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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4. 2024

카메라를 든 사람

<바람의 세월> 문종택, 김환태 2024

 카메라를 든 사람의 존재가 강렬하게 인식되는 영화들이 있다. 커스틴 존슨의 <카메라를 든 사람>과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서 카메라를 들어온 그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로 카메라를 돌리는 영화였다. 요나스 메카스의 무수한 영화들에서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가족과 친구를 촬영하며 그 필름을 편집하는 그의 손을 떠올린다. 아녜스 바르다의 논픽션 영화들에서 카메라는 바르다가 대상에게 다가갈 수 있는 확장된 시선이자 손길이다. 한편으로 김동원의 <2차 송환>은 십수 년에 걸친 촬영 동안 발생한 연출자의 변화를 언급하며 영상이 누구에 의해 촬영된 것인지 명시함으로써 독특한 자기기술지적 성격을 획득한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세월호 영화가 있었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제작한 프로젝트들이 있었고, 정치적으로 혹은 음모론을 동원하며 논쟁을 불러일으킨 영화들도 있었으며, 활동가의 시선으로 유가족과 시민들을 담아낸 영화가 있었고, 완전한 비-당사자로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실험을 시도한 영화 또한 있었다. 무수한 영화들 속에서 우리는 반복되어 등장하는 이미지와 소리를 들어왔다. MBC 뉴스의 “전원 구출” 오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는 유가족과 폭식하는 일베 회원들, 행진하는 이들을 가로막는 경찰과 그 위로 쏟아지는 물대포,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음성, 인양된 세월호, 여전히 진상규명을 하지 못했다는 울부짖음, 어느덧 익숙해진 유가족의 얼굴들…. <바람의 세월>은 2014년부터 유튜브 채널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 TV’를 운영하는 유가족 문종택이 지난 10년 동안 촬영한 50테라, 5,000여 개의 영상을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환태 감독이 공동연출로서 영화의 구성에 참여했다. 영화는 지난 10년을 연대기 순으로 되돌아보지만, 그 출발점은 박근혜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순간이다. 영화의 내레이션 또한 맡은 문종택은 그날이 유일하게 유가족들의 웃음을 본 날이었다고 회상한다.     

 105분 동안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순간들을 재차 보여준다. 하지만 활동가, 다큐멘터리스트, 언론 등 다른 이의 카메라를 거쳐 우리에게 도달했던 순간들은 <바람의 세월>에서 전혀 다른 감각으로 우리의 몸을 강타한다. 문종택의 카메라는 유가족 바깥에서 그들에게 손을 건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카메라는 자신 바로 옆의 유가족에게, 이 영상을 볼 수 있을 익명의 시민들에게 내미는 손이다. 그의 카메라는 유가족과 활동가를 채증하는 경찰의 카메라를 맞받아치는 방패다. 그의 카메라는 더는 손을 건넬 수 없는 희생자들에게 건네는 10년 동안의 인사다. 그의 카메라는 진상규명이라는 의제를 놓고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의 팔뚝질이다. 유가족이자 미디어 활동가인 문종택이 영화의 감독임을 알고 극장에 들어선 순간,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촬영된 화면뿐 아니라 그 카메라를 들고 있을 문종택을 포함하는 것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바람의 세월>에 담겨 있는 이미지 하나하나는 비수가 되어 우리의 지난 시간으로 날아온다. 배급사의 홍보물은 이 영화가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임을 명시하고 있다. <바람의 세월>은 아카이브 전체(물론 김환태 감독이나 미디어몽구 등의 대안언론이 촬영한 영상들도 영화에 들어가 있다)가 한 사람을 촬영자로 둠으로써, 그 아카이브가 기록한 지난 10년을 살아온 우리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게 함과 동시에 재구성한다.     

 물론 문종택이 처음부터 <바람의 세월> 혹은 그와 유사할 영화의 제작을 염두에 두고 촬영을 이어온 것은 아니다. 문종택은 인터뷰에서 연분홍치마의 세월호 10주기 영화제작 프로젝트 총괄 프로듀서인 김일란의 제의를 받고서야 자신의 영상을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스스로도 촬영은 싸움을 위한 것이었지,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힌다. 다만 그럼으로써 <바람의 세월>은 영화적인 것과는 다소간 거리가 있을 이미지들을, 다분히 기본적인 영화적 경험을 통해 지난 10년을 갈무리한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누구인가? 김응수의 <오, 사랑>과 <초현실>이 카메라를 든 사람과 그 앞의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세월호 참사 이후의 우리를 영화적 형식 속에서 가늠해 보았다면, <바람의 세월>은 직관적이고 강력한 방식으로 카메라를 든 사람, 카메라 앞의 사람, 그리고 촬영된 이미지를 보는 관객 사이의 관계를 관통한다. 바다 위의 배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투박한 편집의 이미지들마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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