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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5. 2023

페이즈5의 애매한 시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페이튼 리드 2023

 케빈 파이기는 <어벤저스: 엔드게임> 이후의 MCU를 “멀티버스 사가”라 명명했고, <완다 비전>, <로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통해 계획의 일부를 선보였다. 다만 페이즈4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들, 이를테면 “인피니티 사가”의 후일담(<팔콘과 윈터솔저>, <호크아이>,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와 나름의 프리퀄이었던 <블랙위도우>까지)은 세대교체와 함께 진행되며 스스로를 어정쩡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캐릭터의 도입(<이터널스>, <문나이트>, <미즈 마블>, <변호사 쉬헐크>)은 새로운 의문만 불러일으켰다. 각자의 거대한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을 메인 빌런으로 삼는 “멀티버스 사가”의 이야기는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했다. 그는 <로키> 시즌1의 마지막 두 에피소드에서 짤막하게 등장했을 뿐이다. 때문에 페이즈5의 시작을 알리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무수한 짐을 짊어진 채 관객 앞에 나서게 되었다. 이 영화는 타노스와의 혈투를 겪은 앤트맨/스캇 랭(폴 러드)의 후일담이자, 그의 딸 캐시(캐서린 뉴튼)가 새로운 앤트맨으로 데뷔하는 이야기이고, ‘정복자 캉’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MCU 내에 기입한다.

 때문에 <퀀텀매니아>는 그간 MCU의 영화들이 해왔던 실책을 반복한다. 첫째, 전작들이 보여준 캐릭터, 혹은 솔로무비 시리즈의 개성은 거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희생당한다. <앤트맨> 프랜차이즈의 경우엔, 특유의 아기자기한 액션이 사라졌다. 1편에서 대런 크로스(코리 스톨)와 앤트맨이 싸우던 캐시의 방이라던가, ‘핫 휠’ 자동차 피규어를 확대해 카체이싱에 사용하는 2편의 장면과 같은 것이 <퀀텀매니아>엔 사라졌다. 이는 시리즈의 근본적인 매력, 크기를 줄이고 늘이는 것에서 오는 시각적 즐거움이 사라진 것과도 연관된다. 물론 앤트맨 패밀리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자신 혹은 사물의 크기를 조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입한 양자 세계에서 그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주 작아진 앤트맨과 와스프(에번젤린 릴리), 혹은 아주 거대해진 앤트맨이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방식은 화장실이나 길거리, 장난감 기차 세트 등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가능했다. <퀀텀매니아>의 배경은 양자 세계라는 완전한 판타지의 세계다. 이 영화의 배경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혹은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등 MCU 바깥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장면에서는 적극적으로 기존 스페이스 오페라 블록버스터의 이미지를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때문에 작아진 앤트맨의 시야로 보는 양자 세계나 거대해진 앤트맨이 캉의 군대를 상대하는 모습에서, 앤트맨이 전편에서 보여준 시각적 매력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자 세계는 크게 보든 작게 보든 처음 접하는 세계이며, 크기의 차이가 어떤 낯섦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MCU의 다른 시리즈에도 적용된다. 이를테면 아이언맨의 솔로무비에서 핵심은 그가 어떤 슈트를 선보이느냐였다. 하지만 솔로 프랜차이즈가 마무리된 이후, 특히 헐크버스터까지 선보인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후에는, 아이언맨의 슈트는 더 이상 대단한 눈요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시빌 워>에 이르러 스스로가 갖고 있던 정치 스릴러적인 면모를 스티브와 토니의 개인사 차원으로 탈바꿈시키며 배제해 버리는 패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그들의 캐릭터, 혹은 각자의 솔로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던 동력은 더욱 큰 이야기를 위해 사라지곤 했으며, 이는 <퀀텀매니아>에서도 반복된다.

 두 번째, 공공의 적을 도입하기 위해 주인공과 빌런의 비중이 역전된다. <퀀텀매니아>는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준다. <로키>를 통해 짧게 설명되긴 했으나, 정복자 캉이 어떤 욕망을 지녔으며 어떤 전사를 갖고 있는지는 온전히 설명되지 못했다. <퀀텀매니아>는 그의 성격과 역사를 보여주어야 했다. 이번 영화는 MCU가 꿈꾸는 멀티버스의 세계에서 캉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빌런인지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다만 그것을 위해 앤트맨 패밀리의 이야기는 다분히 익숙한 구조, 강력한 적에게 붙잡힌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MCU 같은 블록버스터에서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앤트맨의 후일담과 차세대 히어로로 성장하는 캐시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선택한 극도로 평범한 이야기 위에서 정복자 캉이라는 묵직한 캐릭터를 소개하다 보니, 이야기의 주축이 앤트맨보단 빌런 쪽을 향하게 된다. 더불어 사가의 메인 빌런을 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는 빌런이 등장한다. 해괴한 비주얼의 빌런 모독(M.O.D.O.K.)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반가운 순간이었다. 1편에서 축소된 대런 크로스가 모독으로 되돌아온다는 각색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비주얼이 지닌 존재감 만으로 캐릭터가 완성되진 않는다. 이렇다 할 캐릭터 빌딩 없이 캉과 앤트맨 패밀리 사이의 서브빌런으로 등장하고 퇴장할 뿐이다. 

 마지막, 그 많은 자본이 투입되었음에도 숨 가쁜 제작일정 속에서 어딘가 미완성된 듯한 마감의 CGI 이미지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이 지적은 <어벤저스: 엔드게임> 이후의 모든 MCU 작품에 관해 말할 수도 있다. <블랙위도우> 후반부 추락 장면에서의 희뿌연 그래픽,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우중충한 해저 도시, 몇몇 블록버스터 TV시리즈보다 못한 <팔콘과 윈터솔저>나 <미즈 마블>의 전투씬 그래픽, 스포일러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어정쩡한 조명과 움직임을 보여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같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변호사 쉬헐크> 마지막화의 자조적인 농담은, 결국 터져 나온 VFX 업계의 크런치모드 논란을 예견하기도 했다. <퀀텀매니아>의 경우엔, 오랜 시간 준비했을 양자 세계의 비주얼은 훌륭하다. 물론 영화를 보는 와중에 여러 레퍼런스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시리즈 특유의 초현실적인 면모를 살린 장면들은 나름대로 인상적이다. 다만 컨셉아트를 거대하게 펼쳐 둔 세트장 속에서 인물, 사물과 CGI로 만들어진 배경 혹은 사물이 맞닿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를테면 재닛(미셸 파이퍼)이 하늘을 나는 생명체에 접촉하는 장면 등에서, 재닛은 분명 생명체에 손을 대고 있지만 어딘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처럼 손끝과 생명체가 제대로 붙어있지 않다. 이는 영화 전반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어떤 사물을 잡을 때 발생하는 미묘한 어색함이 이번 영화의 CGI에서 전반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안 좋은 이야기만 늘어놨지만, <퀀텀매니아>는 작년 MCU가 선보였던 <토르: 러브 앤 썬더>나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만큼 지루하진 않다. 여전히 정복자 캉을 활용하고자 하는 케빈 파이기의 비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 캉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소 전형적인 앤트맨 패밀리의 이야기는 폴 러드 특유의 능글맞은 매력으로 일정 부분 상쇄된다. 그간 <앤트맨> 시리즈가 보여준 개성이 대부분 실종되었다는 점은 아쉬우나, 작년의 MCU에게 실망한 이들이라면 나쁘지 않은 보상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MCU 특유의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은 어쨌거나 MCU 영화의 전형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별생각 없이 시간을 때우기에 아주 나쁜 영화는 아닌 정도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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