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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7. 2024

오컬트의 정치적 쇄신을 꾀하기

<오멘: 저주의 시작> 아르카샤 스티븐슨 2024

*스포일러 포함    

 

 오컬트 영화의 계보에서 여성의 신체는 정치적 장소였다. 여성의 신체는 악마에 빙의되어 타락하는 곳이자, 악마의 자식이 잉태되는 곳이며, 비체적 신체로서의 여성괴물이 탄생하는 곳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컬트가 대중적 영화 장르로 주목받기 시작한 70년대 (<악마의 씨>는 하필 1968년 개봉했다) 호러영화들은 탈권위, 자유, 평등 등을 가치로 내세운 젊은 세대의 사회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슬래셔 영화 속 청년들은 도살당했고, 소비주의 망령으로써의 좀비들이 거리를 배회했으며, 오컬트 영화의 소녀들은 전통적 권위가 재신성화될 수 있는 토양으로 타자화되었다. 비평가들은 호러영화 속 피해자가 된 청년들을 바라보며 영화들에 담긴 무의식적 보수성을 읽어냈다. 1976년작 <오멘>의 공식 프리퀄인 <오멘: 저주의 시작>은 이와 같은 70~80년대 호러영화의 두 맥락에 대한 일종의 비평이다.     

 마거릿(닐 타이거 프리)은 로런스 추기경(빌 나이)의 추천으로 수녀 서원을 받기 위해 실바 원장수녀(소냐 브라가)가 운영하는 로마의 수녀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문제아 카를리타(니콜 소라스)에게 관심을 두게 된다. 어느 날 파문당한 신부 브레넌(랄프 이네슨)이 찾아오고, 그는 카를리타가 적그리스도를 잉태할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영화는 혼란스러워하는 마거릿을 따라 교회의 음모를 파헤친다. 1971년으로 설정된 영화의 배경 속 로마는 68혁명 이후의 움직임을 중요한 배경으로 설정한다. 로런스는 탈권위를 외치는 젊은 세대들로 인해 교회의 힘이 약해졌다 말한다. 브래넌은 그것을 이유로 교회가 적그리스도를 탄생시키고 대립항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계획을 실행 중이라 설명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택한 트랜스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학생 단편영화로 주목받았던 아르키샤 스티븐슨은 전통적이며 전형적인 장르적 틀을 벗어나는 일련의 TV시리즈에 연출자로 참여했었다(<리전>, <채널 제로>, <브라이어패치> 등). 그의 첫 장편영화로 낙점된 이번 영화는 그의 지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오멘>과 <엑소시스트>, <악의 씨앗>과 같은 오컬트 영화의 고전을 <블루 벨벳>이나 <트윈 픽스>와 같은 기묘한 사건의 소용돌이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지알로적인 순간들이 첨가된 것은 덤이다. 이 과정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선과 악, 교회와 악마라는 이분법은 흐트러진다. 마거릿이라는 여성은 ‘악한 교회’와 ‘선한 교회’ 양측 모두에서 악마를 잉태할 혹은 저지할 수 있는 존재로써 물신화된다. 게일 루빈이 이야기한 여성 거래는 탈권위와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발버둥치는 교회(들)의 역학 속에서 은밀하게 전개되며, 이 영화는 그 과정을 탐구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마거릿 또한 적그리스도를 잉태할 소녀로 태어났으며 로런스와 실바를 비롯한 이들의 음모 속 희생양이었다는 이 영화의 (다소 뻔한) 반전은 익숙한 오컬트의 공식과 그것에 내재된 보수성 내지는 여성혐오적 혐의를 뒤집는다. 과거의 호러영화가 프리퀄이나 리부트의 형식으로 속속들이 복귀해오던 맥락 속에서, 내재적 한계를 넘지 못하거나(<할로윈>) 패러디의 범위를 확장하거나(<스크림>) 많은 경우 과거를 반복할 뿐이었다(<텍사스 전기톱 학살 2022>, <헬레이저>). 물론 이들 영화 대부분이 슬래셔의 다소 명확한 규칙 속에서 작동했기에 한계에 봉착했다면, <오멘: 저주의 시작>은 오컬트라는 장르의 태생적인 모호성을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맥락을 장르적 맥락 속에서 쇄신하고자 한다. 올해 개봉한/예정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호러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시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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