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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1. 2023

기록에서 추출된 기억에서 추출된 감정

<애프터썬> 샬롯 웰스 2022

*스포일러 포함


 영화는 저화질의 캠코더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11살의 소피(프랭키 코리오)가 31살의 아버지 캘럼(폴 메스칼)과 함께 떠난 튀르키예 여행의 기록이다. 캠코더 이미지와 함께, 어떤 파티장의 모습인 것만 같은 공간에서 31살의 소피(실리아 롤슨-홀)가 춤추는 캘럼을 보는 몽환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는 이 이미지들과 함께 시작하여, 11살의 소피의 시점으로 담긴 튀르키예 여행을 보여준다. <애프터썬>은 이들의 여행을 상당히 모호하게 보여준다. 31살의 소피가 11살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알아챌 수 있다. 31살의 소피는 모종의 이유로 캘럼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그 이유조차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애프터 썬>의 이야기에 관한 공통된 의견은 튀르키예 여행 이후 캘럼은 (아마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그와 같은 나이가 된 소피가 우연히 캠코더에 담긴 당시의 기록을 보고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별다른 이견은 없다. <애프터썬>의 흥미로운 지점은 어떤 이야기를 담아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와 연관되어 있다. 다소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기록된 영상과 기억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제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과 이 영화를 비교하는 이야기를 몇몇 보았다. (여담이지만 31살 소피 역으로 출연한 실리아 롤슨-홀은 <애프터 양>에 안무가로 참여했다) <애프터 양>은 ‘양’이라는 안드로이드에 ‘기록’된 이미지를 인간적인 ‘기억’의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시도했다. 많은 영화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제3자의 입장에서 촬영된 플래시백, 1인칭 시점 롱테이크로 제시되는 플래시백 같은 ‘기록’을 배제하고, 짤막하게 기록된 이미지의 조합이나 끝없는 수정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을 ‘기억’이라 부르고자 하는 게 <애프터 양>의 기획이었다. 캠코더에 기록된 과거에서 출발하는 <애프터썬>도 얼핏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만 같다. 소피의 시점으로 보여지는 튀르키예 여행을 통해 관객이 캘럼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으며, 방학마다 소피와 리조트 여행을 떠났다는 것 정도가 캘럼에 관해 파악할 수 있는 단서들이다. 캘럼이 어떤 이유로 자살을 택하였는지, 혹은 그가 정말로 자살한 것인지 마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일 년 만에 아빠를 만나 휴양지 여행을 즐기는 어린 소피의 시선 속에서도 어딘가 죽음을 예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캘럼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물론 <애프터썬>이 기억을 제시하는 방식은 <애프터 양>과 정반대에 놓인다. <애프터썬>에 등장한 캠코더 이미지는 다섯 개 정도다. 대부분의 장면은 기록된 이미지가 아니라 소피의 시점에서 다시 쓰인 기억들이다. 어떤 장면들은 소피가 실제로 목격한 것이 맞는지 의문스러운 지점들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술에 취한 캘럼이 소피와 말다툼을 한 뒤 홀로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처럼, 소피가 절대로 목격했을 수 없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소피의 기억’으로 구성된 영화 전체의 맥락을 훼손한다. 캘럼이 홀로 있는 모습은 목격될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혹은 반대로, 이 장면이야말로 소피의 기억이라 할 수 있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31살의 소피가 기억하는 20년 전 캘럼의 이미지가 그 장면일 것이다. 때문에 <애프터썬>은 아버지라는 기억을 쫓는 일종의 추적극이다. 종종 아무런 인물도 없는 호텔과 관광지의 장소들로 향하는 카메라는 그곳에 있었던 것, 있었을 수도 있는 것, 혹은 완전히 부재하는 어떤 대상을 기억의 장소성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애프터썬>이 지향하던 기획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시차를 지닌 서로 다른 기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 전반에 흩뿌려져 있는 캠코더 이미지는 11살 소피가 목격한 것 전반의 기록이 아닌 아주 짧은 몇몇 순간의 기록이다. 혈기 왕성하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드는 소녀가 바라본 세계의 자극들은 소피가 회상하는 이미지들로 확장되지만, 동시에 그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캘럼의 모습은 캠코더에 담긴 짧은 영상들로 환원된다. 캠코더를 처음 조작해보는 소피의 손으로 촬영된 캠코더 이미지들은 이 영화가 유일하게 제시하는 과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다. 때문에 영화 전체에 있어 개입되는 것은 나이 든 소피가 지닌 모종의 주관성이다. 이 주관성은 소피가 경험한 개인적인 자극들, 이를테면 화장실에서 엿들은 10대 후반 언니들의 성경험 이야기, 격렬히 키스하는 게이 커플의 모습, 처음 호감을 갖고 키스한 아이와의 이야기, 터키탕과 유황온천 등의 관광지 풍경 같은 것에서는 유의미하다. 이와 같은 순간들에서 소피가 목격한 것들은 오로지 객체로서 소피의 시야 안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대상일 뿐이다. 캘럼은 그러한 대상들과 사정이 다르다. 소피는 캘럼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려 한다. <애프터썬>의 관객이 보게 되는 장면들은 그렇게 재구성된 캘럼이다. 관객은 캘럼이 겪는 것에 관해서 온전히 상상할 수밖에 없다. 영화와 소피는 캘럼에 관한 정보를 제시해주지 않는다. <애프터썬>에서 캘럼은 모종의 이야기를 품은 주체가 아니라 소피가 목격한 다른 모든 것과 같은 대상으로 격하되며, 그것은 소피가 캠코더 이미지를 통해 길어내기 시작한 기억들에서 추출된 이미지일 뿐이다. 

 샬롯 웰스는 캘럼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대상으로 격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캠코더 이미지와 더불어 31살 소피가 춤추는 아버지를 목격하는 몽환적인 파티 장면을 집어넣는다. 우리는 이 장면이 온전한 소피의 꿈인지, 31살 생일을 맞이한 소피가 생일파티에서 상상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흥겨운 춤사위와 고통스러운 몸부림 사이에 놓인 듯한 캘럼의 몸짓은 파티장의 조명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 모호한 몸짓과 그것을 보고 있는 31살 소피의 이미지에서 관객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와 11살의 기억 사이에서 모종의 혼란을 경험하는 소피의 상태뿐이다. 애정과 죄책감, 아름다운 추억과 뒤숭숭한 현재 사이에 있는 31살 소피의 지금. <애프터썬>이 그러한 소피의 감정을 담아낸 영화라고 말한다면 딱히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없다. 다만 소피가 회상하는 것은 그와 캘럼이 경험한 감정의 교환이 아니라 더는 마주할 수 없는 대상에 관한 지금의 감정이다. 때문에 그것은 회상이라기보단 부재하는 대상에 관한 사후적인 대상화다. 과거에 관한 정확한 기록을 가져오는 대신 재구성된 기억을 통해 감정을 앞세우는 <애프터썬>의 방식은, 흥미롭지만 아쉬운 실패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기억의 정합성을 감정에 외주주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여러 편의 실패를 보았고, 기록과 기억의 관계와 그곳으로부터 재현되는 감정의 이미지를 추출하는 많은 성공을 보았다. 전자의 예시는 <애프터 양>일 것이고 후자의 예시는 <노 홈 무비>, 요나스 메카스의 몇몇 작업, <낭트의 자코> 같은 영화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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