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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5. 2017

사적 복수는 정의구현이 아니다

한재림 감독, 조인성 정우성 주연 <더 킹>

 목포 출신 양아치 박태수(조인성)는 우연히 검사를 보게 되고, 검사의 권력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후 공부를 시작한 태수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검사가 된다. 하지만 공무원처럼 지루한 일상에 지쳐가는 태수, 우연한 계기로 대학 선배인 검사 양병철(배성우)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을 만나게 된다. 그를 통해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게 된 태수, 정권교체 시기가 다가오자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내부자들>부터 시작해 <검사 외전>, <아수라>, <마스터>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고발(주로 정재계) 영화들의 연장선이다. 전두환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까지를 그리는 <더킹>은 한국 근현대사를 복기하며 영화가 전개된다. 이를 통해 앞서 언급한 다른 영화들과 차별점을 가지지만, 결국 주인공의 사적 복수를 통해 ‘통쾌한 정의구현’을 실천해내는 엔딩은 <더 킹>을 앞선 영화들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영화로 마무리 짓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더 킹>은 마틴 스콜세지와 나카시마 테츠야 등의 연출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태수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전개 방식과 전략 3부 사무실의 이야기, 임상희(김아중) 캐릭터의 사용 방식 등은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등의 영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양한 촬영 방식과 연극적인 조명, 슬로모션 등은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이나 <갈증> 등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베르디의 레퀴엠, 베토벤 7번 교향곡,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Experience’ 등의 다른 영화에서 많이 듣던 음악을 그대로 가져와 비슷하게 사용한 장면들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한국 남자영화 특유의 소년만화 판타지적인 전개(양아치에서 검사, 첫눈에 미인과 사랑에 빠지게 됨, 각자 성공한 뒤 우연히 다시 만나는 고향 친구 등) 역시 기시감을 더한다. 

 언제부터인가 주인공의 사적인 복수가 통쾌함이라는 감정 밑에 정의구현으로 퉁쳐지고 있다. 최근 개봉한 비슷한 영화들 중 <베테랑> 정도를 제외한 <내부자들>, <아수라>, <검사외전>, <성난 변호사> 등의 영화들이 모두 주인공의 사적인 계기로 인해 시작된 복수가 영화 속에서 정의구현으로 그려지며 마무리된다. 주인공의 사적 복수를 과연 정의구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 안팎의 사람들이 그것을 통쾌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기만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정의라는 것의 사적인 동기에 의한 내부자의 고발 혹은 그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면 깨어지지 않는 철옹성이라는 것인가. <더 킹>은 한 술 더 떠서 마지막의 선택을 관객에게 넘기며 훈계한다. 온갖 더러운 실상을 2시간 동안 전시한 뒤,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권력 투쟁의 판을 끊는 방법이 국민의 선택뿐이라고 주인공이 직접 말하는 방식에 통쾌함은커녕 불쾌함만 늘어간다.

 이화여대와 광화문의 촛불로부터 시작된 지금의 시국에 비해 <더 킹>은 짜증난다. 국민을 기만하던 자들의 싸움이 정의가 되는 세상을 바라고 사람들이 광장에 나온 것이 아니다. 물론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영화가 시의성을 띈다고는 하지만 당장 몇 년 앞의 일을 예측하고 만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베테랑> 이후에 쏟아진 사회비판적 남자영화들이 비슷한 서사방식을 취하고 있고, 그 방식과 태도가 <베테랑>보다 퇴보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영상과 연기의 퀄리티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태도의 문제가 누적되다 보니 <더 킹>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작사에서 기획되고 완전한 상품으로써 공산품으로 찍어낸 상업영화라지만, 임계점에 다다른 고민 없는 영화들에 대한 불만이 곧 터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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