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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8. 2017

존 허트의 영화 Choice 5

 영국의 대배우 존 허트(John Hurt)가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62년 첫 영화 출연작인 <더 와일드 앤 더 윌링>과 1966년 첫 주연작 <사계절의 사나이> 이후 2017년 <재키>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이르는 시간 동안 영화, TV드라마, 단편 등 570편의 필모그래피(IMDb 검색결과 기준)를 남겼다. 대중들에게는 <에일리언> 속 체스트 버스터의 첫 희생자로 얼굴을 알렸고, 이후 <엘리펀트 맨>, <1984> 등에 출연했다. 2000년대 이후 <헬보이>, <브이 포 벤데타> 등에서의 악역 연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90년대 생인 내 또래 사람들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지팡이 장인 올리벤더와 <설국열차> 속 열차의 성자 길리엄으로 기억하는 배우이다. <닥터 후>의 전쟁의 닥터로도 유명하고, 2015년 기사작위를 수여받은 영국의 국민배우 존 허트의 영화 5편을 골라보았다. 90년대 생인 나에게 그의 과거작은 익숙하지 않아 최근작 위주의 리스트이다.

Choice 1. <에일리언> 1979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시고니 위버, 톰 스커릿, 존 허트


 존 허트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린 영화이다. (<프로메테우스>를 포함해) 곧 6번째 영화가 나올 <에일리언>시리즈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자신의 몸 속에 외계생명체가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자신을 포함해 누구의 뱃속에서 에일리언지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없음에서 오는 긴장감, 임신에 대한 비유로도 읽을 수 있는 폭넓은 비유까지 시리즈의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꿰뚫고 있는 장면이다. 존 허트 본인이 TV프로그램 등에서 직접 패러디할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장면이 아닐까? 

Choice 2. <해리포터> 시리즈 2001~2011

감독: 크리스 콜롬버스, 데이빗 예이츠

출연: 다니엘 레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존 허트


 사실 존 허트의 출연분량은 극히 적다. 1편 <마법사의 돌>과 마지막편 <죽음의 성물>에만 잠시 등장하는 그의 출연분량은 다 합쳐도 15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역시 필자가 '해리포터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때 영화로 해리포터를 접한 세대는 해리포터에 등장한 배우들을 현실세계의 배우라기 보다 극 중 배역으로 먼저 기억한다. 앨런 릭맨, 마이클 갬본, 매기 스미스, 게리 올드만 같은 배우들은 본명보다 스네이프, 덤블도어, 맥고나걸, 시리우스 블랙 같은 <해리포터> 속 캐릭터로 먼저 기억된다. 같은 맥락에서 존 허트가 역시 올리밴더로 먼저 기억된다. <닥터 후>의 팬들이 그를 전쟁의 닥터로 기억하듯, 해리포터 세대인 나에게 존 허트는 해리를 마법의 세계로 이끈 인물 중 하나인 올리밴더로 영원히 기억된다.

Choice 3.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2011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출연: 게리 올드만, 베네딕트 컴버배치, 존 허트, 톰 하디,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이정도면 영국 남자배우의 세대별 정상회담이라고 불러야 될 지경이다. 캐스팅 라인업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에서 존 허트는 스파이 기관 MI6의 수장 컨트롤을 연기한다. 쟁쟁한 캐스팅 속에서 가장 윗세대인 그에게 당연한 컨트롤이라는 배역이 돌아간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중후하면서 날카로운 인상의 컨트롤을 연기하는 존 허트는 <해리포터>의 올리밴더나 <설국열차>의 길리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의 혼돈 속에서, 외모에서부터 느껴지는 날카로움을 잃어가고 시대 속에 파묻히는 그의 연기는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절대 힘을 잃지 않는다.

Choice 4. <설국열차> 2013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한국인들이 존 허트하면 떠올리는 첫 영화가 바로 <설국열차가 아닐까? <설국열차>도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못지 않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송강호와 크리스 에반스부터 틸다 스윈튼과 제이미 벨, 고아성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캐스팅 목록에 존 허트 역시 속해있다. 현실세계의 양극화와 계급문제를 열차 속으로 가져온 영화에서 극빈층이 살아가는 꼬리칸의 성자로 등장하는 존 허트는 단지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을 그리고 있는 그의 연기는 봉준호 감독이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중요한 한 조각이다. 영화 촬영 전 한국 스태프들이 고사를 지내는 현장에서 불 붙어 하늘로 날아가는 종이를 보며, 고사를 종교적 체험으로 생각해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존 허트의 일화가 기억난다.

Choice 5.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

감독: 짐 자무쉬

출연: 틸다 스윈튼, 톰 히들스턴, 존 허트, 미아 바시코브시카, 안톤 옐친


 짐 자무쉬의 스타일리쉬한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존 허트는 수천년을 살아온 뱀파이어 말로우를 연기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온갖 문학과 음악, 철학에 능통해진 뱀파이어의 모습은 마치 현자를 바라보는 듯하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극작가였던 말로우가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는 가설을 사실인듯 끌어오는 영화에서 존 허트의 연기는 이야기에 힘들 실어준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아담(톰 히들스턴)과 이브(틸다 스윈튼)을 이어주는 역할인 말로우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R.I.P. John Hurt (1940.01.22 ~ 2017.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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