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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8. 2017

언어, 화합의 도구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 <콘택트>

*스포일러 있음


 <그을린 사랑>, <에너미>,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등을 연출하며 평단에게 인정받고, 올해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를 관람했다. 테드 창의 단편소설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를 원작으로 한 <컨택트>는 어느 날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과 소통을 시도하는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언어와 시간을 소재로 삼아 공동체와 화합에 대해 이야기하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처럼 SF의 외피를 두른 인문학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손의 형상을 닮은 외계인 헵타포드(다리가 7개라 ‘Hepta’pod)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는 다르다. 둥근 원 모양의 수묵화 같은 형상을 띈 헵타포드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기표 언어이고, 문장으로 존재한다기 보단 (검은 물질을 흩뿌려 언어를 쓰는 그들의 방식을 닮아) 흩뿌려진 단어들의 집합이다.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고 습득해 대화를 시도하는 루이스의 태도는 언어가 발현된 시초를 떠올리게 만든다. 초기의 언어는 문장이 아닌 단어들의 집합이었을 테고, 영화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주제인 논 제로섬 게임, 모두가 윈-윈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로 탄생되었을 것이다. 헵타포드와 루이스는 언어를 초기의 형태인 화합의 도구로 써 사용한다. <컨택트>에서 언어라는 도구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공동체의 화합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인간과 외계인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화합은 폭력적이고 정복 지향적인 군인(국가)의 언어 대신 루이스와 헵타포드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영화는 차근차근 그 과정을 전개해나간다.

 <컨택트>는 동시에 루이스 개인에 대한 서사를 진행시킨다. 영화의 오프닝은 남편이 떠나간 루이스에게 딸이 있었고 백혈병으로 죽는다는 것을 몽타주를 통해 제시한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이의 환영은 루이스가 죽은 아이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영화 후반부의 반전은 환영의 비밀을 풀어준다. 루이스의 아이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고, 함께 헵타포드와 세션을 진행하던 이론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임이 드러난다. 관객을 낚는 것에 가까운 전개 방식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작용하여 영화를 매듭짓는다.


 영화 후반부에 (이안이 추가되어) 재등장하는 아이에 대한 몽타주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려 한다.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 같은 놀란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몽타주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던 영화의 주제를 루이스의 개인사로 축소시킨다. 특히 몽타주 이전에 루이스는 이안에게 ‘미래를 알고 있으면 그것을 바꿀 것인지’ 질문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 없이 이어지는 이안의 사랑고백과 이어지는 몽타주 속에서 루이스라는 개인의 선택은 희미해진다. 후반부의 선택은 수미상관 구조의 영화처럼 닫혀있는 결말을 향해 가는 영화 속 루이스의 여정을 그녀가 공동체 속의 주체적인 누군가가 아닌 부속품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영화의 주제를 퇴색시킴과 동시에 (<곡성>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불공정한 게임으로 만들어버리는 반전, 놀란 스타일의 마지막 몽타주는 오히려 영화가 쌓아온 감흥을 무너뜨린다. 

 <컨택트>의 시나리오는 드니 빌뇌브 이전에 봉준호 감독에게 제안이 갔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봉준호는 자신이 새로 각본을 쓰려고 했지만 이미 캐스팅과 스케줄이 완성되어 있는 상태라 불발되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이 남는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지 상상해보며 테드 창의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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