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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에서 흑인영화의 최전선

<씨너스: 죄인들> 라이언 쿠글러 2025

라이언 쿠글러의 궤적을 돌아보자. 장편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시대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두 번째 영화 <크리드>는 백인 이민자 신화를 공고히 다진 <록키> 시리즈의 한 분기를 끄집어내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미국적 전통과 흑인의 전통, 그리고 그 사이의 교집합으로 존재하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의 혼종성을 상대하기 시작한다고 해야 할까. 이는 그가 MCU에서 제작한 두 편의 영화(와 곧 공개될 <아이언 하트>까지) <블랙 팬서>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로 이어진다. 아프로퓨처리즘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미국 블랙 시네마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성과를 거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민자 2세로서 킬몽거의 서사는 문화연구자 폴 길로이가 말한 흑인 디아스포라의 전형과도 같으며, 그와 트찰라의 고향 와칸다의 모습은 상상된, 그리고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입장에서) 통합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담아낸다. 아프리카 음악에 동시대 흑인음악 장르를 컷-앤-페이스트 한 켄드릭 라마의 음악 또한 그러한 이미지를 직조하는 데 일조했다. 비록 후속작은 주연배우의 사망과 MCU 자체의 비대해진 세계 속에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으나, 그 또한 포스트-식민 상황에서 새로이 작동하는 제국주의를 다루고자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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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씨너스>가 도착했다. 1932년 미시시피의 한 마을을 배경삼은 이 영화는 라이언 쿠글러의 영화에서 언제나 주연(혹은 그에 가까운 조연)이었던 마이클 B. 조던이 스택과 스모크 형제를 1인 2역으로 소화했다. 고향을 떠나 시카고에서 알 카포네 밑에서 일하며 번 돈을 가지고 흑인들을 위한 블루스 클럽 ‘주크 조인트’를 차리고자 한다. 형제의 사촌 새미(마일스 케이턴)이 연주하고 부르는 블루스에 그들은 베팅한다. 그리고 새미의 노래는 뜻밖의 불청객을 불러들인다. 뱀파이어 레믹(잭 오코넬)과 그의 일행이다. 정신없는 파티가 벌어지는 와중에 뱀파이어의 습격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씨너스>는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영화가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의 침략을 다룬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사뭇 다르다.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일종의 복수극이라면, <씨너스>는 좀 더 복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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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믹의 캐릭터에서 출발해보자.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며 주크 조인트에 접근하는 레믹 일행의 행태는, 마치 <록키>의 첫 영화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겪은 것과 같은 이민자 차별에 근거한다. 게다가 스택과 스모크 형제가 주크 조인트에서 재공하는 주류는 아일랜드 맥주와 이탈리아 와인이 아닌가. 극 중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두 형제는 금주법 시기 아일랜드 갱과 이탈리아 갱의 술을 훔쳐 달아난 것일테다. 그 술들을 마시며 춤을 추고, 새미의 연주에 맞추어 흑인음악(과 중국의 몇몇 전통 음악/경극)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들의 공동체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형제가 매매한 제제소가 새벽이 밝으면 KKK단의 습격을 받을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맥락은 흑인 공동체와 뱀파이어 공동체 사이의 충돌을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 이상으로 엮어낸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에서 진정한 공동체란 무엇인가? <씨너스>는 이 질문을 역사적 맥락에서 던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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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 영화는 블루스를 소환한다. 표면적으로는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호러-액션 장르영화의 외피를 갖고 있지만, 이 영화는 음악영화다. 특히 블루스라는 장르의 태동과 역사에 관해 다룬다. 블루스는 흑인 영가와 아일랜드/영국 민요에서 전래된 미국 컨트리 사이의 혼종성을 띠는 장르다. 그것이 이후 로큰롤로 변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백인 슈퍼스타에 의해 쓰여진 역사일 따름이다. 때문에 <씨너스>는 블루스에 집중한다. 흑인의 역사, 노예 해방 이후에도 플랜테이션에서 목화솜을 따며 소작농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투표권을 얻지 못했으며, 정당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KKK의 린치에 시달렸던 역사. <씨너스>는 그 역사를 아일랜드 이민자의 역사와 기묘한 방식으로 결합한다. 사실 이는 쿠글러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남미 히스패닉 인종의 피식민 역사와 아프리칸-아메리칸의 피식민 역사를 연결했던 것의 연장선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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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혹은 민족 중심의 공동체는 충분히 기능하지만 역사적 와해의 가능성을 내포하며, <씨너스>는 그것이 박살나는 괴정을 장르영화의 외피를 통해 그려낸다. 라이언 쿠글러의 필모그래피가 포스트-포스트-식민주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정체성의 관한 것이라고 했을 때, <씨너스>는 그 최전선에 놓인다.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는가? 더 깊게는, 그들의 생존권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생존권은 문화 제국주의의 침탈 속에서 옅어진 블루스의 역사 속에, 부두의 주술적인 힘을 빌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역사 속에 놓인다. 거대 프랜차이즈의 연출을 도맡았던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라이언 쿠글러가 갖는 아프리칸-아메키칸의 역사는 여기에 놓인다. 그렇기에 <씨너스>는 지금의 미국 대중문화가 가진 재현의 전장에서 최전선의 선을 지도 위에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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