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 애덤 윙가드 2024
*스포일러 포함
전작 <고질라 vs. 콩>에 실망한 팬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와 마이클 도허티의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영문표기 그대로 ‘God’zila, 자연을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고지라를 그려내고자 했다. 이 시도는 퍽 성공적이었다. 혼다 이시로의 1954년작 <고지라>가 보여주었던, 움직임만으로 도시를 삭제해버리는 거대괴수의 육중함이 살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수호신으로서의 고지라라는, 쇼와 시리즈가 진행되며 만들어진 전통을 이어감으로써 ‘몬스터버스’만의 설정을 잡아냈다. 무토라는 오리지널 괴수나 킹기도라, 라돈, 모스라 등 도호 시리즈 전통의 괴수들을 할리우드식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며 시리즈의 확장을 꾀했고, <콩: 스컬 아일랜드>를 통해 소개한 콩과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세계관의 투톱 주인공으로 삼고자 했다. <고질라 vs. 콩>은 앞선 세 작품이 그려낸 고지라와 콩의 모습을 다소 어색하게 뒤틀어 놓는다. 쇼와 시리즈의 <킹콩 대 고지라>, <고지라 대 메카고지라>, <메카고지라의 역습> 등을 소프트하게 리메이크한다는 인상의 본작은 앞선 세 작품을 통해 구성된 두 타이탄의 이미지를 육중함에서 가벼움으로 옮겨갔다. 몬스터버스 특유의 규모를 통해 고지라와 킹콩 팬덤 모두가 바라던 순간들을 종종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몬스터버스가 선보여온 것과는 다른 촬영방식, 할로우 어스의 등장과 같은 요소들은 하드코어 팬들의 원성을 샀다. <블레어 위치>로 데뷔해 여러 망작 호러영화를 연출해온 애덤 윙가드가 연출을 맡는다고 했을 때의 불안감이랄까. 데뷔작부터 괴수물이었던 가렛 에드워즈와 크리처 호러를 연출했었던 마이클 도허티에 비해, 딱히 괴수물에 관한 애정을 드러낸 적 없었던 애덤 윙가드가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팬덤의 걱정거리였다.
<고질라 vs. 콩>은 그것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특유의 신화적 분위기, 공포와 숭고를 오가는 거대함의 감각은 금세 사라졌다. 그렇다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역작 <퍼시픽 림>처럼 감각적인 면모를 뽐내는 것도, 오랜 시간 괴수물과 특촬물을 만들어온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지라>처럼 노스텔직한 디자인과 액션을 선보인 것도 아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영화 <고질라 X 콩>을 보며 전작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점이다. 며칠 전 영미권 필름 트위터에서 “<고질라 X 콩>은 쇼와 시대 고지라에 보내는 진심어린 러브레터”라는 평을 보고 이 말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며 극장에 들어갔다. 애플TV+ 오리지널로 공개된 드라마 <모나크>에 크게 실망한 이후였기에 더욱.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질라 X 콩>은 쇼와 고지라의 향수로 가득한 영화다. 영화는 미니라와 인간 소년의 우정을 담아냈던 <고지라의 아들>, 미니라를 포함한 여러 괴수가 뒤엉켜 싸웠던 <괴수총진격>과 <고지라 • 미니라 • 가바라: 올괴수대진격> 등이 뒤섞인 듯한 인상을 준다. 스카 킹이라는 콩의 생존한 동족이 빌런으로, <콩: 스컬 아일랜드>에 잠시 등장했던 원주민 부족 이위 족이 이야기의 큰 축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고지라보다는 콩의 이야기에 치중한 영화이지만, 이번 영화 속 원주민 부족의 묘사는 <킹콩> 시리즈의 것보단 차라리 <모스라 대 고지라>와 <모스라> 속 소미인의 변주에 가깝다. 게다가 이들은 모스라를 모신다! 콩과 미니콩 사이의 이야기 또한 RKO의 괴작 <킹콩의 아들> 같은 영화보단 쇼와 고지라 속 미니라 묘사에 조금 더 가깝다.
다시 말해 <고질라 X 콩>이 목표로 삼는 대상은 혼다 이시로의 오리지널과 그것의 영향을 짙게 받은 2010년대의 다른 고지라 영화들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오리지널 이후로 점차 유치해졌으며 아동용 영화에 가까워진 쇼와 고지라를 목표로 삼는다. <고질라>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 비해 다소간 경박해진 고지라의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앞선 두 솔로 영화 속 고지라가 그야말로 ‘신’으로서의 초기 쇼와 시리즈의 고지라를 가져왔다면, 이번 영화에서의 고지라는 지구의 균형(정확히 말하자면 지상과 할로우 어스의 균형)을 위협하는 다른 타이탄들을 처벌하는 ‘괴물의 왕’에 가깝다. 이번 영화 속 액션들이 (전작에 이어) 쇼와 고지라 중후기의 움직임들을 할리우드식으로 번안한 것임을 떠올려 볼 때 이 심증은 확신이 된다.
<고질라 vs. 콩>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는 것은 이와 같은 의미다. 다소 진중했던 두 편의 고지라 영화와 한편으로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콩: 스컬 아일랜드>를 섞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나 할까. 물론 <고질라 X 콩>은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다.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는 할로우 어스 장면들은 지상에서의 장면들보다 지루하다. 거대괴수의 ‘사이즈’는 결국 관객에게 친숙한 풍경 속에 괴수가 놓이는 순간 인식된다. 할로우 어스라는 거대한 공간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콩이 늑대와 닮은 괴수들을 사냥하는 초반부 장면이라던가, 콩이 스카 킹의 본거지를 찾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종종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거대괴수물인지, 곧 개봉할 <혹성탈출>의 신작인지 알 수 없어진다. 로마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시골, 카이로 등을 돌아다니고 콜로세움에서 잠을 청하는 고지라의 모습은, 할로우 어스에서의 비주얼이 얼마나 초라한지 즉각 비교하게끔 한다. 완전히 타자화된 방식으로 등장하는 이위 족의 묘사 또한 문제적이라 지적할 수도 있겠다(물론 쇼와 시리즈의 소미인처럼 피부를 어둡게 칠한 배우들이 연기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를 통해 몬스터버스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하는지 명확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전의 고지라 시리즈를 컬트적으로 수용해온 팬덤의 입장에 가깝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는 몬스터버스의 이후를 기대하게끔 한다. 유치해졌지만, 그것은 시리즈의 퇴보가 아니라 다음 한 걸음을 위한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