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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5. 2023

이상한 순간들

<거미집> 김지운 2023

 <거미집>은 이상하다. 애당초 이 영화는 각본과 제작을 맡은 신연식의 연출작이었다. 그가 각본을 썼던 <동주>에 이은, 소위 ‘예술인 시리즈’의 일환(이난영, 신불출 등을 다룰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다)으로 김기영 감독을 다룬다는 것이었다. 김지운의 각색을 거쳐 완성된 <거미집>은 확실히 김기영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동주>가 윤동주의 특정 시기를 다룬 전기영화의 성격을 띠었다면, <거미집>은 김기영을 비롯해 60~70년대 활동한 한국의 여러 감독을 뒤섞어 놓았다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거미집>의 김열(송강호)을 김기영으로 치환한다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그가 신상옥(극 중 이름은 신상호)의 조연출 출신이며 그의 자장 아래서 활동했다는 묘사라던가, 신상옥의 신필름(극 중 이름은 신성필림) 소속 감독으로 활동한다는 묘사와 같은 것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다. 다만 극 중 극인 ‘거미집’의 세트장과 몇몇 장면, 이를테면 방직공장에 들어온 유림(정수정)이 공장 여공 합창단에서 오르간을 치는 호세(오정세)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하녀>를, 호세와 민자(임수정)의 집은 <화녀>와 <화녀 82>의 집을 연상시킨다. 결론적으로 괴기영화에 귀결되는 ‘거미집’은, 물론 구체적 세부는 다를지언정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나 <이어도>를 일정 부분 연상시킨다. 물론 김지운 감독이 밝히고 있듯 ‘거미집’의 모티프는 김기영의 영화들 뿐 아니라 이만희의 <악의 계단>이나 히치콕의 <싸이코> 등 다양한 영화들을 경유한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거미집>에서 김기영이라는 이름은 다양한 방식으로 배제된다.     

 <거미집>이 정말로 이상한 점은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된다.”는 영화를 다시 찍어나가는 과정이다. 김열을 압박해오는 검열의 문제나 배우들의 사생활은 이야기의 주된 동력이지만 주된 포인트는 아니다. 흑백으로 제시되는 ‘거미집’의 장면은 컬러로 제시되는 촬영장의 모습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아니다. 분명 ‘거미집’의 촬영현장은 ‘거미집’에 담긴 대사, 배우, 세트 등을 보여주지만, 함께 제시되는 ‘거미집’ 장면 속 숏들과는 거리가 멀다. 분절된 여러 숏으로 구성된 ‘거미집’ 장면들은 B카메라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오로지 한 대의 카메라로만 재촬영을 이어나가는 신성필림 세트장의 상황과 불일치한다. 무엇보다 한 세트장에서 단 이틀 동안 그러한 숏 구성으로 영화를 재촬영한다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하게 다가온다. 더 나아가, ‘거미집’ 장면들은 종종 김열의 지시를 벗어난다. “쭉 이어서 찍으라”는 김열의 지시와는 달리 짧게 분할된 숏들의 연쇄로 구성된 흑백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은 그러한 불일치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장면은, 물론 그것이 김열의 꿈이긴 하지만, 김열의 창작행위 자체가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한 것이라고 앞서 지시한다.      

 또 다른 이상한 점은 민자의 존재다. 다른 배우들은 각자의 전사를 드러낸다. 호세는 바람둥이다. 유림은 김열에 의해 발탁되어 ‘유림’이라는 예명을 부여받았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 여사(박정수)는 김열과 오랜 시간 작업했다는 언급이 나오고, 짧게 등장할 뿐인 사냥꾼 역의 배우(정인기)는 “군대도 안 간 놈이 전쟁영웅을 왜 연기하고 싶어해?”라는 대사에서 그 과거가 드러난다. 하지만 민자는? 민자는 ‘거미집’ 바깥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김열의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다른 배우나 제작사 신성필림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도 알려지지 않는다. ‘거미집’의 배역명이 각 배우 캐릭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지점에서, ‘거미집’이 그것의 촬영현장과 불일치하는 것과 반대로 배우들의 사생활은 극 중 이야기와 점차 일치해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민자는 오로지 ‘거미집’에만 충실하다. 그가 흑백 장면 바깥에서 등장하는, 사실상 그가 컬러로 등장하는 모든 순간은 ‘거미집’의 촬영과 연관된 것뿐이다. 민자는 ‘거미집’을 안팎으로 관통하며 두 겹의 영화에 동일한 위상으로 존재한다.      

 이 두 가지 이상함은 <거미집>을 무엇으로 이끄는가? 영화를 채우는 무수한 에피소드들, 가량 신성필림 대표 백 회장(장영남)을 무시하고 재촬영을 감행하는 미도(전여빈)이라던가, 검열절차를 무시하고 진행하던 중 문공부 국장(장광)이 촬영장에 난입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사실 사소한 것들이다. 유신 정권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영화에 대한 검열 제도는 <거미집>의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당시 한국영화계에 관한 언급들, 이만희의 차기작에 참여할 예정이라는 조연출이나 <별들의 고향> 촬영을 위해 이틀 뒤에는 촬영장을 비워야 한다는 대사와 같은 것도 사소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에 그친다.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는 김열의 반복적인 발화가 이 영화의 메인 이슈다. 이것을 찍지 않으면 영원히 고통에 시달릴 것 같다고 말하는, 내외부의 무수한 압박에 시달리는 천재의 형상을 <거미집>은 그려내려 한다. 한편으로 <거미집>은 무수한 불일치를 통해 천재의 형상을 불태워버린다. 그것은 불에 태워져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열의 눈앞에 아른거렸던 영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열의 천재성이 빛을 발해 탄생한 걸작이라기보단 ‘플랑 세캉스’를 잘못 이해하고 무의식 중에 배우들의 사생활을 영화에 기입해버린, 국밥집에서 그를 비난하던 영화평론가들이 “싸구려 치정극”이라 말하던 것에 차라리 가까울 것이다. <거미집>의 이상한 점들은 그럼에도 완성된 걸작들, 김지운이 신연식의 ‘김기영 전기’ 시나리오를 각색하며 기입했을 한국영화의 걸작들로 향하는 데 실패한다. 영화는 스스로의 이상한 지점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불필요하게 러닝타임을 채우는 에피소드들에 시간을 할애한다. <거미집>은 김지운의 맥락에서 <조용한 가족>와 <반칙왕>으로의 애매한 회귀이며, 신연식의 맥락에선 야심차게 이야기하던 ‘예술가 시리즈’의 소진이다. 다만 이 영화가 멈춰버린 지점,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이상한 지점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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