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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07. 2023

붙지 않는 두 아이디어

<프레디의 피자가게> 엠마 타미 2023

 올해도 여러 편의 게임 원작 영화, 드라마, 혹은 그것을 소재로 한 영화가 공개됐다. HBO의 <라스트 오브 어스>나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같은 흥행작도 있지만, <던전 앤 드래곤>처럼 평가는 괜찮았으나 실패한 작품도, <그란 투리스모>처럼 양측에서 모두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게임 원작 영화는 실패의 대명사였다. 원작 게임의 팬과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수요로 인해 흥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던칸 존스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떠올려보자), 대부분은 다분히 컬트적인 인기(폴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라던가 의도치 않게 밈이 된 <슈퍼 소닉>의 경우)를 끌거나 IP를 내세우고 가족영화로 포지셔닝하며(<명탐정 피카츄>) 성공한 경우였으며, <몬스터 헌터>, <둠: 어나이얼레이션>, <언차티드>, <진삼국무쌍>, <모탈 컴뱃>, <화이트데이: 부서진 결계> 등 많은 영화가 실패했다. 다만 게임 원작 영화가 흥행하는 (적어도 제작비는 회수하는)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영화/드라마가 제작에 들어가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언차티드>를 시작으로 자체 스튜디오를 차렸으며, 닌텐도 또한 올해 처음으로 영화제작에 공식 참여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개봉한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우선은 북미에서의 흥행으로 제작비는 회수한 듯 싶지만, 결과적으로 “돈은 벌었지만 실패한” 게임 원작 영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원작 게임을 먼저 떠올려보자. [Five Nights at Freddy's]라는 제목의 이 게임은 스콧 코슨이 단독개발한 게임으로, 2014년 처음 발매되어 외전을 포함 총 15편의 시리즈가 발매되어 있다. 인디 게임 업계에서 1인 제작 호러 게임으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으며, 소설과 팬게임을 포함한 무수한 2차창작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테면 최근 1~2년 사이 게임 스트리머들의 단골 소재가 된 [Poppy Playtime] 시리즈의 개발자들은 이 게임의 2차창작물을 제작하던 이들이다.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트로닉스 인형이라는 컨셉과 빠르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외형,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는 폐업한 피자가게라는 설정, 호러 게임 특유의 떡밥 뿌리기 등은 충분한 팬덤을 쌓기 충분했다. 그러한 요소들은 이후의 인디 호러 게임들이 지닌 게임 내적인 문법을 강화했고, ‘마케팅’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성공사례로 남았다. 게임의 내용은 간단하다. ‘마이크 슈미트’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피자가게에서 밤을 보내야 하고,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트로닉스들을 피하거나 대적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경비실의 모니터를 통해 CCTV를 확인하고, 애니메트로닉스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그들이 경비실로 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물론 호러 게임답게 무수한 점프스케어가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얼핏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만 같다. 어린 여동생 애비(파이퍼 루비오)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마이크(조시 허치슨)는 어릴 적의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자신의 잘못으로 남동생을 잃었다 생각하는 그는 밤마다 꿈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탐색하려 한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는 계속 직장을 잃고, 애비의 양육권을 노리는 이모를 피하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그는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 야간경비로 근무하게 되고, 가게의 수상한 과거를 알고 있는 듯한 지역 경찰 바네사(엘리자베스 라일)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마이크의 트라우마를 깊게 조명하며 원작과 궤를 달리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트로닉스들과 그들이 침입자를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것 등은 원작의 팬이건 원작을 가볍게만 알고 있는 관객이건 기대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마이크의 꿈과 영화 중반 즈음 밝혀지는 트라우마의 원인 등은 이야기의 방향을 원작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어간다. 사실 원작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려본다면, 가게의 주인을 제외하고서는 모조리 다른 인물 혹은 이름만 같은 인물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트라우마에 관련된 장면들은 당혹스러울 뿐 ‘프레디의 피자가게’ 및 애니메트로닉스들과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 마이크의 꿈 장면들과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마이크의 모습은 하나의 심리 스릴러를 구성하지만, 반대로 피자가게와 애니메트로닉스들이 자아내는 공포는 게임의 패턴을 고스란히 끌어온다. 무엇보다 게임의 심령적인 요소들, 더 나아가 코스믹호러에 가까운 요소들은 이번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트로닉스’라는 요소는 그 자체로 호러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마이크의 입장에서 이해의 대상이며, (이 부분은 원작과 같지만) 또 다른 희생자다. 더군다나 블룸하우스의 영화치고는 적은 횟수의 점프스케어를 선보이며 <메간>, <인시디어스: 빨간 문>, <할로윈> 리부트 삼부작 등의 최근작들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방법을 취한다.     

 트라우마에 집중한 것은 감독이자 각본가인 엠마 타미의 영향이 클 것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그의 데뷔작 <더 윈드: 악마의 속삭임>은 빅터 쇠스트롬의 고전 걸작 <바람>의 영향을 짙게 받은 심리 스릴러이자 호러 서부극이었다. 남성에 의해 집에 묶인 여성과 고립된 여성의 심리를 담아낸 이 영화는 다소 성기지만 종종 흥미로운 순간을 보여주는, 나름 인상적인 데뷔작이었다. 블룸하우스의 최근 작품 대부분이 신인 감독보다는 기존에 협업해 온 이들과 재차 손잡은 작품들이었기에, <프레디의 피자가게>라는 나름의 기대작에 신인 감독을 기용한 것은 독특한 선택에 가깝다. 물론 원작의 영화화가 발표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며 제이슨 블룸의 말대로 15명 이상의 각본가와 연출자가 이 영화를 거쳤기 때문에, 완성된 각본이 온전히 엠마 타미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원작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 연출자/각본가의 전작과 조금 더 연결되는 테마의 이야기라는 지점에서, 원작자인 스콧 코슨의 각본 참여에도 불구하고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그 때문일까, 원작 게임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이디어를 억지로 붙인 것만 같다. 줄어든 점프스케어는 영화의 이야기가 지닌 ‘무섭지 않음’과 함께 역효과를 냈고,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무섭지 않은 호러 영화가 되었다. 일정 부분 실제 애니메트로닉스를 사용한 비주얼과 게임의 공간을 비교적 충실히 옮겨온 세트장의 모습, 곳곳에 숨은 이스터에그만이 나름의 즐거움을 제공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어린 게임의 주요 수용자들을 위해 삽입된 것 같은 개그나 순화된 잔인함은 원작의 특징을 살려내지 못한다. 트라우마와 그것의 극복에 관한 심리 스릴러 아이디어를 어디선가 구매해 [Five Nights at Freddy's]라는 게임에 어떻게든 붙여본 결과를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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