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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6. 2023

길을 잃은 DCEU, 정말로...

<샤잠! 신들의 분노> 데이비드 F. 샌드버그 2023

 <샤잠! 신들의 분노>는 사실상 DCEU의 마지막 장편영화다. 오는 6월 개봉 예정인 <플래시>가 ‘플래시포인트’ 이벤트를 통해 사실상 세계관을 갈아엎을 것을 예고하고 있으며, DC 스튜디오의 새로운 수장이 된 제임스 건은 올해 개봉 예정인 <블루 비틀>과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을 통해 DCU(DC Universe)을 론칭할 계획이다. 물론 이 계획에서 제임스 건 자신이 리런치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드라마 <피스메이커>의 여러 인물들(아만다 월러, 존 이코노모스, 에밀리아 하코트, 비질란테 등)이 MCU의 실드가 맡았던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번 영화는 <블랙 아담>과 함께 DCEU의 문을 닫는 작품이 될 예정이다. 물론 샤잠(제커리 리바이)이 DCU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유니버스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영화의 쿠키영상이 뿌린 떡밥은 회수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나 <저스티스 리그>의 쿠키영상이 잭 스나이더의 퇴장과 함께 풀리지 않을 떡밥이 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DCEU나 DCU의 팬들에게나 관심 있을 이야기이긴 하다. DCEU건 DCU건 아직 MCU처럼 대중들에게 각인된 세계관은 되지 못했다. 개별 작품들을 보더라도, 서로가 공존하고 있음이 어렴풋이 드러낼 뿐이다. 조스 웨던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 이후의 전략은 나름대로 신선했다. 각각의 작품이 연동된다기보단 느슨하게 공존하는 방식은 개별 작품에 나름의 개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초창기 MCU처럼 각 작품에 장르를 부여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아쿠아맨>, <버즈 오브 프레이>, <원더우먼 1984>,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블랙 아담> 모두 각자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물론 완성도가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샤잠!>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였다. 슈퍼히어로들을 동경하는,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고아 소년 빌리 뱃슨이 우연한 계기로 마법사(다몬 하운수)를 만나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이야기, 더 나아가 위탁가정의 다른 고아 가족들과 함께 팀이 된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슈퍼맨에 가까운 능력을 갖게 된 어린아이가 슈퍼히어로가 되어가며 겪는 좌충우돌을 썩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영화였다.

 <샤잠! 신들의 분노>는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빌리 뱃슨보단 샤잠의 모습으로만 등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빌리로 등장할 때 더욱 진중한 느낌을 주고 샤잠의 모습에선 억지로 철없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전작에서도 일정 부분 그랬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의 (샤잠이 아닌) 빌리가 가졌던 역할 대부분은 프레디(잭 딜런 그레이저)가 도맡는다. 여기에 두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아직 4명이 더 남은 ‘샤잠 패밀리’의 이야기, 마법사로 인해 몰락한 아틀라스의 딸들인 헤스페라(헬렌 미렌), 칼립소(루시 리우), 앤시아(레이첼 지글러)의 이야기까지, <샤잠! 신들의 분노>가 다뤄야 할 인물은 웬만한 MCU 크로스오버 이벤트만큼이나 많다. 게다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빌리/샤잠과 프레디로 양분되어 있어, 샤잠의 이름을 내걸었음에도 샤잠보단 프레디가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샤잠 패밀리 전체가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빌리와 프레디를 제외한 네 명의 가족은 각각이 주목받은 특정 포인트가 있을 분 그들 각자의 이야기가 제대로 소개되진 못한다. 

 그러한 와중에 등장한 DCEU의 신적 존재라던가 신의 영역 같은 개념들은 새로운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원더우먼>이나 <블랙 아담>과 같은 DCEU의 다른 작품에서 소개된 바 있긴 하지만, 이를 전면에 끌고 온 것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영화는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가는 와중에 길을 잃는다. DCEU의 선배 히어로들이 보여준 시그니처 액션을 모방한 전작의 액션처럼 캐릭터의 이미지에 걸맞은 액션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소 유치한 톤으로 전개되는 것과 다르게, PG-13치고는 끔찍한 외형의 맨티코어, 키클롭스, 미노타우로스 등이 등장하는 후반부는 잭 스나이더/월터 하마다가 그리던 DCEU의 취향과 제임스 건이 바라는 DCU의 취향이 전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전작이 슈퍼히어로 세계관 속에서 우연히 슈퍼히어로가 된 소년의 좌충우돌 성장기였다면, 이번 영화는 캐릭터의 외적인 부분만 유지한 채 이야기를 완전히 내려놓은 것만 같다. ‘신들의 분노’가 무엇인지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것에서부터 실패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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