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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21. 2023

갑작스러운 방향전환

<클로즈> 루카스 돈트 2022


*스포일러 포함     


 시골 화훼농장에서 살아가는 레오(에덴 담브린)는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자라온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와 함께 중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에서도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둘을 보고, 교실의 또래들은 두 사람이 연애 중인 것으로 오인하곤 한다. 그러한 오인이 놀림이 되고,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려 하며 점차 그와 멀어진다.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놓고 보자면, <클로즈>는 자신의 성적지향, 성적 정체성을 고민조차 하지 못하던 시기의 두 소년을 그려내고 있는 것만 같다. 레오와 레미가 달려 나가는 화훼농장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순수한 유토피아인 것처럼 그려내고, 도시에 있는 학교의 모습은 그와 구별되는 바깥처럼 그려진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 공간 구도 속에서 두 소년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을 것처럼 영화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영화 중반 즈음, 아이들의 괴롭힘과 그로 인해 자신과 거리를 둔 레오를 견디지 못한 레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거리를 두었기에 레미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견뎌내는 레오의 이야기다. 레오는 학교의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소년적인 활동들, 아이스하키나 축구 같은 활동을 한다. 레미가 죽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레오는 그러한 활동들을 이어나간다. 레오와 레미의 입학부터 첫 학년의 마지막 날까지 1년가량의 시간을 다루는 <클로즈>는 감정 자체보단 감정이 퇴적된 시간을 다룬다. 우정 혹은 사랑이라는 두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레오와 레미의 관계를 보여주는 초반부라던가, 레미가 죽은 이후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레오를 보여주는 방식은 그들의 감정에 함께 침잠하기보단 그들이 특정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이 스크린 위에 쌓여가는 방식으로 다뤄진다.      

 레미의 죽음은 영화의 초반부가 던진 주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불필요했던 유토피아적 세계에 살아가던 이들이 그 외부로 나갔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상대할 것이며, 그로 인해 변화하는 인물과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주제를 갑작스레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클로즈>가 보여주는 방향 선회는 외부에 대항하는 주체로서 레오라는 소년을 다루기에 앞서 정형화된 방식의 이야기와 감정선으로 그를 이끌어간다. 물론 영화의 앞선 절반이 지닌 고민이 레미와 함께 영화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남겨진 사람인 레오의 죄책감은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상 위에서 펼쳐진다. 다만 조금 더 복잡한 맥락에 놓인 이 고민을 풀어놓기도 전에, 영화는 레오의 죄책감이라는 단일한 겉면으로 카메라의 시선을 옮겨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클로즈>는 조금 더 흥미로워질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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