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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3. 2017

8. 극장 유랑기

 영화를 보다 보면 별의별 극장에 다 가보게 된다. 집 앞에 있는 극장에서 모든 개봉작을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소규모로 개봉하는 영화들을 찾아다니려면 독립영화관을 찾아다녀야 한다. 영화제를 다니다 보면 지방에 있는 극장까지 여러 군데를 갈 수밖에 없다. 시네마테크까지 합하면 방문해본 극장의 수도 꽤 많아진다. 몇몇 곳은 어릴 때부터 갔었고, 당연히 가봤겠지 싶지만 최근에야 방문해본 극장도 있다.

대한극장 전경

 처음으로 가본 극장은 서울극장 혹은 대한극장으로 기억한다. 별로 크지 않은, 100석 규모가 채 되지 않는 상영관에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충무로인지 종로인지는 기억이 오래되어정확하지 않다.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그 이후에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와 롯데시네마 청량리가 생기기 전까지 대한극장을 가장 자주 갔다는 것이다. 나와 남동생은 물론이고, 엄마와 아빠도 영화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기에 가족 4명이서 극장을 자주 찾고는 했다. 토요일 조조로 대한극장을 자주 찾았다. 왕십리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극장이 대한극장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물론, <슈퍼맨 리턴즈>나 <괴물>, <해운대> 같은 영화들을 가족이 함께 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해무>를 보러 부모님과 간 적이 있다. 가족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랄까. 이제는 시설이 낙후되어서, 더 가까운 곳에 극장이 생겨서 시사회가 아니면 딱히 찾지는 않는다. 극장 바로 오른편에 있던 돈까스 맛집이 없어지고 나서 더욱 잘 안 가게 되기도 했다. 홈시어터가 생각나는 조그마한 1관부터 언제 가도 아찔한 좌석이 스크린보다 높은 곳에 있는 11관까지 여러 모로 추억이 많은 극장이다.


 대한극장을 잘 안 가게 된 이유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와 청량리는 내가 초등학고 5, 6학년 때쯤 생긴 것으로 기억한다. 대한극장이 2001년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한 지 5,6년 정도 지난 후이다. 대한극장의 시설이 낙후되었다기엔 조금 이른 시점이었는데, 아무래도 롯데마트나 이마트와 붙어있는 롯데시네마가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가족이 움직이기 편한 위치로 가게 된 것 같았다. 청량리는 이제 잘 가지 않지만, 건대입구는 시사회가 있으면 종종 가곤 한다. 톰 하디의 밀입국(?) 사건 덕분에 오랜만에 들르기도 했다. 롯데시네마의 예술영화 전용관인 아르떼관을 건대입구에서 처음으로 갔었다. 레아 세이두 주연의 <시스터>를 개봉 당시 엄마와 둘이 보러 갔었는데, 어쩌다 보게 된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IMAX로 유명한 동네극장 CGV 왕십리

 2008년 중학생이 되어서 드디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극장이 생겼다. 왕십리 민자역사가 완공되면서 CGV 왕십리가 개관했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극장이 생겼다는 것은 조조영화와 심야영화의 자유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통 걱정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골드클래스관 제외) 10개관 규모의 극장은 영화 관람 횟수를 큰 폭으로 늘려주었다. 게다가 현재까지도 국내 최고의 상영관 중 하나인 IMAX관이 들어서면서 관람 환경의 질도 높아졌다. 물론 한 동안 마스킹을 하지 않아 불만이었지만, 최근엔 다시 마스킹도 해주고 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특성상 큰 영화만 미친 듯이 틀어주는 시간표가 불만이기는 하지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자주 찾는 극장이 되었다. 다만 극장이 개관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개인적인 문제로 CGV 왕십리를 자주 찾지 못했다. 중고등학교를 지방에서 다녔기 때문이다.


 중학교는 춘천에서, 고등학교는 거창에서 총 6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다. 집 앞에 막 생긴 극장을 찾기는커녕, 쓸데없이 빽빽한 규칙과 촌구석이라는 특성상(특히 춘천의 학교는 시내까지 버스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6년 동안 극장을 찾기 힘들었다. 춘천에 처음 갔던 중학교 1학년 때는 춘천 명동에 있는 프리머스가 유일한 극장이었다. 서너 번 정도 그곳에서 영화를 봤었는데, 영화관보다 1층에 있던 오락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후 중학교 2학년이 되기 직전에 투탑시티라는 건물이 들어서고, 강원도의 첫 대기업 멀티플렉스인 CGV 춘천이 들어섰다. <2012>, <아바타> 같은 영화를 그곳에서 관람했다. 워낙 사람이 없는 곳이라 극장에서 혼자 혹은 같이 간 친구들끼리 상영관을 독차지하고 관람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 상영관을 하나 대관해 <페임>의 리메이크작을 관람했던 기억도 난다. 중간에 투탑시티 전기료 미납 등의 문제로 휴관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IMAX관까지 들어서며 잘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거의 찾아간 적이 없다. 그나마 그곳마저 없었으면 중학교 때는 2주에 한 번 서울에 갈 때만 영화를 봤을지도 모른다. 

거창 문화의 자존심!! 고센 시네마

 고등학교 때는 더더욱 극장에 가지 못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 야자와, 집까지 왕복 6시간, 차비만 4만 원이 드는 여건이었기 때문에 극장 자체를 찾는 횟수가 적어졌다. 운이 좋게도 인근 지역(거창 함양 산청) 중 유일하게 극장이 있는 곳이 거창이었다. 시내에 고센 시네마라는 2관짜리 극장이 있었다. 1학년 봄 때 처음으로 갔었는데, 관람한 영화는 마블의 <토르: 천둥의 신>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충격받았는데, 상영관 맨 뒷자리와 중간자리의 중간 언저리쯤에 기둥이 있었다. 상영관에 기둥이 있는 것은 처음 봤다(이후에 롯데시네마 황학에서도 봤다). 이어지는 극장 에티켓과 비상탈출로 안내는 더더욱 충격이었다. 노란 종이에 안내문을 인쇄해 <스타워즈>의 오프닝 자막처럼 캠코더로 촬영한 것을 그대로 상영했다. CGV의 귀여운 금호타이어 안내문을 보다가 만난 시골 어느 극장의 안내문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티켓 가격은 4000원, 그 와중에 팝콘도 4000원인 이상한 가격을 자랑했다. 아쉽게도 그 날 이후 극장이 있는 건물의 사정(여기도 전기료 미납)으로 휴관해서 한 동안 찾지 못했다. 반년 정도 휴관하다가 2011년 연말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을 시작으로 재개관했고, 티켓 가격 역시 인상되었다. 야자 등등에 치여 자주 가진 못했고, 3학년 여름방학 때 야자를 째고 <설국열차>를 보러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메가박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학생이 되고 엄청나게 다닌 멀티플렉스 3사

 대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20살 때는 한 해 100회 정도, 21살 때는 168회, 22살 때는 240회 정도 극장을 찾았다. 서울로 복귀하며 여러 독립영화관과 시네마테크 등을 알게 되고, 시사회를 자주 가게 되면서 늘어나게 되었다. 시사회 덕에 메가박스 코엑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CGV 영등포 등에 자주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근처에 있는 극장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본다기 보단, 영화에 맞춰 극장을 선택한다고 해야 될까. IMAX 같은 특별관 상영을 가는 것이 아니면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서울 안의 극장을 찾아다닌다.

 상상마당 시네마, KU시네마테크는 각각 음악영화제와 서울힙합영화제를 통해 처음 방문했었다. 두 곳 모두 꾸준히 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상상마당은 소규모 상영관인데도 스크린이 꽉 차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다. 위층의 라이브 홀에서 콘서트가 있는 날만 피하면 언제나 만족스럽게 관람할 수 있다. 최근의 <록키 호러 픽쳐 쇼>나 <라라랜드> 상영은 정말 끝내줬다. KU시네마테크는 건국대학교 안에 있는 극장이다. 그래서인지 대학교 강의실 같은 느낌도 살짝 난다. 생각보다 사운드가 빵빵한 상영관인데,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상영 때 둥둥 울리던 힙합 음악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트나인은 성인이 되기 전에 한두 번 갔던 기억이 있었는데, 집에서 거리가 좀 있어 자주 가던 곳은 아니었다. 최근에야 다시 가기 시작했다. 시네마구구 등의 토크 프로그램과 연말에 찾아오는 감독 기획전(2016년엔 기타노 다케시) 등은 아트나인을 계속해서 찾게 만든다. 영화 관련 굿즈(포스터, 엽서 등)를 얻기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하다. 2개의 상영관이 있는데 독특하게도 0관과 9관으로 넘버링이 되어있다. 아래층의 메가박스 이수와 연계한 것일까? 0관이 독특한데, 상영관의 왼쪽 벽이 창문이다. 상영 전에 일찍 들어가면 이수-사당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물론 영화가 시작하면 블라인드가 내려온다. 이대의 아트하우스 모모는 2016년 초에 있었던 타르코프스키 전작전 때 처음 갔었다. <희생>을 보면서 잠과 사투를 벌였었다. 이따금 좋은 영화제나 기획전을 하곤 해서 가끔씩 가곤 한다.

 지금은 사라진 씨네코드 선재는 자주 가진 않았다. 집에서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격동이라는 곳 자체가 어딘가 어색했었다. 2016년 초 폐관 직전에 했던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을 좀 더 열심히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인디스페이스는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현 경희궁 미술관) 옆에 있었을 때 처음 가봤다. 언제 처음 가봤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광화문 시절의 마지막 기억은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의 시사회였다. 극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악수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2015년 서울극장으로 인디스페이스가 옮겨가고, 그 자리가 미로스페이스가 되었다. 미로스페이스일 때는 딱 한 번갔었다. 2015년 최고의 괴작인 <무서운 집>의 상영회 때였다. 서울극장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 인디스페이스를 간 것은 작년의 일이다. <그림자들의 섬> 펀딩 시사회 때 오랜만에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서울극장 자체에 간 것도 1년 만이었다. 2015년 <러덜리스> 시사회 때 오랜만에(아마도 2005년 <킹콩> 이후 처음으로) 서울극장을 찾았는데, 낙후된 시설과 무시무시한 관크를 경험한 뒤로 멀리했었다. 덕분에 서울극장 안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도 2016년에서야 처음 가게 되었다. 

 서울 내 시네마테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14년 말 즈음이다.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의 위치를 찾아봤었다. 집에서 1시간 반 거리라는 것을 알고는 마음을 접었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영자원을 찾은 것이 2015년 말 즈음에 있었던 스탠리 큐브릭 기획전이다. 큐브릭의 초기작 <영광의 길>과 <킬러스 키스>를 보러 영자원을 찾았었다. 그때 이후로 자주 영자원을 찾게 되었다. 집에서 거리가 있어 출퇴근을 하는 지금은 자주 가진 못하지만, 주말에는 종종 찾아간다. 이제는 가는 길도 익숙해져서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공짜라는 점이 영자원을 계속 찾게 만든다. 영자원 옆으로 이사 가고 싶을 정도이다. 서울의 또 다른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2016년 가을에서야 처음 찾게 되었다. 원래는 시네 바캉스 때 존 카펜터의 영화들과 무려 김태리가 오는 <아가씨>의 GV상영을 가려했으나, 폭염과 예매 실패로 인해 찾지 못했었다. 이후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를 통해 서울아트시네마에 처음 방문했다. 집에서도 가깝고,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등을 통해 고전과 동시대 영화들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자주 가고 있다. 관객회원 신청을 위해 열심히 6만 원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영화제를 다니면서 서울이 아닌 곳의 극장들도 많이 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덕분에 매년 여름마다 찾게 되는 CGV 부천, 부천시청, CGV 소풍은 이제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극장과 그 인근의 동선을 얼추 다 알게 되었다. 특히 부천시청에서 심야상영 중간 쉬는 시간에 시청 앞 잔디밭에 앉아 캔커피나 맥주를 마시면 그 순간만큼 행복하고 시원한 순간이 없다. 다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영화제 하면 부산국제영화제도 빠질 수 없다. 메가박스 해운대,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CGV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제의 동선이 영화제 방문 2년 차인 2016년에 익숙해져 버렸다. 벌써부터 올해의 부산영화제가 기대된다. 영화의 전당은 그 안의 모든 상영관을 가보진 못했다. 하늘연극장과 시네마테크관만 갔었다. 각각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관람했었다. 하늘연극장은 뮤지컬이나 연극 극장처럼 2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아무래도 영화를 관람하기에 좋은 상영관은 아니다. 매번 영화제 때마다 영화의 전당에서 있는 상영은 묘하게 안 가게 된다. 의식적으로 피한다기 보단 보고 싶은 영화의 예매에 실패한다거나 다른 기대작에 우선순위가 밀린다. 올해에는 영화의 전당에서 볼 영화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아다니다 보면 마치 유람하듯 돌아다니게 된다. 극장 근처의 맛집은 물론, 영화제 때는 인근의 숙소와 찜질방 정보까지 꿰게 된다. 이제는 어느 지역의 이름을 말했을 때 그곳에 있는 극장의 정보가 떠오른다. 서울의 곳곳을 극장을 돌아다니며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여행이랄까?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고, 극장에 찾아가면서 풍경들을 영화처럼 본다.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아다니는 순간이 영화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찾게 될 여러 극장들을 생각하며, 어떤 영화를 보게 될지 어느 극장을 찾게 될지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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