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오늘(7월 27일)로 개봉 10주년을 맞았다.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배급사 집계) 2006년 흥행 1위는 물론 당시 역대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에 이어 4번째 천만 영화로 등극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한 ‘아시아 영화 100’에도 선정되었고, 최고의 한국영화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영화가 되었다. ‘봉테일’ 봉준호 감독의 사회비판적인 시선과, 신파로 빠지지 않으면서 충분히 오락적인 연출력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낸 영화였다. 송강호를 비롯해 박해일, 배두나, 변희봉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와 당시엔 아역이었던 고아성의 연기들도 영화와 꼭 맞았다.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꽤 오랫동안 사용된 이병우 음악감독의 영화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신의 한 수였고, <살인의 추억>부터 봉준호와 호흡을 맞춰 온 김형구 촬영감독의 촬영 역시 훌륭했다.
사실 <괴물>이 영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장르적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진부하다. 이 영화의 가치에 대해선 이미 너무나도 많은 비평과 리뷰들이 올라와 있다. <괴물>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무래도 개인적인 기억을 꺼내야 할 듯하다. 아, 먼저 밝힌다. 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본 영화를 꼽으라면 무조건 <괴물>을 꼽는다. <괴물>만큼 많이 본 영화는 <해리포터> 시리즈밖에 없다. 참고로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다.
난 괴물을 2006년 개봉 당시에 처음 봤다. 네 가족이 함께 대한극장을 찾아 관람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처럼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때, 몇몇 장면에선 눈을 가릴 정도로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들을 제대로 보지 못 했다. 그렇게 관람을 마치고, 일종의 흥분상태로 극장을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몇 주 뒤 하굣길에 학교 정문에서 <괴물>을 2000원에 관람할 수 있는 쿠폰을 나눠주는 것을 받았다. 동네 청소년수련관 강당에서 금토일 주말 동안 하루에 두 타임 씩 총 여섯 번 <괴물>을 상영하는 행사를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을 동원해 할인권을 두둑이 챙긴 뒤, 집에 들러 가방을 놓고 자전거에 올라 청소년수련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3일 동안 3번 영화를 관람했다. 중간에 한 장면(송강호가 강제로 조직검사를 당하는 장면)에서 어떤 오류인지는 몰라도 5초 정도 분량이 잘린 것을 제외하면 만족스러운 상영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영화에 빠지기 시작한 게….
괴물이 나에게 준 영향은 크게 세 가지다.
1. 영화에 빠지게 만들었다
2.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들을 잘 보게 만들었다.
3. 혼자 영화관을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첫째, 나를 영화에 빠지게 만들었다. 사실 <괴물> 전에도 영화를 좋아했다. 5살 땐 <wb라기 공원>을 보고 공룡들의 이름을 달달 외우기도 했고, <토이 스토리>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지브리의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비디오를 몇 번 씩이나 돌려보기도 했다. 주말이 되면 부모님 손을 잡고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한 두 편씩 빌려와 영화를 보곤 했다. 가족 나들이는 주로 대한극장이었고, 아빠는 항상 케이블 영화 채널을 보고 계셨으며 어린이 도서관 사서인 엄마는 여러 애니메이션들을 보여줬다.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하지만 <괴물>이 바꿔놓은 것은 내가 볼 영화를 내가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있다. 그것이 비디오 대여점의 영화이든, 극장에서 볼 영화이든 관람할 영화를 내가 고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시작이었다. <괴물>이 아니라 다른 영화가 시발점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지만, <괴물>이 시발점의 역할을 해준 것이 고맙다. 초등학생 때, 중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본 뒤의 다시 볼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다른 영화였다는 점이 영화에 더 빠져든 계기가 된 것 같다. 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가 <괴물>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영화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시대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에 한탄하면서도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괴물>에게 배웠다.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를 전한다.
둘째,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를 잘 보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반복학습의 결과이다. 3일 연속 스크린으로 같은 장면을 보다 보면 영화를 거의 통째로 외워버리게 된다.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의 타이밍과 비주얼을 알아버리고 나면 그 감흥은 조금씩 떨어지기 마련이다. 처음 <괴물>을 봤을 땐 문이 잠긴 컨테이너 안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발버둥 치는 장면과 하수구에 사람 뼈를 토해내는 괴물의 모습이 끔찍하고 무서웠다. 재관람을 통한 반복학습과 이후 구입한 DVD 부가영상의 제작과정은 그것들이 죄다 가짜이고 무섭지 않으려면 충분히 무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더 나아가 크리쳐물에 흥미를 갖게 만들었고, <반지의 제왕>, <킹콩>부터 <더 씽> 같은 영화들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괴물> 이후 한 동안 잔인한 장면이란 게 없을만한 영화들만 보다 중학교 1학년 때 <새벽의 저주>와 <호스텔>을 봤었다. <괴물>이 준 면역이 효과적이었다. 끔찍함 보단 어떻게 찍었을까 싶은 호기심이 앞섰고, 지금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금지구역 상영작을 찾아다니고 있다. 당장 토요일에 예매되어 있는 영화가 <기름범벅교살자>, <우리는 고깃덩어리>이다. 어찌 보면 <괴물> 덕에 볼 수 있는 영화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를 전한다.
셋째, 영화관에 혼자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청소년수련관을 극장이라고 봐야 하는가를 질문할 수도 있겠다. 청소년수련관이 영화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극장에서 혼자 본 첫 영화는 대한극장에서 본 2008년의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이다. 그렇지만 당장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만 해도 부천시청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물론 상영의 퀄리티 자체는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돈을 주고 집이 아닌 장소에서 사람들과 뒤섞여 영화를 보는 공간에 혼자 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 고작 12살 때였다. 지금에야 혼자 극장에 가는 게 당연하지만(1년에 영화를 150편 이상 보는데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그때는 묘한 두려움이 있었다. 청소년수련관이라는 익숙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괴물>이 극장에서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기 시작했겠지만, 이것도 <괴물> 덕이었다고 억지로 끼워 맞춰본다.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를 전한다.
사실 <괴물>을 처음 볼 땐 이게 뭔지도 몰랐다. 그냥 한두 번 가본 여의도 한강공원에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타나고, 송강호를 비롯한 네 가족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그 이야기 자체가 좋았나 보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삑사리’ 미학(<괴물>에선 고아성의 손을 놓치는 송강호라던가, 오징어 다리가 구개라던가)과 유머가 유난히 나와 잘 맞았던 것도 있다. 영화의 만듦새와 디테일, 의미들에 대해서는 머리에 피가 말라가며 알게 되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당시에는 ‘영화’라는 것에 빠져버린 것 같다. 송강호가 홀린 듯이 원효대교 북단을 찾아간 것처럼 나도 자전거를 몰고 집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거대한 하수구와 기둥들의 수직적 이미지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제는 홀린 듯이 자전거를 타고 극장으로 향한다. 내가 찾고 싶은 것들은 영화관에 있다. 눈에 담아두고 싶은 이미지들을 스크린 위에서 찾는다. <괴물>은, 봉준호는 12살 나의 무의식에 영화를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