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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너희들이 만드는 것이란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처> 트릴로지

*스포일러 있음


2015년 10월 21일 오후 4시 29분, 타임머신 드로리안을 탄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와 에메트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가 힐 밸리에 도착했다. 1985년에서 출발해 30년을 뛰어 넘어 그들이 도착한 시대는 지금 모든 지구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시간대이다.(아마 지금쯤이면 기절한 제니퍼(클로디아 웰즈)를 데리고 1985년으로 돌아갔겠지) 현실의 브라운 박사는 영화 속 1985년에서와 같은 나이가 되었고, 마티 맥플라이는 미리 엿본 자신의 나이가 되었다. 드로리안의 문을 열고 등장해 “드디어 미래에 도착했습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브라운 박사와 함께, 영화 [백 투 더 퓨쳐] 1편과 2편이 정확히 영화가 예견한 시간에 재개봉했다. 30년 만에 다시 스크린에 걸린 [백 투 더 퓨쳐]의 매력은 1985년도에 극장에서 본 사람들이 느꼈을 바로 그 매력 그대로였다.(물론 나는 개봉한지 20여년이 지나고 나서야 DVD로 처음 봤다) 아니, 오히려 추억이란 양념과 함께 숙성되어 매력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1955년과 1985년, 2015년을 넘나드는 마티와 브라운 박사의 여정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넘치는 상상력을 재확인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 보기엔 촌스러울 수도 있는 브라운 박사나 비프(토머스 F. 윌슨)의 과장된 연기도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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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재개봉 당일에 1, 2편을 연속관람하고 온 다음 날 집에서 3편까지 관람을 마쳤다. 3편을 극장에서 못 본 게 끝내 아쉽다. 트릴로지를 재관람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백 투 더 퓨쳐]에서의 사건들은 1985년의 현재에서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10월 26일 새벽에 과거로 출발했다 그 시간대에 돌아와서, 아침에 다시 2015년으로 떠났다가 뒤틀린 1985년으로 돌아오고, 그 날 밤에 다시 1955년으로 출발한다. 뒤틀린 미래를 바로잡고 돌아오려는 찰나, 번개로 인해 1895년으로 보내지고 서부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마친 뒤 복귀한 1985년의 시간은 10월 26일 아침이다. 마티는1955년에서 일주일, 2015년에서 하루, 1895년에서 5일, 총 13일을 보냈지만 현재에서는 만 하루가 되지 않는다. 이런 마법 같은 상황을 목격하는 것이 시간여행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복잡한 타임라인을 명쾌하게 전달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능력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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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보여주는 2015년과 현재를 비교해보는 것이 이번 재관람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한다. 우선, 시카고 컵스의 2015년 우승은 아쉽게도 실패했다.(하필이면 10월 21일에 그 꿈이 좌절되었다) 영화 속 날아다니던 자동차와 호버보드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시험용으로 개발이 되긴 했다지만,영화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패션 역시 영화에서처럼 화려하거나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오히려 1985년의 패션과 닮아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그리프의 패거리가 입고 있던 [매드맥스]에서나 나올 법한 의상과 파워슈트(?)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사이즈가 조절되고 자동 건조가 되는 재킷 역시 마찬가지. 대신 자동으로 신발끈을 묶어주는 나이키 맥은 10월 21일에 바로 그 날에 출시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홀로그램 전광판이나, 스필버그의 아들이 연출한 [죠스19] 역시 등장하지 않았다. 의외로(?) 복고카페는 현실에서 매우 잘나가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2편에서 2015년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100분의 상영시간 중 30분 정도가 2015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짧지만 강렬했던 영화 속 2015년은, [백 투 더 퓨쳐]가 지금까지 매력을 잃지 않게 해준 원동력이다. 동시에 상용화된 영화 속 기술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비록 시카고 컵스가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어도, 우리의 손목에 아이워치와 갤럭시 기어가 있고,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백 투 더 퓨쳐]덕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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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관람한 [백 투 더 퓨쳐]에서 묘사하는 과거와 미래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인종과 성차별에 대한 묘사였다. 서부시대인 1895년은 일단 제외하고, 1955년과 1985년, 2015년의 모습은 굉장히 차이가 많다. 우선 인종에 대한 부분, 1955년 카페에 도착한 마티의 뒤로 흑인 종업원이 청소를 하고 있다. 큰 포부를 품은 흑인 청년에게(그는 영화 속 1985년에 힐 밸리의 시장이 된다!) 카페의 사장은 “너 같은 ‘Colored’가 어떻게 시장이 되냐”고 다그친다. 얼마 전 배우 베네딕티 컴버배치가 한 인터뷰에서 ‘Colored People’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몰매를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1955년은 아직 말콕 엑스와 마틴 루터 킹이 제대로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이기 때문에 알맞은(?) 고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오히려 유쾌하게 풀어 조크처럼 만들어 낸 저메키스 감독의 감각에 감탄이 느껴진다. 흑인 외에도 일본에 대한 포인트도 등장한다. 2015년 장면에선 무려 욱일기가 호버보드와 넥타이 디자인에 등장하는데,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엔 일본이 미국 다음가는 경제대국이었다. 때문에 일본에게 어느 정도 압도당해(?) 일본의 문화가 스며든 미국의 미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겠다. 2015년에서 마티의 상사가 일본인이기도 하다. 3편에서는 85년의 마티가 55년의 브라운 박사에게 “일제가 최고!”라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래도 하필 욱일기인 것이 아쉽다.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시각도 1955~85년과 2015년에서의 느낌이 다르다. 55년도에서 85년까지 이어지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본 여성의 모습에서 여자경찰(심지어 여자흑인경찰)의 등장으로 급격히 바뀌는 모습은 저메키스의 선경지명이다. 물론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지만, 55년의 인종차별과 85년의 성차별이 당시엔 제대로 다뤄지지도 못했던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미래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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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쳐]를 다시 보고 난 뒤, 시간여행을 사용한 영화들의 교훈은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백 투 더 퓨쳐]뿐만 아니라 [터미네이터], [소스 코드], [엣지 오브 투모로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심지어 최근 개봉한 한국 스릴러 영화 [더 폰]까지 모든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미래는 절대 예측되거나 결정되어있지 않으며, 자기 자신이 한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단순하지만 수 없이 많은 변주가 가능한 이 명제가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영화들을 탄생시켰다. [백 투 더 퓨쳐]가 그 원조는 아닐지라도, 같은 교훈을 가장 즐겁고 세련되게 전달한 영화임에는 이견이 없다. 브라운 박사의 명대사와 함께 끝맺은 트릴로지는 불멸의 문화로써 남게 되었다. 브라운 박사가 주는 교훈을 다시 되새겨 보자. “미래는 너희들이 만드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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