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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온전히 담은 제목, 연애담

이상희&류선영 주연, 이현주 감독 연출의 <연애담>

<연애담>을 보고 나오면서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담>이라는 제목은 <연애담>이라는 영화를 더하거나 덜한 것 없이 설명한다. <연애담>은 윤주(이상희)와 지수(류선영)의 연애담이다.그들의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작업실에서 전해 듣는 것 같은 영화이다. 관객은 영화 속 윤주의 친구인 영호(박근록)처럼 윤주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영화가 끝나면 오뎅탕이나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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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윤주와 지수다. 친구와 월세를 나눠 내며 자취하고, 작업실과 전공을 살린 아르바이트를 번갈아 가며 바쁘게 생활하는 윤주의 모습은 내 주변의 미대생 친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수가 일하는 술집을 찾아간 윤주와 친구들이 “여기 비싼데 조용히 나가자”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공감의 웃음이 터진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 인천에 있는 지수의 집 버스 노선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연애담>은 20~30대를 가감 없이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한국 독립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침대 없이 매트리스만 깔려있는 자취방의 풍경이 익숙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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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담>은 퀴어영화이다. 레즈비언이 등장하고, 그들의 연애를 만남부터 마지막까지 담담하게 지켜본다.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그것에 대한 사회의 비난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의 연애에 집중한다. <아가씨>에서 여성들을 착취하던 남성들을 그리느라 숙희-히데코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지 못했던 아쉬움을 <연애담>이 달래준다. 그만큼 영화는 윤주와 지수의 감정에만 충실하다. 멜로드라마로써 퀴어영화로써 <연애담>이 가지고 있는 확실한 정체성은 오롯이 둘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가씨>가 젠더권력을 파괴하는 영화였고, <캐롤>이 영화 같은 로맨스였다면 <연애담>은 현실 속에서 둘의 연애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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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잠시 등장하는 것은 영화를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 준다. ‘주위에 성 소수자가 있는가?’라는 설문에 내 주위에는 없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주변에 성 소수자가 있을 것이란 인식이 없는 사람이 대다수인, ‘성 소수자는 괜찮지만 내 주변엔 없었으면 한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상황이기에 지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길 꺼려한다. 윤주는 이를 두 사람에게 말했고,한 사람의 싸늘한 반응에 상처받는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연애담>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연애담>이 최근 개봉한 여러 퀴어영화들 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20~30대의 경제 상황과 성 소수자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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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담>은 그냥 일상이다. 침대 없이 매트리스만 깔린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친구와 월세를 나눠서 내며, 과제와 졸업에 치여 작업실에서 밤을 새고,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술 한 잔씩 사면서 시간을 보내고, 연인을 만나러 인천까지 먼 길을 오가기도 한다. 가봤던 펍과 식당 등이 등장하기에 나에게 더욱 익숙하고 일상 같았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관객들은 윤주가, 때로는 지수가 되면서 스크린과 일상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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