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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2. 2023

회색지대의 인물

<타르> 토드 필드 2022

*스포일러 포함


 <타르>는 이상한 방식으로 캔슬컬처를 비판하려 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지휘자인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를 주인공 삼은 이 영화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있던 그가 추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마치 그가 실존하는 인물처럼 다룬다. 15번째로 EGOT을 달성한 사람이라던가, 레너드 번스타인의 제자라던가 하는 등 실존하는 인물, 시상식, 사건 등의 이야기가 난무하는 영화 초반부의 대담 장면은 리디아 타르라는 가상의 인물상을 굉장히 뚜렷하게 그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영화는 타르가 팬데믹 이후의 필하모닉이 새로운 음반 녹음을 준비하는 과정과 함께, 타르가 참여했던 여성 지휘자 육성을 위한 재단에서 있었던 모종의 사건이 공론화되며 그가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마스터인 바이올리니스트 샤론(니나 호스)을 배우자로 두고 함께 딸을 양육하며 살아가고, 재단을 통해 타르를 알게 된 젊은 지휘자 지망생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를 비서로 두어 활동한다. 러닝타임의 절반은 위와 같은 타르의 활동과 그의 주변인을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타르의 몰락이 본격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가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해고한 뒤의 시점이다. 그는 프란체스카로 하여금 스스로를 포함하여 부지휘자 후보를 추려 보라 지시한다. 오랜 시간 타르의 활동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그는 자신이 부지휘자가 될 것이라 여긴다. 명확히 묘사되는 것은 아니지만, 프란체스카는 재단에서 함께 공부하던 크리스타라는 인물과 친밀했으며, 크리스타 또한 타르와 일정 부분 친밀한 관계였으나 어딘가 껄끄럽게 관계가 끝났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타르가 관계자들에게 크리스타를 채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던 메일을 급하게 지우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프란체스카는 크리스타에게 연락이 왔음을 타르에게 알리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 크리스타는 자살을 택하고, 부지휘자 채용에서 떨어진 프란체스카는 사표를 낸 뒤 잠적한다. 그리고 크리스타의 부모를 통해 그의 자살이 타르와 연관되어 있음이 공론화된다. 

 이 공론화는 다른 공론화와 함께 진행된다. 그가 줄리어드 음대에 특강을 갔을 때 유색인종 퀴어 학생에게 폭언을 하였으며 그 학생이 분노하여 수업 중간에 퇴장했다는 내용의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이 영상 이전에 줄리어드 음대 수업 전체를 이미 목격했다. 학생들이 촬영한 영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편집된 해당 영상과 정 반대로, 이 영화는 타르의 강의를 롱테이크로 담아낸다. 관객이 목격한 타르의 언행은 분명 권위적이었지만, 편집된 영상의 맥락과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해당 영상으로 인한 공론화를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넘겨버린다. 하지만 이 영상은 크리스타의 자살과 연계된 타르의 혐의가 더욱 크게 공론화되고, 그가 뉴욕에서 가진 북토크 현장에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 

 타르의 몰락에 관여된 두 사건은 일종의 회색지대를 형성한다. 첫째, 크리스타와 연관된 사건에 관한 타르의 과거는 영화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크리스타의 취업을 방해한 행위는 확실하게 등장한다. 둘째, 특강에서 타르의 언행을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어떤 경계에 있는 언행마저 문제시되는 방식의 공론화가 진행되었다. 셋째, 타르의 ‘캔슬’은 두 사건에 관한 공론화가 시작되자마자 진행되었다. <타르>는 156분 동안 타르의 권위주의, 성공지향적인 모습, 신자유주의적 착취자의 면모, 공격성과 나약함, 트라우마와 예민함 등을 모두 보여준다. 캔슬의 대상이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영화는 그러한 타르의 면모들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려 한다. <타르>는 그 회색지대를 오랜 시간 응시하며, 타르의 시야로 그 상황을 담아낸다. 동시에 의도적으로 타르의 과거를 보여주지 않거나, 추상적인 꿈 장면으로 대체해 버리는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 많은 회색지대를 떠올리게끔 유도한다.

 이 지점에서 <타르>는 목적을 상실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타르의 가해사실과 보여주지 않는 과거의 사건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회색지대 속에서 관객은 저 인물에 관한 명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영화는 이러한 방향으로 관객을 유도하려 한다. 중립이라고 말해지는 가상의 위치에 관객을 위치시킨 채 타르를 판단해 보라고 종용하려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그러한 위치를 스스로 뒤흔든다. 캔슬된 타르는 필리핀으로 향한다. 영화는 그곳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새출발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타르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어떤 SF 판타지 영화의 연주상영이었으며 코스튬을 입은 팬들이 잔뜩 앉아 있는 객석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나버린다. 클래식 업계의 정상에서 단박에 가장 보잘것없는 자리로 추락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사뭇 당황스럽다. 캔슬당한 인물의 최후를 보여주는 것일까? 혹은 그가 어린 시절의 집에서 다시 틀어본, 비디오로 녹화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을 되새기며 추락 이후에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무래도 토드 필드는 후자의 선택을 한 것만 같다. 비록 가장 비루한 위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음에도 어딘가 생기 넘치는 타르의 얼굴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유명한 말을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 없이 오직 음악을 느끼면 된다는 투로 받아들인 결과물과도 같다. 마지막 장면은 타르의 추락에 작용한 여러 힘들, 타르 자신의 악행, 필하모닉 지휘자라는 자리와 재단을 둘러싼 권력 다툼, 숙의 없는 캔슬컬처 등을 모두 무효로 만든다. 때문에 이 지점에서 <타르>는 캔슬컬처에 관해 발언하길 포기하고, 그것이 예술에 관한 작가의 순수성을 침해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타르가 경험한 지위의 낙차와 생기 넘치는 표정을 통해 어떤 숭고함을 보여주려는 듯한 이 장면은 <타르>가 논의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결과적으로 포기한다. 결국 스스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권위주의적인 인물상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것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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