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블스> 니아 다코스타 2023
*스포일러 포함
어느덧 페이즈5로 접어든 MCU는 반복되는 실패를 겪고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가장 크게 실패한 MCU 영화 중 한 편이 되었으며, <시크릿 인베이전>과 <로키 시즌2>는 혹평 속에서 방영되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정도만이 유의미한 흥행을 거두었다. 이는 ‘인피티티 사가’ 이후의 MCU에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기도 하다. 페이즈4에서만 7편의 영화와 7편의 드라마를 쏟아내며 옐레나, 케이트 비숍, 샹치, 이터널스, 아이언하트, 쉬헐크, 문나이트 등의 무수한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인 것은 물론, 쏟아내는 작품의 숫자만으로도 라이트한 관객들을 지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인피니티 사가’의 주요 멤버들에게 온전한 마무리를 전해주기 이전에 그들과 연관된 새로운 캐릭터들을 선보이고 새로운 떡밥들을 뿌리며, 무엇보다 멀티버스를 세계관에 도입하며 그 복잡함을 배가시키고 있다. 기존의 MCU가 마치 주말드라마처럼 ‘틀어두고 봐도 되는 것’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MCU는 무수한 이벤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코믹스의 형태에 보다 가까워지고 있다. 더 나아가 MCU는 소니의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스파이더-버스라던가 <데드풀>을 비롯한 기존 엑스맨 유니버스의 캐릭터들마저 세계관 안에 포괄시키려 함으로써 ‘뉴비’나 ‘라이트 팬’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광대한 이야기의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더 마블스>는 <완다비전>과 직접 연계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이상으로 드라마와의 연계를 꾀한다. 이를테면 <완다비전> 속 에피소드를 통해 능력을 얻은 모니카(티오나 패리스)라던가, <미즈 마블>로 데뷔한 카밀라/미즈 마블(이만 벨라니)은 큰 설명 없이 이번 영화에 등장한다. 시간대상 <시크릿 인베이전> 직후의 이야기이기에,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닉 퓨리(사무엘 L. 잭슨)가 새로운 단체인 세이버(S.A.B.E.R.)의 수장으로 활동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더 마블스>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출발한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 모두를 충실히 따라온 MCU의 ‘진성’ 관객에게는 따라가기 어려운 요소들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카말라의 자기소개는 있을지언정 그가 어떻게 미즈마블이 되었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모니카가 능력을 얻은 과정은 설명되며 <캡틴 마블>과 <더 마블스> 사이 30여 년의 시간을 짧은 몽타주로 압축하여 보여주지만, 모니카와 캐롤/캡틴 마블(브리 라슨)의 화해는 카말라가 주도한 포옹 한 번으로 마무리된다. MCU는 과거보다 더 많은 분량의 갈등과 화해, 반목과 연대, 상실과 우정을 보여주지만, 그 모든 것은 더욱 압축된 방식으로 관객 앞에 던져진다.
역대 MCU 영화 중 가장 짧은 러닝타임(105분)인 <더 마블스>는 그만큼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캡틴 마블> 이후, 캐롤은 크리족의 행성 핼라로 가 ‘슈프림 인텔리전스’를 파괴한다. 그로 인해 내전이 발생하고, 핼라는 대기와 물, 태양을 잃었으며, 살아남은 군인 다르-벤(자웨 애쉬튼)이 집행자가 되어 남은 이들을 이끄는 상황이다. 그는 카말라의 것과 같은 ‘퀀텀 밴드’를 이용해 ‘점프 포인트’을 강제로 열어 다른 행성의 자원을 강탈하는데, 이를 더욱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카말라의 것까지 빼앗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캐롤, 모니카, 카말라의 능력이 얽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이 팀업하게 된다. 캐롤에 대한 다르-벤의 복수심, 세 히어로의 우연한 팀업, 캐롤과 모니카의 과거사 등이 영화 내내 숨 가쁘게 펼쳐진다. 더 나아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언급되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벌어질 뻔한 ‘인커전’도 재차 묘사된다. 뿐만 아니라 <미즈 마블> 마지막 화에 짧게 암시된 카말라의 정체, 그와 ‘미즈 마블’이라는 존재가 모든 멀티버스에 걸쳐 뮤턴트의 일원이라는 것이 이번 영화에서 확정되고, 카말라는 자신과 동년배인 히어로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 모든 것, <캡틴 마블>에서 <시크릿 인베이전>에 이르는 작품들에 흩뿌려진 떡밥들을 회수하고, 한편으로는 MCU의 미래를 향해 떡밥을 다시 흩뿌리는 작업이 바쁘게 벌어진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영화를 본다기보단 설정과 작중행적 등이 서술된 위키 문서를 보는 것만 같다. 아즈마 히로키가 일본 오타쿠 문화 속에서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라는 패턴을 추출해냈다면, MCU는 그것에 화답하듯 다분히 ‘위키(wiki)적’ 서사 혹은 영상물을 선보인다. 물론 MCU가 작품 속에서 떡밥을 뿌리는 것이 하루이틀의 일도 아니고, 할리우드의 규격화된 플롯 구조는 그보다도 더 긴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더 마블스>에 이르러 MCU의 영화는 스스로가 교두보임을 은폐하길 포기한다. <캡틴 마블>이 다분히 퀴어-페미니즘적인 메타포를 통해 “증명할 필요 없음(No Need to Prove)”의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노 웨이 홈>을 거친 후 공개된 <더 마블스>는 어떠한 주제도 내세우지 못한다. 이번 영화의 감독 니아 다코스타의 전작 <캔디맨>은 “Black Lives Matter”의 시대에 재차 소환된 도시괴담의 망령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었다. <블랙 위도우>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와 같은 페이즈4의 몇몇 작품들 또한 페미니즘, 아메리칸 아시안의 삶, 탈식민주의와 정치 등의 테마들을 나름대로 선보여왔다. <더 마블스>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 세 주인공이 처음으로 위치가 바뀌며 선보인 액션 시퀀스 이후로, 영화는 급격하게 활력을 잃는다. MCU, 혹은 할리우드의 거의 모든 블록버스터 영화가 내세우는 가족과 우정에의 강조만이 영화 내내 무의미하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와칸다 포에버>를 이야기한 김에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본다. <와칸다 포에버>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프로 퓨처리즘에 기반한 세계관을 펼쳐낸다. 세계 최빈국인 척 스스로를 은폐하던 와칸다는 세계에 자신을 공개했지만, 국왕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함께 혼란에 빠진다. 강대국들은 비브라늄이라는 자원을 강탈하려 한다. 한편으로 그들처럼 숨어 살아가던 수중 종족 탈로칸이 등장하고, 와칸다와 탈로칸은 둘 사이를 오가며 자원을 얻기 위한 강대국들의 간계에 넘어가 대립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CIA 요원 에버렛 로스나 UN 등으로 대표되는 제1세계의 모습은 후경으로 물러가고, 퓨처리즘 아래에 침잠해 있던 원시주의가 영화의 표면 위로 부상한다. 와칸다와 탈로칸의 싸움은 현대적 국가의 전쟁이라기보단 아프리카 문명과 잉카 문명의 전쟁에 가깝다. 이 전쟁은 두 문명 사이의 어떤 이유 있는 대립이 아니지만, 영화는 그 배후에서 전쟁으로 그들을 유인한 이들을 잽싸게 영화 바깥으로 은폐한다. 흑인음악과 라틴음악 사이를 오가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마치 지금의 빌보드 차트 위에서 라틴팝과 힙합의 순위 다툼을 복제한 것 마냥 영화 내내 울려 퍼진다.
<캡틴 마블>은 두 편의 <블랙 팬서>가 그랬던 것처럼 다분히 정치적인 서사였다. 퀴어-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그것은 소수자의 커밍아웃 서사임과 동시에 가스라이팅을 극복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스크럴이라는 난민 집단에 관한 이야기였다. MCU는 이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아스가르드를 모종의 ‘상상된 공동체’로 묘사해 낸 바 있다. 아스가르드는 파괴되었으나, 토르는 아스가르드인들이라는 집단이 곧 아스가르드임을 떠올린다. 물론 이 과정은 앤더슨이 이야기한 ‘상상된 공동체’ 개념을 오용한 사례에 가깝겠지만, 어쨌거나 <라그나로크>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한편으로 ‘상상된 공동체’의 오용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난민 집단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동한다. 특히 ‘외계 종족’이 주된 구성체로 등장하는 MCU의 세계에서 그러한 메타포는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라그나로크>는 난민에 관한 사유를 이어가기도 전에, 아스가르드 난민의 우주선 앞에 나타난 타노스의 전함 앞에서 무너진다.
<더 마블스>가 캐롤의 폭력적인 선택 앞에서 전개한 이야기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바로 앞 시간대의 이야기였던 <시크릿 인베이전>은 닉 퓨리의 스크럴 난민 정책의 실패와 그 결과로 배태된 극단주의를 다뤘다. <더 마블스>는 새로운 행성에 정착한 스크럴 난민 거주지를 단지 다르-벤을 잡기 위해 희생될 수 있는 “작은 것”으로 다루는 캐롤의 모습이 그려진다. 더 나아가, 외교 전략으로 택한 정략결혼 상대 얀 왕자(박서준)가 지도자인 행성마저 순간의 판단으로 버려진다. <더 마블스>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소 허탈한 해결책, 스러져가는 핼라의 태양을 캡틴 마블의 에너지로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시한다. 이 영화의 ‘위키적’인 방법론은 그 사실을 새로운 정치적 해법이나 기술의 발견처럼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그럴 수 있는 ‘설정’이 있기에, 플롯상의 필요한 순간에 짧은 대사로 제시할 뿐이다. 캐롤이 30여 년 동안 모니카에게 돌아오지 못한 이유로 그의 정치적/외교적 실패를 제시하지만, 영화는 그 또한 세밀한 묘사 대신 짧막한 플래시백으로 대체한다. 캡틴 마블의 ‘파워’는 그가 피억압자였던 과거에는 유효한 저항의 수단이었으나, 그가 한 명의 지도자가 된 <더 마블스>의 시점에선 가능한 정치적 움직임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다루길 포기한 채 ‘설정집’으로서 기능하는 데에만 충실하다. 이 영화가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아이언맨>에서 <캡틴 마블>까지 이어진, 어떤 식으로든 삽입된 메타포를 통해 발언하는 것 대신, 캐릭터들의 능력치를 뽑아 티어를 나누는 팬보이들의 행위에 가깝다. “너의 스탯이 이런데 이 행동을 할래 말래?”를 묻는 것만 같다.
그러한 지점들에서 <더 마블스>는 오랜 기간 누적된 MCU의 실패들을 재차 반복하며, 영화/드라마로 구성된 세계관을 코믹스에 가까운 방식으로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보여준 기가 막힌 매체적, 서사적 접합이라던가, 혹은 MCU에 앞서 코믹스적 방식으로 세계관을 유지해보려는 시도를 선보였으며 가능성과 한계 모두를 가늠케 한 뒤 산화하는 중인 CW버스를 좋은 선례로 삼는 것은 MCU에게 불가능한 일일까? 과포화 상태에 돌입한 MCU는 (유명한 스파이더맨 밈처럼) 서로를 상호 언급해주며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떡밥들, IMDB의 ‘트리비아’ 항목이나 나무위키의 ‘여담’ 항목을 늘려주는 방식으로만 생존할 수밖에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