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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모를 관객을 위해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크리스토퍼 맥쿼리 2025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탑건: 메버릭>을 처음 볼 때 의아했던 것은 배급사/제작사 리더영상과 ‘탑건’의 의미를 설명하는 자막 사이에 덩그러니 등장한 톰 크루즈의 이름이었다. 통상적인 오프닝 크레딧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톰 크루즈’라는 이름은 마치 영화의 제목인 것처럼 스크린에 등장했다. 시리즈의 최종장(으로 일단 알려져 있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IMAX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면, 통상적인 IMAX 카운트 영상이 나오기 전 톰 크루즈의 셀프캠이 등장한다. 이 영화를 IMAX로 찍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과, 이 영화는 관객 여러분들의 것이라는 말을 건넨다. 물론 <탑 건>과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프랜차이즈는 사실상 톰 크루즈의 소유나 다름없다. 전자의 경우 아직 신인에 가까웠던 그를 기용해 대성공을 거두며 “탑건=톰 크루즈”라는 공식을 만들었다면, 후자는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액션스타’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톰 크루즈라는 이름은 버스터 키튼이나 이소룡, 성룡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의 상징이자 영화의 정체성이 된다. 물론 톰 크루즈의 필모그래피에 액션이 아닌 영화들도 수두룩하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를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초고층 빌딩에 매달리고, 오토바이부터 전투기에 이르는 탈 것들을 직접 운전하는 이미지다. 하나의 브랜드라고 말하기에도, 톰 크루즈는 너무나 거대한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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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은 그러한 톰 크루즈의 형상에 관한 영화다.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전편이 엔티티라는 AI를 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다소 어색한 순간들을 낳았다면, 이번 영화는 다소 단순할지라도 명확한 구성과 동선으로 이단 헌트와 그의 팀을 이끈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수행하고, 톰 크루즈의 놀라운 스턴트는 그것에 개연성을 더한다. 드웨인 존슨이나 마동석의 영화에서 모든 개연성의 중심에 그들의 존재가 놓여 있는 것처럼, <미션 임파서블>에서 불가능한 미션의 성공이라는 개연성은 언제나 톰 크루즈의 몸 사리지 않는 액션이다. 흥미로운 것은 처절하거나 절망적인 순간들, 이를테면 모든 팀원이 사망한 1편이나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3편에서도 적지 않은 유머를 기입하고 영화의 톤을 무겁지 않게 유지하려고 했던 것과 달리, 이번 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겁다는 것이다. 무려 시리즈를 통틀어 처음으로 (외화면의 사운드로만 등장하지만 싸움의 결과는 화면에 비춰진다) 이단 헌트가 살의를 갖고 적의 몸뚱이에 칼을 쑤셔 넣는 장면이 등장한다.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편집은 언제나처럼 등장하지만, 영화는 이단 헌트가 죽음에 가까워졌을 순간들을 그의 환상이나 꿈에 가까운 장면들의 디졸브로 처리한다. 죽음 직전에 있던 그는 그레이스(헤일리 앳웰)나 벤지(사이먼 페그)에 의해 구출되고 어느샌가 생존해 있다.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은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불사라는 전제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그는 미리 경고된 잠수병 후유증을 앓지도 않고, 불타버린 낙하산을 보란 듯이 새로운 낙하산으로 대체해 착륙한다.

이러한 거대한 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단 헌트가 IMF에 스카우트되던 시점부터 강조된 지점이지만, 이번 영화에서 유독 강조되는 포인트는 그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얼굴도 모르는”의 포인트는 엔티티가 스카이넷을 흉내 내며 지구상의 인간을 쓸어버리기 위해 핵무기를 장악한 상황에서 모든 인간의 생명을 지켜낸다는 것이 표면적 맥락이다. 다만 이 문장의 중의적인 표현, 스크린 위에 영사될 뿐인 톰 크루즈가 절대 바라볼 수 없는, 하지만 굳이 별도의 셀프캠을 찍어 영화를 즐겁게 봐달라는 인사를 남기는 얼굴도 모르는 관객들 또한 그 맥락 속에 놓인다. 물론 관객은 이단 헌트가 구해내야 할 사람은 아니다. 다만 관객들은 톰 크루즈가 구해내야 할, 영화와 극장이라는 미디어가 130년의 시간 동안 수행했던 것으로 간주되는 대중오락으로서의 임무의 대상이다. 팬데믹 시기 <미션 임파서블> 7편을 촬영하던 톰 크루즈가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은 스탭들에게 소리쳤던 말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지금 이 업계의 등불이야 (We are the gold standard)”라고 일갈하는 그는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삼는다. 설령 그것이 전 세계적 재난이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재차 죽음을 선고받았을지라도 말이다. 톰 크루즈는 이 시리즈를 완벽하게 사유화했다. 그렇기에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톰 크루즈 자체로서 작동한다. 그는 30년을 이어 온 이 시리즈의 화신이자 그럼으로써 대중에게 복무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긴다. 한없이 자기만족적이면서도 그렇기에 유일무이한 솔직함을 지닌 블록버스터 시리즈는 그렇게 다시 한번 자신의 임무를 되새기며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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