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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4. 2023

명확하고 이상한 이스트우드의 테마

<미드나잇 가든>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7

*본 원고는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의 방송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방송은 다음 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916 (업로드 예정)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39편의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미드나잇 가든>은 어딘가 그의 영화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서부극, 멜로드라마, 스릴러, 액션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그의 90년대 연출 필모그래피에서 법정물의 존재가 특이하게 다가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드나잇 가든>이 그려내는 미국 남부 소도시 사바나의 모습은 기묘하다. 우리가 저널리스트 존의 시선을 따라 목격하는 사바나의 풍경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다. 투명한 개를 산책시키는 것마냥 둥둥 떠다니는 목줄을 쥐고 산책하는 사내, 마을 모두를 죽여버릴 수 있는 독극물을 품 안에 간직한 채 파리떼를 달고 다니는 괴짜, 파티에 장전된 총을 가져와 장난을 치는 노부인, 장기간 여행을 떠난 이의 집에 눌러 앉아 멋대로 파티를 벌이는 음악가 등등. 이들의 모습은 데이빗 린치의 <블루 벨벳>이나 <트윈 픽스> 속 작은 마을들, 코엔 형제의 기묘한 부조리극, 아슬아슬하게 성립되는 부뉴엘 영화 속 공동체와 닮았다. 여기에 더해, 이스트우드는 그가 존경해 마다 않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뒤섞는다. “진실은 예술과 닮아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라는 짐 윌리암스의 마지막 대사는 정확히 <라쇼몽>을 겨냥한다. 


 이 기묘함은 <미드나잇 가든>이 실화라는 것에서 일정 부분 유래하는 것이기도 한다. 영화는 1980년대 사바나에서 벌어진 실제 바탕으로 한 존 베렌트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삼는다. 이스트우드가 실제 사건이나 실존인물을 영화화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유명한 재즈광인 그는 찰리 파커의 이야기를 담은 <버드>부터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연작을 거쳐 <라스트 미션>과 <리차드 쥬얼> 등의 근작까지, 여러 영화에서 실화를 영화화했다. 그 중에서도 <미드나잇 가든>이 흥미로운 부분이라면, <15시 17분 파리행 열차>에서처럼 실화 속 인물이 자신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극 중 등장하는 드랙퀸 ‘레이디 샤블리스‘와 잠시 등장하는 미용사 ‘제리 스펜스’가 그렇다. 더불어 이스트우드는 짐의 실제 변호인이었던 소니 세일러는 극 중 판사를 연기한다. 그 중 존의 여정과 가장 밀착된 인물은 샤블리스다. 영화의 여러 조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는 사실 빌리 핸슨의 죽음에 연관된 사건과 큰 관련이 없다. 그는 무수한 증인 중 한 명일뿐이다. 이스트우드는 빌리의 시체를 처리한 간호사만큼의 비중으로 샤블리스의 역할을 축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샤블리스가 자신의 쇼에 서고, 흑인들의 무도회에 참석하는 등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법정에서 증언하는 내용, 빌리의 마약 복용 내용과 연애관계에 관한 것은 짐 윌리엄스의 혐의와 큰 관련이 없다. 하지만 영화는 존이 샤블리스를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구애에 가깝게 공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미드나잇 가든>은 단순한 법정 드라마를 초과한다. 샤블리스를 비롯한 몇몇 존재들을 통해 이 영화는 베렌트의 책을 관통하여 80년대 사바나에 접속한다. 이스트우드의 후기작, 앞서 언급한 <15시 17분 파리행 열차>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파리행 열차에서 테러범을 막아낸 세 명의 미국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의 인물을 영화의 주연배우로 데려온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와 카 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은 연출된 것이 아닌 실제 사건 당시의 푸티지다. 물론 <미드나잇 가든>은 이정도로 과감한 연결, 픽션과 실제의 기이한 공존을 꾀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스트우드는 <미드나잇 가든> 속 인물들을 도저히 사바나라는 한 도시에 공존하는 인물들이 아닐 것처럼 그려낸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혐의를 받고, 누군가는 증인이거나 배심원이 된다. 법정은 사바나의 기묘한 면면을 압축하여 제시하는 장소다. 최종선고가 내려지는 날, 독극물을 품 안에 간직한 채 파리떼를 달고 다니는 괴짜 사내이자 배심원단 대표인 루터가 판사에게 쪽지를 전달하면서 독극물병을 떨어트리는 장면은 그것을 더욱 압축하여 보여준다. 떨어진 병을 보여주고, 고개를 빼 병을 보는 다른 배심원과 청중들을 보여주고, 경비는 판사의 명령으로 병을 줍는다. 병을 확인한 판사는 그것을 루터에게 돌려주고, 재판을 속개한다. 마치 그 독극물병이 언제나 루터의 주머니에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을 행동한다.


 병에 진짜로 독극물이 들어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단지 그것을 들고 다니며 음식이 맛없다고 마을에 독극물을 푸는 괴짜 발명가가 있다는, 사바나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이야기를 위해 루터와 독극물병은 필요하다. 루터 뿐 아니라 레이디 샤브러리, 부두교 주술사 미네르바 등 영화 속 독특한 인물들, 이들은 짐과 빌리 사이의 일과 관계없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사바나에 존재한다. 때문에 <미드나잇 가든>은 미국에 관한 이스트우드의 흥미로운 논평으로 작동한다. 관점에 따라 변화하는 n개의 진실이 있고, n개의 이야기가 존재하며, 공동체는 그것을 공유하는 이들의 집합이다. 완전한 이방인이었던 존이 사바나의 일원이 된 모습을 보여준 에필로그는, 그가 사바나라는 공간이 성립하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미드나잇 가든>이라는 픽션과 실제 사건 사이를 연결하는 샤브러리의 이미지가 영화 전체를 맴돌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미드나잇 가든>은 이후의 이스트우드 영화를 미리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스트우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연작, <리차드 쥬얼>)과 어떤 이야기를 통해 성립하는 미국-공동체(<설리>, <크라이 마초> 등)을 만들고 있다. ‘감독 이스트우드’ 필모그래피의 정중앙에 놓인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이방인에서 할리우드의 중심이 된 인물이 바라본 미국이라는 이스트우드의 테마를 가장 명확하고 이상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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