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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31. 2017

거장들도 관객이었음을

33인의 감독이 참여한 칸 영화제 60주년 기념작 <그들 각자의 영화관>

 ‘나의 영화관, 혹은 불이 꺼지고 영화과 시작될 때의 전율’ 칸영화제의 상징과도 같은 계단이 올라가면서 시작되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33인의 감독이 위의 주제로 33편의 단편을 만든 작품이다.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기에 최적의 기획 아닐까? 극장의 문이 닫히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의 전율은 지금 갓 극장에서 나온 나의 모습이나 역사에 남을 영화를 만들어낸 거장들의 모습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33편의 영화가 증명한다. 그들 역시 감독 이전에 관객이었으니까. 

 라스폰 트리에처럼 옆 자리 관객의 민폐 짓에 화를 내고 싶어 지기도 하고, 천 카이커의 극장처럼 작은 기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이며, 난니 모레티의 일기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읽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허우 샤오시엔의 시선처럼 사회를 담고 있기도 하고, 장이머우의 야외극장처럼 공동체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왕가위와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처럼 섹시하며 사랑이 담긴 공간일 수도 있고, 유세프 샤힌과 구스 반 산트처럼 꿈이 담긴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챠이밍랑은 영화관 안에 가족사를 담았으며, 로만 폴란스키처럼 황당한 경험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크로넨버그와 아모스 기타이에게 극장은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 된다. DVD에 담기지 못한 데이비드 린치와 코엔 형제의 영화관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어떤 영화를 상영하느냐에 따라 영화관은 사랑이 싹트는 공간이 될 수도, 관객의 꿈을 키워가는 공간일 수도, 정치적 의견 표출의 자리일 수도, 어떤 공동체를 응집시키는 공간일 수도, 어떤 사회를 그려내는 공간일 수도 있다. 영화관의 스크린이 무엇을 담아내는지, 극장의 관객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어가느냐에 따라 다른 공간이 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꿈을 꾸지 않듯이, 영화라는 꿈은 모두 같지 않고, 한 영화를 봐도 각 관객이 생각하는 해몽은 조금씩 다르다.

 난니 모레티의 <영화광의 일기>는 영화관에 대한 자신의 추억을 하나씩 읊어준다. 어린 시절 영화에 열광하고, 영화감독이 된 자신의 모습과, 자녀와 함께 영화관을 찾은 추억을 영화관에 앉아 이야기한다. 영화관은 그에게 추억이다. 나에게 영화관은 어떤 공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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