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나탈리 포트먼의 <재키>
존 F.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부터 케네디의 장례식까지의 시간을 그린다. 미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순간, 냉전시대의 혼란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하지만,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역사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영화는 내내 재키(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이 잡히지 않는 시퀀스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재키 개인에게 집중한다. 미국의 영부인이자, 케네디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두 아이를 미리 하늘로 보낸 사람이자, 강인한 여성이며 재클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영화 안에 그려진다. 재키와 케네디의 동생 바비(피터 사스가드), 재키를 보좌하는 낸시(그레타 거윅), 케네디의 장례를 진행할 신부(존 허트), 대통령직을 이어받을 존슨(존 캐럴 린치) 등과의 대화가 장례식 이후 재키를 찾아온 기자(빌리 크루덥)와의 대화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영화는 폭풍 같은 사건과는 다르게 덤덤하게 진행된다. 나탈리 포트먼이 연기하는 재키의 모습은 감정적이지만, 영화 자체가 감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지 않는다. 그를 취재하러 온 기자와 같은 태도로 재키라는 인물을 그려낸다. TV와 사진이 진실을 기록하고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재키의 말처럼, 당시의 TV를 연상시키는 필름 룩의 화면(몇몇 장면은 16mm 필름으로 촬영됨)이 사용된다. 이런 화면은 백악관 투어를 촬영하며 미국의 위대함을 눈으로 보여주려 했던 재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대통령의 암살과 냉전, 정치적인 이슈들과 가족의 이야기까지 겹친 혼란 속에서, 중압감을 버텨내는 재키의 모습을 덤덤하게 담아낸다. ‘America Greatness’와 본인이 무너지지 않았음을 카메라에 담아내려는 재키와, 감독의 페르소나로써 영화를 진행시켜가는 기자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재키가 신부 앞에서 털어놓는 감정은 그녀 위에 올려진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나탈리 포트먼이 담아내는 감정의 폭을 관객에게 서서히 전달하던 영화는, 신부와의 대화에서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려 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영화 내내 사건의 앞뒤만을 드러내던 1963년의 댈러스를 마치 기록영화처럼 담아낸다. 모두가 아는 사건을, 올리버 스톤의 <JFK> 등을 비롯한 영화와 다른 매체들에서 여러 차례 그려진 사건을 다시 한번 재연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부와의 대화에서 드러낸 재키의 감정은 앞서 등장했던 사건 직후 재키의 모습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굳이 스크린에 등장한 케네디의 박살난 머리는 이렇다 할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못한다. 100분 동안 보인 재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해당 사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강인한 재키의 모습을 해당 사건이라는 프레임 속으로 한정 짓는 역효과만을 낳는다.
때문에 <재키>라는 영화는 재클린 케네디라는 인물을 다양한 층위를 담고 있는 개인으로 그려냈지만, 결과적으로 존 F. 케네디의 암살이라는 사건 안에서만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낸다. 물론 해당 사건이 제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지만, 영화 속 재키가 드러내던 다양한 결이 축소된 것으로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나탈리 포트만, 빌리 크루덥, 피터 사스가드, 그레타 거윅, 존 허트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100분이 꽉 채워진 채 흘러가지만, 결말의 아쉬움은 지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