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멍하고 혼돈스러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두 번째 장편인 <멍하고 혼돈스러운>은 최근작 <에브리바디 원츠 썸!!!>까지 이어지는 링클레이터 영화들의 시작과도 같은 영화다. 특정한 시간대를 잘라내 최대한 재가공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링클레이터의 영화 방식은 이 영화부터 시작된다. <비포 트릴로지>와 <보이후드> 역시 이러한 링클레이터의 영화 문법 안에 속한다.
<멍하고 혼돈스러운>은 고등학교 학기 마지막날을 맞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계속 풋볼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누군가는 신고식을 치뤄주기 위해 신입생이 될 중학교 3학년들을 찾아다니며, 누군가는 그냥 파티를 즐긴다. 링클레이터는 그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일정한 주인공 없이, 기승전결 혹은 3막 구조의 서사 없이 영화는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 그 시간에 대한 가치판단은 감독이 아니라 관객에게 달려있다. 관객이 어떤 인물이 이입하는지에 따라 그 시간은 추억과 낭만이 될 수도, 스쳐지나가는 일탈일 수도, 괴롭힘을 피해 다닌 피곤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이러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멍하고 혼돈스러운>의 대학교 신입생 버전이었고, <보이후드>는 12년이라는 시작을 12개의 조각으로 구성한 기존의 방식을 확장한 영화였다. 세 영화 모두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담아낸 장면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영화 속 시간에 대한 가치판단은 최대한 걷어낸 영화였다. 이러한 틀이 <멍하고 혼돈스러운>에서 시작된다.
이런 형식은 캐릭터에게도 자유를 안겨준다. 캐릭터들이 미소지니적이거나 호모포빅한 발언과 행동을 해도, 신입생들에게 신고식이랍시고 폭력을 휘둘러도, 마약과 술로 시간을 보내도 그 시간 속에 담긴 캐릭터일뿐이다. 시간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한 영화는 캐릭터에 대한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 영화가 저들을 낭만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저 시절을 비슷하게 보내왔고, 그 것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저들을 보며 철없고 바보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영화를 본다.
신고식을 치뤄주지 못해 안달인 벤 애플렉, 개똥철학 가득한 대사들을 뱉어내는 메튜 맥커너히, 대사 없이 화면 안에 머물기만 하는 밀라 요보비치 등 헐리웃 스타들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