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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6. 2023

개성은 사라지고 야망만 남은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스티븐 케이플 주니어 2023

 행성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존재 유니크론(콜먼 도밍고)은 새로운 먹이 행성을 찾기 위해 트랜스워프키를 손에 넣으려 한다. 그의 부하 스커지(피터 딘클리지)는 테러콘을 이끌고 키가 있는 맥시멀의 행성을 찾고, 혈투 끝에 옵티머스 프라이멀(론 펄먼), 에어레이저(양자경) 등의 맥시멀은 키를 가지고 지구에 숨는다. 시간이 흘러 1994년의 브루클린, 돈을 벌기 위해 자동차를 훔치려던 노아(앤서니 라모스)는 고고학자 엘레나(도미니크 피시백)이 발견한 트랜스워프키로 인해 깨어난 오토봇과 스커지 일당의 싸움에 휘말린다. 그가 훔치려던 차가 오토봇 미라지(피트 데이비슨)이었던 것. 얼떨결에 노아와 엘레나는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컬런)을 중심으로 한 오토봇, 지구에 은신하던 맥시멀과 함께 스커지 일당에 맞서 싸우게 된다.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마이클 베이가 직접 연출하지 않은 두 번째 <트랜스포머> 시리즈이자, <범블비> 이후 사실상의 리부트를 거치게 된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이 담긴 작품이다. 앞선 다섯 편의 영화의 프리퀄을 표방하지만, 연결된 이야기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나름대로 개성적인, 동시에 한없이 미국적인 시리즈였던 마이클 베이의 영화들은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힘을 잃었다. 4편과 5편에 이르러서는 마이클 베이 특유의 개성도 반복되는 액션과 폭발, 갈수록 분간할 수 없는 트랜스포머들의 외형,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영화의 완성도로 인해 무너졌다. 시리즈를 떠난 마이클 베이는, 비록 여전히 무척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과시적인 영화를 만들지만, <앰뷸런스> 같은 준수한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증명한 것이라면, 마이클 베이의 방식으로 제작되는 <트랜스포머> 영화는 생명을 다했다는 것 정도다.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다소 소소한 규모로 제작된 트래비스 나이트의 <범블비>는 베이헴(bayhem)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벗어나 시리즈가 존속될 수 있는가를 견주어보는 시도였다. 다행히도 <범블비>는 캐릭터의 매력을 내세웠고 헤일리 스타인펠드와 존 시나라는 두 스타의 능력의 힘입어 성공했다. 그렇다면 다시금 ‘트랜스포머’를 제목에 내세운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고릴라, 독수리, 치타 등의 동물을 모티프 삼은 맥시멀을 앞에 내세운 이번 영화는 앞선 영화들과 다른 전략을 내세운다. 물론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서 공룡 형태의 트랜스포머가 등장한 바 있지만, 그들은 메인에 나서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론 펄먼, 양자경, 피터 딘클리지 등 목소리 캐스팅에도 한껏 힘을 준 이번 영화의 새로운 캐릭터들은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대립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벗어나 맥시멀과 테러콘이라는 새로운 집단을 등장시켰다. 삼파전 구도로 진행되는 트랜스포머들의 이야기 사이에 끼인 노아와 엘레나는 단순히 “지구를 지킨다” 같은 대의명분만을 통해 움직이는 대신 생계와 자아실현을 통해 오토봇과 동행한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시리즈를 리부트하겠다는 야심보단, 마이클 베이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베이 특유의 폭발은 굉장히 자제되었고, 삼파전이라는 구도를 충분히 설명하기 위한 대사들이 가득하다. 노아와 엘레나 각각의 개인사를 설명하는, 트랜스포머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의 비중도 1편 이후 가장 많다. 베이의 트랜스포머들이 전쟁영화의 잔혹함을 로봇으로 대치하여 가져왔다면, 이번 영화의 주된 레퍼런스는 MCU를 비롯한 슈퍼히어로 장르다. 노아와 엘레나는 시리즈의 이전 인간 캐릭터들보단 다분히 개인화된 동시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하는 최근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과 조금 더 친연성을 갖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차지하는 전투 시퀀스는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조각모음 같다. 단순히 각 액션의 구도뿐 아니라 장면 전체의 구도와 전개를 고스란히 따온다.      

 새로운 세계관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무엇을 참조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준다. MCU의 성공 이후로 할리우드에 난립하기 시작한 각종 ‘시네마틱 유니버스’들이 후속작을 내지 못하고 침몰하는 과정을 보아온 입장에서, 자신의 개성을 정립하지 못한 채 시작한 이번 리부트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베이의 방법론이 옳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개성마저 잃어버린 채 하나의 세계관을 출범시키려는 욕망은 예고된 실패를 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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