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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7. 2017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최악인 이유 Choice 5

Choice 1. 에이미 아담스 여우주연상 후보 탈락


 에이미 아담스가 여우주연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다는 점은 이번 오스카 후보 선정 최대의 실수이다. <녹터널 애니멀스>와 <어라이벌>(국내 개봉명 <컨텍트>)로 관객들과 만난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는,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극찬을 받아왔다. 특히 <어라이벌>은 에이미 아담스가 아닌 캐스트가 루이스를 연기한다고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수잔과 <어라이벌>의 루이스가 가진 감정을 정제하고 압축하여 관객에게 전달하는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는, 짧지 않은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최고의 연기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우트>, <마스터> 등의 영화로 여러 차례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지만 아직도 수상하지 못한 에이미 아담스의 후보 탈락이 더욱 안타깝고, 아카데미의 선택이 이해가지 않는다. 더불어 <히든 피겨스>의 타라지 P. 핸슨이 거의 언급되지 않은 점 또한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다.

Choice 2. <핵소 고지>의 편집상 수상


 멜 깁슨 감독의 복귀작 <핵소 고지>는 음향믹싱상과 편집상 두 개 부분에서 오스카를 받았다. 전쟁터의 총격과 폭발을 밀도 있게 담아낸 음향은 충분히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비폭력의 신념을 지닌 주인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력의 전시이며, 전장의 모습을 나열하기에 급급했던 영화의 편집은 오스카의 주인이 될 자격이 되지 못한다. <라라랜드>, <로스트 인 더스트>, <어라이벌>, <문라이트> 등 후보에 오른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수상 결과가 이해되지 않는다. <라라랜드>의 에필로그 플래시백, <로스트 인 더스트>의 은행강도 시퀀스, <어라이벌>의 플래시백(포워드), <문라이트>의 왕가위적 모먼트 등을 제치고 <핵소 고지>가 편집상을 받았다는 것은 다섯 영화를 모두 관람한 관객으로서 납득할 수 없다. 

Choice 3. 지미 키멜의 오스카 시상식 사유화


 이번 오스카 시상식의 사회는 지미 키멜이 맡았다. 오랜 기간 [지미 키멜 쇼]를 진행하고 있는 그를 사회자로 기용하는 것은 좋은 선택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메릴 스트립은 과대평가되었다"는 발언을 비고는 멘트와 시상식 도중 그에게 트위터로 멘션을 보내는 장면은 나름 재미있었다. 허나 오스카 시상식과는 크게 연결점 없이 맷 데이먼과 여러 차례에 걸쳐 장난을 치고, 서프라이즈로 시상식장에 등장한 어느 동양계 미국인(일반인 여행객)의 이름을 놀리는 모습은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라이언>의 아역 써니 파와르에게 거넨 <라이언 킹> 농담처럼 재미없는 멘트도 넘쳐났다. 시상식의 피날레인 작품상이 번복되었을 때, 그 난장판을 정리한 것은 사회자인 지미가 아니라 <라라랜드>의 프로듀서였다. 시상식장에서 피자를 나눠먹던 엘렌 드제러너스의 말끔한 진행이 그리워진다.

Choice 4. 케이시 애플렉의 남우주연상 수상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출연한 케이시 애플렉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미 골든글로브 등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기에 예측할 수 있는 수상이었다. 허나 그가 수상하지 않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랬다. 그가 7년 전에 저지른 성범죄의 내용이 피해 당사자에 의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의 연기와 개인의 사생활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그가 저지른 것은 사생활적인 문제가 아닌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한 범죄였고, 그 폭력이 영화를 제작하는 예술 현장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탄생>으로 호평받고 오스카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던 흑인 감독 네이트 파커가 과거의 성범죄 전력 때문에 어느 시상식에서도 얼굴을 비추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케이시 애플렉의 수상은 더더욱 납득할 수 없다. <룸>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연기해 8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리 라슨이 골든글로브에 이어 두 번째로 케이시 애플렉에게 시상했다는 것이 끔찍하다. 올해 오스카에서 정말로 번복되어야 하는 상은 남우주연상이다.

Choice 5. 작품상 번복


 최악의 사고다. 오스카 시상식의 피날레인 작품상이 잘못 발표되어 수상작이 번복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시상자로 나선 워렌 비티는 수상작의 제목이 담긴 봉투를 뜯어보고는 망설이는 제스처를 취했고, 함께 무대에 선 페이 더너웨이가 카드에 적힌 이름 <라라랜드>를 작품상으로 호명했다. <라라랜드>의 감독과 배우, 프로듀서 등이 무대에 올라와 수상소감을 이어가는 도중 수상작이 적힌 봉투가 다시 전달되었고, "This is not a joke'라는 말과 함께 수상작이 <문라이트>로 정정되었다. <라라랜드> 팀과 <문라이트> 팀에게 모두 당황스러운 해프닝이다. <라라랜드> 팀은 잘못된 발표에 혼란스러웠고, <문라이트> 팀은 어지러운 난장판 속에 제대로 축하받지 못했다. 영화 내내 트럼프를 도발하던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트럼프가 보여주는 것과 유사한 난장판으로 막을 내렸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악의 피날레다.




p.s. 과학기술부분 시상자로 오스카에 참여한 존 조의 트윗은 오스카를 보는 내 감정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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