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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6. 2023

시리즈(와 장르)의 충실한 계승과 전복

<스크림 6>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2023

 전작의 사건 이후 1년 뒤, 사만다((멜리사 바레라)와 테라(제나 오르테가) 자매는 채드(메이슨 구딩), 민디(자스민 사보이 브라운) 남매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꾸리며 살아가려 하지만, 우즈보로에서의 사건은 꼬리표처럼 사만다를 따라다닌다. 도리어 사만다를 살인마로 몰아가는 음모론이 온라인에서 판치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고스트페이스에 의한 살인사건이 다시 한번 벌어지고, 또다시 타깃이 된 사만다 일행은 이에 맞선다. 무수히 반복되는 슬래셔 시리즈의 클리셰를 끌어온 일종의 메타-호러영화였던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받은 전작은 (스스로 주장하는 이름대로) 훌륭한 ‘리퀄’이었다. 전작의 주요 인물들을 다시 불러오고, 장르와 시리즈의 규칙에 맞추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비주얼과 이야기의 강도를 2020년대에 맞는 방식으로 강화했다. 시리즈 최초로 우즈보로를 벗어남과 동시에 시드니(니브 캠벨)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다. 물론 게일(커트니 콕스)은 어김없이 출연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첫 <스크림>의 장면을 재현함과 동시에 비튼다. 드류 배리모어를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퇴장시켜 버렸던 유명한 장면을, 이번에는 동시대 가장 유명한 호러퀸인 사마라 위빙을 데리고 재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영화는 곧바로 그를 살해한 고스트페이스의 정체를 밝힌다. 심지어 그는 테라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다. 제이슨이라는 이름의 이 캐릭터(집에서 <13일의 금요일>을 틀어놓는다)를 연기한 배우는 토니 레볼로리다. 테라와 사만다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던 그와 파트너는 시리즈 전통의 방식대로 살해당한다. 살인마에게 전화를 받고, 수상한 게임을 벌이고, 나이프에 난도질당해 죽는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제대로 등장하기도 전에 벌어지는 두 죽음은 1편의 오마주임과 동시에 그것을 비트는 시도다. 전편이 ‘리퀄’이라는 이름으로 시리즈의 규칙을 보존함과 동시에 비틀었던 것처럼, 이번 영화 역시 비슷한 시도를 이어간다. 

 이 시도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만다가 경험하는 비난은 지난 시리즈에서 시드니가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속에서 <스크림> 시리즈와 같은 지위에 놓이는 <스탭> 시리즈와 우즈보로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의 살해도구 및 고스트페이스 마스크를 전시해 둔 공간이 등장하는 순간, 이번 영화가 품은 야욕이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갑자기 FBI가 되어 돌아온 <스크림 4G>의 커비(헤이든 파네티어)처럼, 전작들이 겹겹이 포개어지며 이야기의 겹을 만드는 방식도 다소 지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전편이 그랬던 것처럼, 일시적인 아쉬움에 머문다. <스크림> 시리즈는 태생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시리즈’ 혹은 ‘프랜차이즈’라 불려 온 것들을 가지고 즐겁게 장난쳐보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스크림> 시리즈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을 <나이트메어 7: 뉴 나이트메어>를 만들던 시기의 웨스 크레이븐은 자가복제를 거듭하며 원작을 망치던 영화들에 환멸을 느꼈지만, 결국 그 또한 네 편의 <스크림>을 만들어냈다. 일종의 패러디로서의 자기복제는 그것의 본질적인 ‘구림’을 끌어안으며 전개된다. 민디의 대사를 통해 강조되는 ‘규칙’은 시리즈가 반복되며 무수하게 비틀어지고 변주되어 의미를 잃었다. 범인이 누구인지에 관한 추리게임은 어쨌거나 <스크림>의 주요한 소재가 아니다. 최소한의 개연성만 보장된다면, 그것은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는 샌드박스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맷 베티넬리-올핀과 타일러 질렛은 그것을 이해하는 감독이며, <스크림> 5편을 만들기 이전 <레디 오어 낫>을 통해 그 재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스크림 6>는 분명 익숙한 시도다. 시리즈의 배경을 바꾸고, 원작의 주인공을 빼놓고서도 시리즈를 이어간다. 확고한 단점처럼 보이는 이 부분은 도리어 이 영화의 동력이 된다. 몸통에 칼을 맞고도 계속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이 어색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제외하면(사실 이는 ‘프랜차이즈’ 영화의 특징 아닌가), 이 영화는 살육의 공포에 두려워하면서도 그 쾌감을 목격하고자 하는 슬래셔 영화의 관객성을 주요한 테마로 기입하고 있다. 그러한 지점에서, 물론 호러영화사에 남을 걸작은 아닐지라도, 이번 영화는 시리즈(와 장르)의 충실한 계승과 전복을 이어가고 있다. 웨스 크레이븐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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