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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1. 2023

반가운 변주와 부족한 실력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루이 르테리에 2023

 영화는 5편의 장면에서 시작된다. 돔(빈 디젤)과 브라이언(폴 워커)이 리우데자네이루의 악의 축 레예스의 금고를 강탈하고, 다리 위에서 추격전을 벌이던 장면. 그 다리 위에서 레예스는 사망했고, 바다에 떨어진 그의 아들 단테(제이슨 모모아)는 살아남았다. 그때로부터 10년이 흐른 시점, ‘패밀리’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돔의 집에 사이퍼(샤를리즈 테론)가 찾아온다. 그는 단테가 돔을 노리고 있음을 경고한다. 한편 에이전시의 의뢰를 받아 작전을 떠난 로만(타이리스 깁슨), 테즈(루다크리스), 한(성 강), 램지(나탈리 엠마뉴엘) 일행은 단테의 함정에 빠진다. 전작들에 비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하게 다가온다. 물론 7편과 9편에서 한과 연관된 3편의 장면들을 끌어오며 이야기를 전개했던 경우가 있긴 하지만, 등장인물의 물리적인 수 자체가 크게 늘어나 몇몇 인물의 스크린타임은 3분이 채 되지 않는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마지막 3부작의 첫 영화”라는 빈 디젤의 공언처럼, 이 영화는 그간 시리즈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인물을 끌어들이려 한다.

 지금까지 11편이 나온 이 시리즈를 돌이켜보자. 외전인 <홉스 앤 쇼>는 제외하고, 1~3편은 말 그대로 길거리 레이싱에 관한 영화였다. 하이스트나 언더커버 FBI 같은 요소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돔과 브라이언을 주축으로 하는 ‘패밀리’의 레이싱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가져갔다. 3편 <도쿄 드리프트>는 외전 격인 영화였으나,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탬)와 얽힌 스토리로 인해, 소위 말하는 ‘캐논’ 취급을 받게 된다. 본격적으로 판이 커진 것은 4편부터다. 시간대를 정리해 보자면 4~6편은 1, 2편과 3편 사이에 벌어진 일을 담아낸다. 돔, 브라이언,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한을 중심으로 한 ‘패밀리’의 각종 하이스트를 담아낸다. 이때부터 시리즈는 레이싱보단 하이스트와 액션에 방점을 찍는다. 제작비도 블록버스터 스케일이 되었고, 적을 물리치는 방식으로 그의 무언가를 훔치는 방식을 택한다. 패밀리가 모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익숙한 플롯이 세 편의 영화 동안 이어진다. 7편의 플롯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전부터 이어지던 ‘가족’이 이야기 내에서 더욱 강조된다. 폴 워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8, 9편은 돔의 직계가족(아들, 동생 제이콥(존 시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4편부터의 영화에서 레이싱은 영화마다 한 두 장면씩 등장해 시리즈의 인장으로 기능하는 역할 정도를 수행한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1~3편은 레이싱, 4~6편은 하이스트, 7~9편은 가족의 시련과 극복을 다루었다고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을 새로운 3부작의 시작점으로서, 이 영화가 내세우는 것은 패밀리의 해체 위기다. 빌런인 단테는 모든 면에서 돔의 안티테제다. 루이 르테리에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Dom has no hair, Dante has nothing but hair.”이라고 말할 정도로, 단테를 돔과 반대되는 인물로 만들어낸다. 풍성한 머리, 다양한 색의 의상과 자동차, 특유의 수다스러움과 장난기 등. 이러한 설정은 제이슨 모모아의 훌륭한 퍼포먼스를 통해 인상적인 빌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시리즈의 이전 빌런들, 이를테면 쇼 형제와 같은 액션이라던가 사이퍼와 같은 지략가, 혹은 단순히 마피아나 카르텔의 수장과 같은 전형적인 느낌의 빌런이 아니었기에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 성공적인 부분이 단테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이번 영화는 언제나 뭉쳐 다니던 ‘패밀리’를 여기저기에 흩어 놓는다. 시리즈의 규칙들은 여기저기서 뒤집힌다. 로만이 리더로 나선 하이스트는 단테의 함정이었고, 레이스는 단테의 행동으로 인해 성립되지 못한다.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요소들이 무너진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큰 불만은 없다. 돔과 ‘토레토 패밀리’의 안티테제로서 단테를 내세웠으니, 시리즈의 정체성과도 같은 요소들을 뒤집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이전 시리즈보다, 특히 돔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져 페이스를 잃어버린 8, 9편보다 성긴 각본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자취를 감춘 노바디(커트 러셀)의 뒤를 잇는 새로운 캐릭터 테스(브리 라슨)와 에임스(앨런 리치슨)는, 이미 존재하는 무수한 캐릭터의 분량을 앗아감과 동시에 이들을 설명하기 위해 추가적인 장면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늘어지게 만든다. 리틀 노바디(스콧 이스트우드)라는 캐릭터가 이미 존재함에도 굳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마땅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엘레나의 동생 이사벨(다니엘라 멜키오르)의 등장이나, 레티와 사이퍼의 ‘캣파이트’처럼 사족에 가까운 장면들 또한 영화의 흐름을 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영화 전반의 액션과 편집이다. 아예 우주로 날아가버린 전편에 비하면, 자동차를 가능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돌아온 액션은 반갑다. 하지만 영화 초반의 단순 대화장면부터 이어진, 한없이 조급한 편집은 액션을 똑바로 관람할 수 없게 만든다. 얼핏 마이클 베이 같은 이들의 액션을 레퍼런스 삼은 것만 같지만, 이 영화의 편집은 마이클 베이의 가장 엉성한 영화보다도 이상한 편집술을 보여준다. 영화의 첫 액션 세트피스인 로마 하이스트 장면을 떠올려보자. 로만과 한이 차를 몰고, 테즈와 램지가 트럭을 강탈하는 구성으로 짜여 있다. 그리고 단테가 개입해 이들을 함정에 몰아넣고, 뒤늦게 도착한 돔, 레티, 리틀 노바디가 액션에 개입한다. 개요만 놓고 보자면 시리즈의 익숙한 패턴처럼 느껴지지만, 잘게 나누어진 컷과 풀샷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은 각 멤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컷들을 보여주는 대신 멤버들이 무전으로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다. 시리즈 특유의 육중함도, 마이클 베이 느낌의 난장판도, 루이 르테리에 감독의 초기작 <트랜스포터>와 같은 속도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리즈의 최종장을 위한 반가운 변화들이 있었지만, 불안정한 완성도는 앞선 8, 9편에 덧붙여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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