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여성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
*스포일러 있음
프랑스는 <무스탕: 랄리의 여름>을 자국의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올렸다. 2016년 프랑스에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디판> 등을 대신해 이 영화를 출품한 것이다. 터키의 감독이 연출하고 터키의 배우들이 출연하며 터키어로 말하고 터키의 시골이 배경인 <무스탕: 랄리의 여름>을 왜 프랑스가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제출했을까?
영화는 방학을 맞은 다섯 자매가 학교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첫째 소냐(일라이다 아크도간), 둘째 셀마(툭바 선구로글루), 셋째 애체(에릿 이스캔), 넷째 누르(도가 제이넵 도구슬루), 막내 랄리(구네즈 센소이). 다섯 자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의 남자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긴다. 한참을 놀다 집에 도착하니 자매의 할머니가 불같이 화를 낸다. 남자들 위에서 목마를 타고 중요부위를 비볐다는 이유로 다섯 자매가 함께 산부인가에 데려가져 순결 검사를 받게 된다. 이후 삼촌의 감시 하에 외출은 금지되고 할머니와 친척들에게 신부수업을 듣는다. 방학이 끝나기 전, 소냐와 셀마는 결혼해서 떠나게 된다. 이후 애체가 몸을 함부로 놀렸다는 이유로 삼촌에게 명예살인을 당하는 것을 보고 랄리는 누르와 함께 이스탄불로 탈출을 결심한다.
영화는 랄리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영화 속 모든 시점 숏은 랄리와 자매들의 것이고, 남자의 시점 숏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랄리의 내레이션이 등장하여 영화의 화자가 누구인지를 계속해서 인지하게 만들어 준다. 때문에 영화 자체에 과도하게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면 97분의 러닝타임 동안 자매들을 향한 터키 사회의 억압과 폭력이 주변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구시대적인 관념을 가진 영화 속 어른들은 다섯 자매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TV 방송에조차 여자들의 순결과 정결을 강조하며, 크게 웃지도 못하도록 가르친다. 처음에 그녀들이 목마를 타고 논 것에 할머니가 불같이 화를 낸 이유도 아직 어린 소녀들의 처녀막이 터지지 않았을까를 걱정한 것이다. 그곳에서 혼전순결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고, 결혼 이후 첫날밤에 처녀막이 터지며 피가 흘렀는지를 검사하기까지 한다. 첫날밤 피가 흐르지 않자 강제로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게 된 소냐에게 산부인과의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처녀막이라는 것은 날 때부터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의사는 순결 검사라는 것의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매들을 검사한다. 그들의 방조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순결의 환상을 주입한다. 덕분에 나이 든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은 남녀를 불문하고 더욱 견고해진다.
그곳의 여자들은 순결뿐만 아니라 결혼도 강요받는다. 사실 이는 그곳의 여자들이 순결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도 결부된다. 그곳의 여자들의 존재 이유는 결혼이며, 혼전순결을 지키는 것 역시 결혼을 위함일 뿐이다. 자매의 할머니가 외출을 금지시킨 뒤 자매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요리와 바느질 등의 집안일이다. 방학이 끝나도 랄리와 자매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다고 어른들이 판단하면 역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남자들과의 결혼을 다른 집안의 어른들과 이야기한다. 연애는 없고 결혼만이 존재한다. 자매의 할머니는 “나는 남편의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어. 그러나 곧 사랑에 빠졌지. 그맘때는 다 쉽게 사랑에 빠진단다.”라며 그 시절을 미화한다. 그 말을 듣는 랄리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다. 아니, 무표정한 표정 속에서 할머니의 말을 극도로 혐오하는 랄리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렇게 할머니를 비롯한 자매의 집안 어른들은 오로지 자매들을 시집보내는 것에만 몰두한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낸 장면이 할머니가 자매들에게 갈색의 전통 의상을 입힌 뒤 다 같이 외출하는 장면이다. 할머니는 레모네이드를 시켜둘 테니 다섯 자매에게 광장의 분수까지 다녀오라고 한다. 그 장면을 마을의 남자들과 어른들이 지켜본다. 자매들의 할머니는 광장을 결혼 품평회장으로 만들었다.
반면 그곳의 남자들은 자유롭다. 아니, 태평하다. 그녀들이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담벼락을 높이고 쇠창살을 다는 등 물리적인 방법으로 자매들을 집 안에 가두려고 하고, 매일같이 술과 함께 축구경기를 본다. 삼촌은 축구경기를 관람하러 가고 싶다는 랄리에게, 남자 관객들의 난동으로 여자 관객만의 출입이 허용된 경기에조차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랄리는 TV 중계로 축구를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남녀가 따로 자리를 나눠 먹는 저녁식사에서 남자들은 축구를, 여자들은 그곳의 여성관이 다분히 반영된 TV 드라마를 본다. 남자들이 누리는 여가생활은 여자들이 누릴 수 없다. 랄리와 자매들은 축구를 보기 위해 집에서 탈출을 감행해야 한다.
랄리는 자신의 집을 정신병원 같다고 묘사한다. 방학을 맞아 되돌아간 집은 높아진 담벼락과 쇠창살로 꾸며진다. 한순간에 집은 감옥이 된다. 랄리와 자매들은 노역 대신 신부수업을 받는다. 정신적, 물리적으로 억압받는 그곳에서 랄리는 누르의 (반강제적인) 결혼식 날 함께 결국 탈출을 감행한다. <무스탕: 랄리의 여름>은 이스탄불의 있는 자매의 선생님을 랄리가 만나며 끝이 난다.
영화는 이렇게 랄리의 시선으로 사건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사건의 나열만으로도 영화의 메시지가 만들어진다. 사건들은 여성에 대한 터키 사회 억압과 폭력,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있다. 사건들의 나열은 지금 이 시대에 페미니즘이 어째서 필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그곳의 남자들은 결혼식에서 폭죽 대신 총을 쏴댄다. 신부가 귀를 틀어막으며 비명을 지르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터키의 여자들은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 프랑스는 <디판> 대신 <무스탕: 랄리의 여름>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렸다. 터키를 대신해 이 영화를 후보에 올린 결정에 감탄과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