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써 젬마의 숨통을 조여 오는 장치들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젬마가 왜 케이디를 돌보지 못하였는가 대신 메간이라는 미봉책만을 내놓은 것에 대한 처벌로서, 메간은 창조된 것과 다른 존재가 되어 젬마와 주변인들을 공격한다. 게다가 이 공격 또한 러닝타임의 60%가량이 흘러간 뒤 제대로 등장한다.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하는 메간의 외모만으로 전반부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이다. 장르적으로 즐길만한 장면들이 후반부에 즐비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고리타분하고 다소 길게 느껴지는 빌드업을 지켜봐야만 한다. 언젠가부터 블룸하우스의 영화들에 느껴온 실망감이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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