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트맨> 데이빗 레이치 2024
동명의 TV드라마-<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리 메이저스가 주연을 맡은 <The Fall Guy>로 국내에는 <스턴트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됨-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스턴트맨이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였던 원작의 틀은 이 영화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턴트맨인 주인공이 모종의 음모에 휘말려 한바탕 소동을 겪는다”라는 로그라인을 가져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관점에서 <스턴트맨>은 굳이 이 TV시리즈를 원작으로 가져올 이유가 전혀 없다. 이 시리즈는 히트작도 아니었으며, 데이빗 레이치는 이미 원치 않는 소동에 휘말린 인물을 주인공 삼은 영화(<존 윅>, <아토믹 블론드>, <불릿 트레인> 등)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그는 전직 킬러, 스파이, 뮤턴트 슈퍼히어로, 근육질의 대머리 액션 스타, 현직 킬러 등을 주인공 삼아 액션영화의 하위장르들을 탐구했다.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의 단순한 결합처럼 보이는 <스턴트맨>은 그러한 맥락 위에서 바라볼 때 흥미로워진다.
데이빗 레이치와 <존 윅>을 함께 만들었던 채드 스타헬스키는 <존 윅 4>를 통해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액션영화의 역사 자체에 헌사를 보낸다. 이 헌사의 중요한 대상은 ‘스타’들이었다. 버스터 키튼에서 견자단과 스캇 앳킨슨에 이르는, 할리우드와 비-할리우드를 아우르는 액션영화 속 스타들과 그들의 스타일을 영화에 수놓는다. <존 윅> 프랜차이즈는 액션영화의 역사를 만들어냈던 이들의 몸짓을, 무술가와 격투가들의 피와 땀을 기억하고자 한다. <스턴트맨>은 그와 평행선을 그리는 방식으로 액션영화에 대한 다른 헌사를 바친다. ‘스타’ 대신 위험천만한 액션을 수행하는 스턴트맨이 영화에 전면에 나선다. 영화는 데이빗 레이치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분노의 질주> 시리즈, <아토믹 블론드> 등)의 장면을 몽타주 하며, 주인공 콜트(라이언 고슬링)의 내레이션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스턴트맨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의 말들은 90녀대부터 스턴트맨으로 활동한 레이치의 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액션스타로 알려진 톰 라이더(에런 테일러 존슨)의 스턴트 더블인 그는 위험한 촬영을 하던 중 추락사고를 겪는다. 콜트는 촬영현장에서 로맨스를 꽃피워가던 조디(에밀리 블런트)와도 헤어진 채 잠적을 택한다. 18개월 뒤, 콜트는 감독 데뷔작 <메가스톰>을 촬영 중인 조디가 자신을 찾는다는 전화를 받고 시드니로 향한다.
콜트의 시드니행을 둘러싼 음모라던가 그와 조디와의 로맨스 등 서사적인 측면에서 <스턴트맨>을 이야기하자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어떤 장면들, 이를테면 갑자기 등장한 마약상이 콜트에게 마약을 먹이는 장면과 같은 것은 맥락 없이 갑작스레 등장하지만 불필요하게 긴 러닝타임을 차지하기도 한다. 톰의 여자친구인 배우 이기(테레사 파머)나 비서 사만다(스테파니 수)의 첫 등장은 당황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단점들을 모른 체하고 살짝 뒤로 미뤄둔다면, <스턴트맨>의 구조는 이제 막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잡고 미국과 홍콩을 오가며 영화를 찍던 성룡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메달리온>이나 <턱시도> 같은, 2000년대에 명절특선과 OCN의 단골손님과도 같은 영화들 말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의 위기와 음모를 돌파하는 성룡의 모습은 끊임없는 고통, 차에 치이고, 건물에서 떨어지고, 악당에게 얻어맞는 것의 반복이었다.
<스턴트맨>의 콜트 또한 그와 같은 인물로 묘사된다. 물론 라이언 고슬링은 성룡이 아니고, 스턴트맨 출신 배우도 아니다. 어떤 스턴트는 그가 직접 수행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스턴트는 4명의 스턴트 더블이 맡았다. 이들은 <스턴트맨>의 프리미어 행사 등에서 직접 스턴트를 선보이는 등의 방식으로 홍보에 동참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극 중 <메가스톰> 촬영장에 처음 도착한 콜트가 수행한 자동차 전복 스턴트다. 여기서 자동차가 8바퀴 반을 돌았다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실제로 스턴트 더블인 로건 홀리데이가 수행한 스턴트는 같은 내용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 대사가 촬영 이후 추가된 것인지, 기록을 노리고 계획된 장면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스턴트맨>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내내 라이언 고슬링과 다른 배우들을 대신했을 스턴트맨들의 존재를 관객의 머릿속에 심어 둔다. 우리는 라이언 고슬링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의 배우가 만들어낸 캐릭터 ‘콜트’를 본다.
이 영화를 두고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스턴트맨>은 영화 촬영 현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잠깐잠깐 등장하는 극 중 극인, <스타워즈>와 <듄>과 <매드맥스>를 대충 짜깁기해놓은 (그래서 괜스레 <레벨 문>을 연상시키는) <메탈스톰>의 제작되는 것의 중요성 따위는 이 영화에서 서사적으로나 주제적으로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스턴트맨>은 CGI의 시대에 존재감을 잃어가는 스턴트맨들의 존재를 강조하고자 하는 쇼케이스에 가깝다. 어떤 측면에서는 데이빗 레이치의 프로덕션이자 스턴트 코디네이팅 회사 87north Production의 포트폴리오용 영화처럼 다가오기까지 한다. 다만 (성룡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엔드크레딧과 함께 등장하는 스턴트 비하인드 장면들을 지켜볼 때 느껴지는 향수와 개운함을 전달할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