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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6. 2023

2023-03-06


1.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진행한 행사 '디렉터스 체어'에서 나온 윤제균 감독과 최동훈 감독이 소셜에서 이런저런 말들을 낳고 있다. 짤로 돌아다니는 그들의 말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관객들이) 예전에서 극장에서만 느꼈었던 문화적인 풍족함 그런 것들을 이제 다른 곳에서도 찾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극장으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싸움을 해야 될 수밖에 없는데, 저는 일단 극장비를 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중국은 긴 코로나 터널을 뚫고 구정 때 코로나 제한을 풀고 극장은 가격을 내렸어요. 근데 많이 내린 건 아니고 한 500원 정도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건 되게 중요한 신호인 것 같아요. "자 여러분 우린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지만, 가격을 내릴 테니 영 화를 좀 봐주세요”라고 하는 사인이고 그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 힘들고 하지만 저는 관객에게 그런 사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 최동훈 감독
"저는 이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사실 현재가 두려운 게 아니라 미래가 두렵습니다. 한 가지만 제가 질문을 드리면 거기에 대한 해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여러분들은 CJ, 쇼박스, 롯데, NEW, 메가박스 이런 메이저 투자사에서 메인 투자를 선다고 하잖아요? 이 회사들이 메인 투자사가 되면 전체 영화 제작비의 몇 퍼센트 정도의 회사 돈이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팩트를 이야기하면 20~30%, 최대 30%. 그 말은 나머지 7~80%는 부분 투자사 펀드라던지 창업투자회사 영화 초반에 공동 제공이라고 해가지고 쫙 나와있잖아요. 그분들이 7~80%의 돈을 제작비로 투자를 하십니다. 코로나 3년 가까이 지나면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도 별로 없고, 그 펀드와 창투사 대부분의 영화를 투자하신 부분투자사들이 다 손해를 봤어요. 그래서 현재 결과는 뭐냐. 그래서 그분들이 거의 다 영화 투자는 안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다 떠나가셨어요. 이제부터 CJ, 쇼박스, 롯데, NEW, 메가박스에서 메인 투자를 선다는 말은 그 회사 돈으로 7-80%를 대고, 나머지 2~30%를 부분 투자사한테 투자를 받아서 영화를 찍어야 되는 그런 시대가 왔어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관객은 오지도 않고 시장이 쪼그라든 산업에 리스크는 더 올라갔는데, 가능성이 희박한 그 흥행을 목표로 제품에 투자를 하는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년 상반기 정도까지는 코로나 때 만들어 놓은 개봉할만한 영화가 아직 있습니다 근데 올해부터 지금부터, 이제 이 한국 영화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에 거의 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아마 극장에 과연 한국영화가 한 달에 몇 개가 나올지 과연 나오기는 나올지, 내후년은 어떻게 될지 되게 좀 암담한 상황이고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한국 영화 미래가 그렇게 밝지 않은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는 게 미래를 바라보는 제 생각입니다." - 윤제균 감독


 두 감독은 천만 영화를 두 편씩 보유한 이들이다. <실미도>가 천만을 달성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기에 최근작 <아바타: 물의 길>을 포함해 총 29편의 천만영화가 탄생했다. 매해 1.5편 정도의 영화가 천만 관객이라는, 국가 인구의 1/5 가량이 한 영화를 보는 기현상을 낳았다. 천만영화는 한국영화의 양적 팽창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이 거품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과 같은 규모의 시장에서 천만, 종종 천오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그 이면에서 '영화' 외에 다른 것들이 동원되었다는 자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제작사, 배급사, 극장을 몇 개의 대기업이 독과점의 형태로 운영하는 한국의 산업 지형부터 매번 터져 나오는 스크린독과점까지, '한국영화'를 '성공' 시키기 위해 동원된 유무형의 '전략'은 한국영화의 크기를 키워 왔다. <범죄 도시>와 같은 프랜차이즈의 등장, <기생충>의 수상 릴레이 등은 그러한 전략이 만들어낸 금자탑이다. 최동훈과 윤제균은 이러한 전략의 수혜자이자 설계자에 가깝다. 멀티플렉스의 도입 이후 상업영화 연출을 시작한 이들은 '천만영화'라는 21세기 한국영화 산업의 첫 이정표를 목격하며 입봉했다. 최동훈의 경우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과 <암살>, 윤제균의 경우 첫 흥행작 <색즉시공>을 쇼박스와 함께 했으며, 나머지 작품은 모두 CJ와 함께 했다. 이들은 각각 케이퍼필름, JK필름이라는 제작사를 운영하여 자신의 작품을 포함한 영화들을 제작하는 제작자이기도 하며, 윤제균은 작년(2022년)부터 CJ ENM 스튜디오스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한국영화' 산업이 현재 놓인 리스크가 발생한 구조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게 이들의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작품에 돈을 끌어오는 최종적인 결정권자는 아닐 테니까. 흥행에 실패한 그들의 최근작 <외계+인 1부>와 <영웅>이 구린 영화이기에 망할만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천만영화, 흥행작이라는 타이틀은 영화의 만듦새와는 상관이 없다. 다만 그들의 '사업실패'가 곧 '한국영화'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발언에 태클을 걸고 싶다.


2. 여기서 '한국영화'가 무엇인지는 조금 더 면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한국(상업)영화라는 괄호 쳐진 용어로 퉁치기에는 어폐가 있다. 그 안에는 무수한 영화들, 최동훈과 윤제균의 흥행작, <기생충>이나 <헤어질 결심>처럼 전 세계의 연말 리스트에 오르는 영화, <7광구>나 <자전차왕 엄복동> 같은 너저분한 기획영화를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영화'라는 단어를 단순히 '영화'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위의 발언에서 윤제균이 말하는 한국영화는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를 통칭하는 것임과 동시에, 과거의 '충무로'라는 말을 대체하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메리칸 시네마'라 불리는 영화들과 '할리우드'라는 산업의 차이에 가깝달까? 발리우드가 모든 인도영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할리우드가 모든 미국영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한때는 '충무로 영화'가 모든 한국영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사와 극장이 몰려 있기에 붙은 '충무로'라는 지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021년 서울극장의 폐관으로 그 시대는 사라졌다. '한국영화'라는 명명은 어디까지나 충무로라는 과거의 이름을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윤제균이 말하는 '한국영화'라는 대상은 영화가 아니라 과거 충무로라 불렸던 산업 전반이다. 투자사 펀드나 창업투자사들의 자본이 빠지면 소멸하는 것은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 전반이 아니라 한국영화다.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들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 멀티플렉스를 찾던 독립예술영화관을 찾던 극장에서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를 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를, 최동훈과 윤제균은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에서야 꺼내고 있다. 


3. 팬데믹을 맞이해 사그라져 가는 한국영화의 거품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 이 생각을 한건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군도: 민란의 시대>, <해무>가 함께 개봉했던 2014년 여름 시즌이다. 물론 한 편은 여전히 한국영화 최대의 흥행작이며, 다른 한 편은 나름의 흥행을 기록했고, 또 다른 한편은 돈을 잃지는 않았으며, 한 편 정도가 수익을 내는 데 실패했다. '여름/겨울/명절 시즌 한국영화 BIG 4' 같은 네이밍의 기사가 출몰한 것은 물론 2010년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CJ, 롯데, 쇼박스, NEW 등 대형 배급사들이 각각의 텐트폴 영화를 내걸고 시즌마다 3~4편의 영화가 격돌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 즈음부터다. 실제로 2012년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시작으로 2019년 <극한직업>과 <기생충>까지, 2016년을 제외하면 매년 2~3편의 한국영화가 천만영화의 호칭을 얻어냈다. "한국영화 2억 관객 돌파!" 같은 사건도 그때의 일이다. 'BIG 4'라는 명칭은 각 시즌 개봉하는 영화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배급사를 지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몇몇 작품의 실패한 NEW 대신 <범죄 도시>의 히트로 성장한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BIG 4'라는 워딩은 여전히 유효하다. 본격적인 거리두기 해제가 이루어진 2022년 여름 시즌은 팬데믹 이후 처음 맞이하는 'BIG 4'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를 들고 각각 출격했다. 결과는? <한산: 용의 출현> 정도가 성공했고 <헌트>는 손익분기점에 가까스로 도달했으며 나머지 두 편은 실패했다. 천만영화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는 이전에 자주 보던 구도에 가깝다. 이 구도는 흥행실패작을, 누군가의 손해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위에 언급한 2014년 여름 시즌 네 편의 관객수는 3,250만 가량이다. 네 편이 공평하게 관객수를 나누어 갖지 않는 이상, 네 영화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도 하에서 텐트폴 급이 아닌 규모의 영화들은 존재할 수 없다. 텐트폴 영화마저도 2등 전략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구도에 어떤 영화가 끼어들 수 있을까? 결국 'BIG 4'의 등장은 극장 관객수가 정상화되기 시작하던 2022년까지 계속 이어졌고, 텐트폴 영화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 구도는 반복된다. BIG 4의 관객수가 1,510만 가량이었던 2022년의 경우를 보자. 관객 수는 줄었지만 경쟁 및 흥행의 구도는 거의 동일하다. 관객수가 줄었기에 2등 작품조차 손익분기점에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뿐이다.

4.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관객수의 감소라던가 극장 티켓값의 상승 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영화가 그간 만들어온 출혈경쟁과, 2016년 넷플릭스의 한국 론칭 이후 끊임없이 예견되어 온 극장관람객의 감소 같은 상황을 애써 무시하던 것의 결과가 2023년 말해지는 한국영화의 위기다. 직배영화에 맞서기 위해 한국영화 스크린쿼터를 외치던 (충무로)영화인들은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서 앞장설 수 없는 입장의 '한국영화'인이 되었다. <아바타: 물의 길>의 물량공세에 밀려 <영웅>은 제대로 흥행할 기회를 잃었음에도, 윤제균은 스크린 독과점에 관해 말할 수 없다. 대신 그 실패를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반복되는 담론으로 이끌어간다. 이는 (충무로를 대체하는 단어로써의)한국영화의 사업실패지 한국에서 제작되는 영화 자체의 실패가 아니다. 극장산업 자체를 국가가 관리하는 중국의 사례를 끌어오는 최동훈이나, 영화와 산업의 규모를 불리기 위해 출혈경쟁 구도를 만들어 왔던 윤제균이 "쪼그라든 시장과 높아진 리스크"를 말하는 것은 비겁하게 다가온다. 두 감독의 말을 접하며 떠오른 것은 2018년 마미손의 <쇼 미 더 머니 777> 피날레 무대다. 비대해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출혈을 마다하지 않는 영화들이 다 함께 흥행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자면, 문자 그대로의 리셋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산업의 리셋의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어떤 우려 속에서, 우리가 상상해야 할 것은 한국영화가 사라진 황무지가 아니라 산업이 아닌 영화를 지칭하는 말로써의 '한국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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