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킬러> 데이빗 핀처 2023
알렉시스 놀렌트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 삼은 영화로, 이름 없는(혹은 아주 많은) 어느 킬러(마이클 패스벤더)의 이야기를 다룬다. 파리에서 암살 임무를 맡은 킬러가, 결과적으로 암살에 실패한 뒤 역으로 타겟이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몰아치는 오프닝 크레딧, 킬러의 활동을 잘게 나누어 담아낸 화면이 지나간 뒤 처음 등장한 장소는 망한 WeWork다. 킬러의 내레이션 중엔 과거에는 에어비앤비를 애용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혹자는 핀처 스타일의 <드라이브>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내가 <더 킬러>를 보며 떠올린 것은 <서치 2>다. 스크린라이프(screen life) 형식으로 진행되는 <서치 2>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던 주인공은 심부름 플랫폼을 통해 먼 타국에 있는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이 행위의 유일한 제약은 주인공의 지갑 사정뿐이다. <더 킬러>의 킬러는 부자다. 그에게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의 제약은 없다. 킬러이기에 다양한 가짜 신분을 지녔다는 지점 또한 그에게 자유를 준다. 그가 렌터카를 빌리거나 비행기를 탈 때마다 변화하는 이름은 그에게 막대한 자유를 부여한다.
그는 활동의 모든 면에서 플랫폼을 이용한다. 에어비앤비, 항공사, 렌터카, 창고대여, 구독형 헬스장, 아마존, 우버이츠. 생각해 보면 무수한 창작물 속 히트맨들은 노동자로 변장해 왔다. 청소부, 간호사, 공사장 인부, 공연장 스태프. <더 킬러>는 플랫폼 노동의 흐름 속에 킬러의 암살 노동(?)을 기입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다른 플랫폼에 자신의 생활을 위탁한다. 배달노동자는 노동을 위해 공유 자전거를 대여하고, 시간이 날 때는 에어비앤비를 빌려 여행을 가며, 생필품은 또 다른 배달플랫폼을 이용한다. 우리의 킬러는? 킬러가 고용되는 체계 또한 일종의 플랫폼이다. 심지어 클라이언트는 가상화폐로 돈을 버는 투자자다. 파리에서 도미니카로, 다시 뉴올리언스, 플로리다, 뉴욕, 시카고로, 킬러는 전 지구적인 플랫폼의 그물망을 타고 다니는 거미임과 동시에, 그 또한 그물망의 한 코를 담당한다.
그러한 지점에서 <더 킬러>는 한 번의 실수로 ‘쉬운 해고’를 당한 플랫폼 노동자의 투쟁기나 다름없다. 물론 그의 사정은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와 다르다. 여러 이름을 오가며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고(마지막까지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암살로 쌓은 부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플랫폼을 자유로이 활용한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비록 온전히 그의 방식을 통한 것이지만, 무수한 플랫폼을 오감으로써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흥미롭다. 심지어 핀처는 WeWork의 로고를 프레임 가득히 보여주거나, 킬러가 아마존을 이용하는 장면에선 스마트폰 화면을 CGI로 영화에 삽입하기도 한다. ‘플랫폼’은 이 영화에서 걸러낼 수 없는 무언가다. 핀처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 출발점을 그려낸 세계가 <더 킬러>의 세계에 당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