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은어와 신조어를 모아놓은 어반 딕셔너리는‘해리 포터 세대’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한다.
해리 포터 세대:1990~2000년 사이에 태어나, 해리 포터 시리즈와 함께 성장한 세대
소설『해리 포터』는 1997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출간을 시작으로 2007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까지 10년간 7권의 책으로 출간되었고,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영화로 제작되었다. 소설로 10년, 영화로 10년 동안 만들어진 해리 포터는 한 세대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이자 놀이가 되어버렸다. 1995년생인 나는 2001년 겨울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통해 처음으로 J. K. 롤링이 만들어낸 마법 세계에 들어갔고, 15년이 지난 지금 <신비한 동물사전>으로 이어지는 세계관 확장에 행복해하고 있다.
해리포터는 나에게 유독 처음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깊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이고, 처음으로 본 영국 영화이며, 처음으로 읽어본 소설이었다. 해외에서 먼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출간되고 번역본의 출간이 늦어지자 난생처음으로 원서를 구해서 읽어 보기도 했다. 영화의 최종편이 개봉했을 때는 영화를 보고 나옴과 동시에 다시 표를 끊어 극장으로 들어갔다. 하루에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이나 본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구매한 비디오 게임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아즈카반의 죄수]까지 사 모으다가 어느 순간 죄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해리 포터 덕분에 처음 소설도 접해보고 영어로 된 원서도 읽어 봤으며, 게임도 접해보게 되었다.
그중 8편의 <해리 포터> 영화는 내 초중고 12년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다니엘 레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세 배우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성장했고, 영화 속에서 그들이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나도 한 학년씩 올라갔다. 턱수염이 나는 해리와 론을 보면서 내 2, 3년 후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반에 올라가면 <해리 포터>를 통해 친구들과 대화를 시작하기도 했다. 여전히 <해리 포터>는 또래 친구들과의 뜨거운 대화거리이고, 매년 한 번씩은 8편의 영화를 정주행 해줘야 하는 관습도 생겼다. 1,17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럽지만, 일단 시작하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서 <신비한 동물사전> 5부작이 전부 공개되어 13편을 릴레이로 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얼마 전에도 집에서 친구들과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부터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파트 2>까지 4편을 연이어 봤다. 맛있는 음식과 수다가 뒤섞인 채 <해리 포터>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해리포터>는 앞이 창창한 세 배우를 비롯해 톰 펠튼(드레이코 말포이), 매튜 루이스(네빌 롱바텀), 이반나 린치(루나 러브굿), 로버트 패틴슨(케드릭 디고리) 등의 배우들을 발굴했다. <해리 포터> 이후 여러 드라마와 영화(특히 영 어덜트 소설 원작 영화)에 출연하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길에서 우연히 동창을 만난 듯 반갑다. <킬 유어 달링>, <스위스 아미 맨> 등 예술영화와 장르영화를 넘나드는 다니엘 레드클리프, <노아>, <미녀와 야수> 등 거장의 영화나 블록버스터에 출연을 이어가는 엠마 왓슨, <문 워커스> 등 재치 있는 영화에서 모습을 보이는 루퍼트 그린트 등 주연 삼인방의 영화들은 캐스팅부터 개봉까지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반갑다.
젊은 배우들의 성장을 지켜본 것과 동시에 수많은 명배우들의 이름과 얼굴을 <해리 포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앨런 릭먼, 마이클 갬본, 매기 스미스, 개리 올드먼, 엠마 톰슨, 랄프 파인즈, 헬레나 본햄 카터, 제이슨 아이삭스, 빌 나이, 존 허트, 도널글리슨, 데이비드 테넌트, 데이비드 듈리스, 티모시 스폴, 토비 존스, 짐 브로드벤트, 리처드 해리스 등 일일이 읊기도 지치는 영국 출신 명배우의 명단이 완성된다. 엄청난 작품 수를 선보이는 배우들도 있고,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영화를 가리지 않는 배우들도 있으며, <해리 포터> 이외에도 역사에 남을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도 있다. 작년과 올해 각각 스네이프와 올리벤더를 연기한 앨런 릭먼과 존 허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해리 포터 테마파크에 모인 팬들이 지팡이를 들고 추모하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해리 포터>를 매개체로 형성된 배우와 팬의 유대감은 영화에 출연한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로 남았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그들의 본명보다 영화 속 이름이 먼저 떠오르지만 말이다.
시리즈를 연출한 네 명의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두 편을 연출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구니스>, <나 홀로 집에> 등 아동용 영화를 만들어 오던 그가 <해리 포터>를 시작한 것은 최고의 선택 중 하나이다. 마법 세계를 여는 첫 두 작품으로 말끔하게 세계관을 소개한 연출은 나처럼 어린 팬들을 끌어 모았다. 이미 소설로 존재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스크린 위에 소개하는 작업을 만족스럽게 해냈다.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한 <아즈카반의 죄수>는 8편을 통틀어 최고의 영화로 꼽힌다. 쿠아론 특유의 롱테이크와 두 개의 타임라인을 사용한 서사 진행 능력은 <해리 포터>를 연출한 다른 감독들의 실력을 압도한다.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해리 포터>의 중심을 잡아주는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다. <도니 브래스코>의 마이크 뉴먼이 연출한 <불의 잔>은 다소 아쉬웠다. 볼드모트의 부활은 확실히 대단한 장면이었지만, 정작 트리위저드 시합 자체의 박진감이 덜해서 아쉬웠다. <불사조 기사단>부터 앞으로 제작될 <신비한 동물사전> 5부작까지 총 9편의 <해리 포터>를 연출한/연출할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이제 그 세계관에 통달한 것처럼 보인다. J. K. 롤링이 설계해둔 세계를 스크린에 옮겨 내는 능력은 그만의 것이 된 게 아닐까. 다만 서사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씩 아쉬움이 남는다.
<해리포터>를 만난 지 벌써 햇수로 16년이 되었지만, <해리 포터>는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다. 매 연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정주행 하고, 영국으로 여행 간 친구에게 지팡이 등 <해리 포터> 굿즈 구매대행을 부탁하며,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연극과 극본 출간 소식, <신비한 동물사전>의 제작 소식 등에 흥분했다. 방에는 <해리 포터> DVD 세트가 놓여있고, 침대 밑 서랍에는 『해리 포터』 소설 전권이 모셔져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일까, 여전히 해리 포터와 함께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 레드클리프나 엠마 왓슨의 행보에 언제나 응원을 보내는 것도, 앨런 릭먼이 별세했을 때 한 동안 우울했던 것도 내가 그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이다. 친구이자 스승이고 이야깃거리이자 교과서였던 <해리 포터>, 끊임없이 다시 보고 다시 읽고 싶어 지는 평생의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